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민 벤츠 빼주려던 경비원 12중 추돌…"급발진, 수리비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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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오전 8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한양아파트 내에서 경비원 A77씨가 아파트 입주민의 벤츠 차량을 후진시키고 있다. /독자 제공 ◇입주민 편의 위해 벤츠 이동시키다 사고 낸 경비원 “억대 수리비 어떻게 감당할지 막막” 서울 영등포경찰서와 관리소, 주민 등에 따르면, 지난 22일 오전 8시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있는 한양아파트 내에서 경비원 안모77씨는 아파트 앞 30m 길목에 이중으로 주차된 차량을 정리하기 위해 벤츠 GLC 차량의 운전석에 앉았다. 평소에는 별 문제 없이 운전을 해왔지만 안씨는 이날 주차장 내에서 후진을 하던 중 8대, 다시 우회전해 직진을 하다 4대 등 차량 12대를 잇달아 들이받은 뒤에야 차를 멈췄다. 이 사고로 일부 차량은 범퍼와 후미가 찌그러졌고, 안씨가 몰았던 차량도 상당 부분이 파손됐다. 지난 22일 오후 본지가 만난 안씨는 “22일 아침에 후진하다가 순식간에 사고가 나버렸다”며 “돈이 한두 푼이 아닌데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은퇴 후 17년 동안 이 아파트에서 쭉 근무했는데, 사고 트라우마 때문에 경비원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고 했다. 안씨가 몰았던 벤츠의 차주 이모63씨는 “사고 차량 수리비와 렌트비 등을 모두 더하면 최소 억대 비용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며 “피해 차량의 차주 12명 중 1명은 강력히 보상을 요구하고 있고, 2명은 상황만 간단히 문의한 상태”라고 했다. 이씨 벤츠의 수리비로만 견적이 5000만원 정도라고 한다. 이 이파트는 24일 기준으로 112㎡31평형 매물이 약 25억원에 거래되는 만큼 안씨가 들이받은 차량 중에는 신차로 대당 1억3460만~2억960만원 정도의 고급 차량인 벤츠S350도 있었다. 이씨는 “급발진 사고 가능성도 있고, 경비원이 딱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22일 오전 8시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한양아파트 내에서 경비원 A77씨가 몰던 벤츠 차량이 주차장에 있는 차량을 잇달아 들이받고 있다. /독자 제공 12중 추돌 사고가 난 여의도 한양아파트는 1975년 준공된 588세대 규모 아파트 단지로, 총 주차 대수가 세대당 1대인 588개면 뿐이다. 이 아파트 관계자는 “주민들 중엔 가구당 차를 2~3대씩도 갖고 있는데 주차 공간이 부족한 건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주차장 규모가 작은데도 주차 수요가 많아 고질적인 주차난이 심각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경비원들은 주민들의 차량 열쇠를 보관해놨다가 요청이 있으면 차를 대신 빼주는 ‘대리 주차’ 일을 해 왔다고 한다. 출퇴근 시간 때마다 경비원이 가로로 이중 주차된 차량들을 직접 운전하거나 밀어서 빼주는 것이 관행이라는 것이다. 안씨도 이날 입주자인 이모 씨에게서 벤츠 차키를 넘겨받은 뒤 운전대를 잡았다. 본지가 이날 살펴본 경비실 서랍에는 세대마다 자동차 열쇠가 구분돼 보관돼 있었다. 오래된 다른 아파트의 사정도 비슷했다. 지난 23일 오후 9시 30분쯤 본지가 찾은 여의도의 근처 A아파트는 본래 주차장의 주차 면은 모두 차 있었다. 심지어 차량 9대는 흙바닥 위에 세워져 있었다. 지난 2021년쯤 주차난을 완화하기 위해 기존 화단 자리를 밀어내면서 새로 생긴 주차 공간이다. 1976년에 지어진 이 아파트에는 주차 공간이 184대 정도 있었는데 이는 세대당 0.49대 수준이다. 이 이파트도 주차난으로 인한 경비원들 고충이 크다고 했다. A아파트에서 10년째 근무 중이라는 한 경비원70은 “주민들과 경비원이 아침마다 직접 손으로 차량을 밀고 있는데, 차 밀어주느라 허리가 쑤시고 어깨 근육도 결려 죽을 것 같다”며 “100번 중 한 번 정도는 주민 대신에 차를 직접 몰기도 한다”고 했다. “잘못 운전해 차에 흠집이라도 나면 큰일이니 운전이 익숙한 동료에게 부탁할 정도”라고도 했다. ◇블랙박스 영상엔 브레이크등 들어왔는데도 속도 안 줄어.. “급발진 의심도” 사고 당시 블랙박스 영상에 따르면 안씨는 벤츠를 후진시키면서 브레이크를 잇따라 밟은 것으로 보인다. 최소 여섯 차례 밟는 모습이 깜빡이는 브레이크등을 통해 확인된다. 그런데 차량은 이 때에도 갑자기 속도가 빨라지면서 뒤쪽 방향으로 그대로 돌진하고, 차량 2대와 부딪힌다. 그 차량들이 밀려나면서 또다른 차량 5대와 충돌한다. 이후에도 브레이크등이 계속 들어와 있는 상태에서 벤츠 차량은 앞으로 주행한다. 안씨는 그러나 “기어를 후진에서 주행으로 바꾼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안씨는 사고 피해를 줄이기 위해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었고, 벤츠는 속력을 높이며 차량 5대를 연달아 추돌했다가 결국 멈춰선다. 이런 과정에서 벤츠 차량 엔진 쪽에서 굉음이 들렸다는 것이 안씨와 사고 당시 목격자들의 증언이다. 안씨와 차주는 벤츠 차량의 급발진 가능성을 주장하고 있다. 그는 “브레이크를 밟고 후진하는데 뒤에 있던 차량을 박았고, 또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차량이 막 앞으로 갔다”고 했다. 실제로 첫번째 추돌 전 차량 뒷모습이 찍힌 블랙박스 영상을 보면, 후진하는 벤츠 차량 브레이크등이 잇달아 깜빡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경비원에 대리주차 시키면 불법.. “제3자라 보험 적용도 안 돼” 보험 업계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자동차 보험은 차주와 그 가족이 피보험자로 가입된 경우에만 보상이 적용된다. 사고 차량은 차주인 이씨 아내 명의로 되어 있는데, 부부 명의로 보험에 가입돼 있다. 그러나 이씨 부부가 아니라 제3자인 경비원 안씨가 운전했기 때문에 보험 적용이 불가능하고, 보상 자체가 어렵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2021년 10월 시행된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개정안에 따라, 경비원에게 대리 주차를 시키는 것은 불법이다. 안씨는 용역업체 소속으로, 아파트 단지에 파견근로자 신분으로 일하고 있기 때문에, 안씨 앞으로 따로 적용되는 책임보험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관리사무소에서 아파트 전체에 화재보험이나 배상책임보험을 들어놓았다면 일부 보상은 가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조만간 경비원 안씨를 불러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할 방침이다. 벤츠코리아 측은 “현재 사고 차량을 확인하지 않은 상황인데 고객 요청이 있을 시 차량을 면밀히 살펴본 뒤 파악해보겠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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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닷컴 바로가기] [ 조선일보 구독신청하기] 김명진 기자 cccv@chosun.com 조재현 기자 jbs@chosun.com 강지은 기자 jieunk@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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