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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마약상 종로 빡빡이…그는 왜 뽕의 세계를 못 벗어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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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71회 작성일 24-04-10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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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손댔다 감옥 들락날락

치매 노모 부양 위해 새 삶

노력했지만 생활비 쪼들려

돈 벌려 유혹 넘어갔다 속아

마약 돌려주려다 체포·재판

“너무 억울” 항변과 후회


다니던 교회, 법원에 탄원서

지난해 5월 관세청이 공개한 필로폰. 소포장된 비닐팩에 약 0.7g의 필로폰이 들어있다. 1㎖ 주사기 한 개를 꽉 채우면 0.7g 정도가 되고 이를 ‘작대기’라고 부른다. 약 10회 투약량이다. 조태형 기자

지난해 5월 관세청이 공개한 필로폰. 소포장된 비닐팩에 약 0.7g의 필로폰이 들어있다. 1㎖ 주사기 한 개를 꽉 채우면 0.7g 정도가 되고 이를 ‘작대기’라고 부른다. 약 10회 투약량이다. 조태형 기자



지난 1월17일 오후 8시쯤 서울 서초구 남부버스터미널 후문 건너편 도로에서 덩치 큰 남자가 손짓했다. 50대 최모씨는 남자가 탄 쏘나타 차량으로 다가갔다.

“주세요.” 남자가 말했다. 최씨는 바지와 패딩 주머니에 넣어둔 비닐팩을 건넸다. “돈 돌려줘.” 최씨가 말했다. 남자가 내민 것은 수갑이었다. 서초경찰서 형사에게 붙잡힌 최씨는 지난 2월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마약을 팔러 간 게 아니었다. 자신이 산 마약을 환불받으러 간 것이었다. 최씨는 덩치 큰 형사가 자신에게 마약을 판 남자의 심부름꾼인 줄 알았다.

출소한 지 1년이 채 안 된 때였다. 최씨는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로 징역을 살고 지난해 3월16일 출소했다.

최씨는 ‘종로 빡빡이’라는 별명으로 마약 유통의 세계에선 나름 이름이 알려진 인물이었다. ‘건달’ 생활을 하다 마약에 손댔고, 과거 연예인 마약 사건에도 연루된 적이 있었다. 철창 신세를 지게 됐고 교도소를 들락거리며 빈털터리가 됐다.

그는 어쩌다 다시 마약 거래에 나섰을까.

그는 돈이 필요했다. 중증 치매를 앓는 노모 때문이었다.

3년 전 치매 판정을 받은 어머니가 허리를 다쳐 입원 중이었는데 상태가 악화됐다. 어머니는 요양병원에서 하루 수십통씩 전화를 걸어 최씨를 찾았다. 최씨는 9월부터 일을 그만두고 치매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어머니는 아이가 됐다. 하루 5~6차례 어머니의 대소변 기저귀를 갈았다. 빨래, 청소, 식사 준비가 모두 그의 몫이었다. 종일 어머니를 돌보고 새벽이 되면 잠깐씩 아르바이트를 다녀왔다. 새롭게 살아보자며 노모를 모시고 동네 교회를 꾸준히 다녔다.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다. 병원비·약값·집세 등 생활비가 적지 않게 들었다. 모아둔 재산도, 변변한 기술도 없었다.

어느 날 그에게 텔레그램 메시지가 왔다. 중국에 있는 필로폰 판매업자 김모씨였다. ‘필로폰이 필요하지 않냐’는 제안이었다. 최씨는 치매 노모를 돌볼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필로폰을 구해 되팔기로 했다. 필로폰 50g을 550만원에 사겠다고 답했다.

지난 1월6일 오전 2시40분, 최씨는 경기 안양시 만안구의 한 건물 화단에 550만원을 숨겼다. 김씨에게 연락하자 사진과 동영상이 왔다. 필로폰을 숨겨둔 ‘좌표’다. 약 한 시간 뒤 최씨는 물건을 찾을 수 있었다. 포장을 열어보니 필로폰 약 16g과 케타민 0.8g뿐이었다.

“그 돈이 어떤 돈인 줄 알아? 엄마 병원비야. 약 필요 없으니 돈 돌려줘!” 최씨는 김씨에게 따졌다.

“전액은 못 돌려주고 300만원만 돌려줄게요.” 며칠 동안 답이 없던 김씨가 연락해왔다. “그런데 물건 테스트해봤어요?” 김씨의 유혹에 최씨는 넘어갔다. 필로폰 0.08g을 투약했다.

최씨는 마약을 돌려주고 돈을 돌려받기로 한 날 경찰에 붙잡혔다. 최씨는 지난달 14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첫 재판을 받았다.

그는 김씨의 공작에 당한 것이라며 “너무 억울하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필로폰을 구입하고 투약한 증거는 확고했다.

최씨가 구속되자 어머니는 교회와 그의 누나가 돌보게 됐다. 최씨가 어머니를 모시고 다녔던 교회 목사와 교인 등 19명이 재판부에 탄원서를 냈다. 최씨는 감사한 마음을 담아 목사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적었다. “교도소 안에서 주고받는 90도 인사가 왜 이리 자연스러운지. 이 길이 내가 걸어온 길인가요.” 너무도 늦은 후회였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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