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車는 왜 인도 돌진했나…전문가들이 본 역주행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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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일어난 서울 시청역 역주행 참사와 관련, 사고가 난 일방통행 도로의 구조 때문에 운전자들이 헷갈려 역주행 사고가 일어나기 쉬운 구조라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도로의 구조가 운전자에게 헷갈릴 수 있어 역주행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가해자가 주장하는 급발진 여부에 대해서는 “급발진 가능성이 없지는 않지만, 높지는 않다”고 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 박철완 서정대 자동차학과 교수,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 박성지 대전보건대학교 과학수사과 교수의 답변을 문답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지난 1일 밤 서울 중구 시청역 부근에서 한 남성이 몰던 차가 인도로 돌진해 최소 13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번 사고로 파손된 차량이 현장에서 견인되고 있다. /박상훈 기자 사고가 난 서울 중구 세종대로18길은 4차선 일방통행 길이다. 김필수 교수는 “서울 시내에 이런 구조를 지닌 도로는 많지 않다”며 “서울시에 일방통행길 전수 조사를 요청할 것”이라고 했다. 이 도로는 원래 양방통행이었지만, 2004년 서울시가 청사 앞에 서울광장을 조성하면서 시청 앞 차량을 분산하기 위해 일방통행으로 바꿨다. 가해차량은 웨스틴 조선호텔 지하 주차장에서 나와 진입이 금지된 세종대로18길로 들어갔다. 김필수 교수는 “도로 입구에 ‘진입금지일방통행’라는 표지판이 있지만 사건이 있던 저녁 시간대에는 운전자 시야에 안 보였을 확률이 높다. 신호등도 있지만, 호텔 지하 주차장에서 나서는 운전자 기준 90도로 꺾인 사각지대에 있다”고 했다. 경찰 조사 결과 가해 차량은 호텔에서 나온 직후부터 100㎞에 가까운 속도로 운행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100㎞로 달린 가해차량은 호텔에서 나와 우회전이 아니라 직진을 해 일방통행길로 들어섰다. 박성지 교수는 “호텔에서 나와서 우회전하는 길은 각도가 100도에 가까운 급急우회전 코스라, 가행차량이 엑셀을 밟으며 빠른 속도로 호텔에서 나왔다면 우회전을 하기 어려웠을 수 있다”고 했다. 지난 2일 새벽 13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서울 시청역 교차로 교통사고 현장에서 과학수사대원들이 현장감식을 하고 있다. /뉴스1 가해자는 40년 넘게 운전업에 종사한 사람이고, 현직 버스기사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차량 사고는 초보 운전자든, 베테랑 운전자든 운전 경력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이 전문가의 견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교통사고를 연구해 온 박성지 교수는 “호텔에서 나왔을 때 뭔가 ‘이벤트’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여기서 이벤트란 갑자기 사람이 차도로 나오거나 다른 차량이 과속을 하고 지나가 브레이크 페달을 갑자기 밟는 경우”라고 했다. 이 경우 운전자는 이 ‘이벤트’로 인해 계속해서 본인이 브레이크를 밟았는지, 가속 페달을 밟았는지 오해할 수 있다고 한다. 가속 페달을 밟아 놓고 브레이크를 밟았다고 오해하는 것이다. 그래서 운전자는 급발진 사고라고 생각하게 된다. 박성지 교수는 “이전에 있었던 급발진 의심 사고도 대부분 이런 경우였다. 일각에선 ‘부부싸움을 하다가 홧김에 돌진했다’는 말도 나오는데, 그랬다면 주변 건물이나 차량에 돌진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1일 시청역 역주행 참사 당시 모습. 가해 차량흰색 헤드라이트이 직진을 하기 전, 한 차량이 좌회전을 하고 있다빨간 원 /SBS 사고 시작 시점인 웨스틴 조선 호텔 앞에는 우회전을 통해 소공로로 나가는 길이 있다. 하지만 가해 차량은 호텔 주차장에서 나온 후 우회전을 하지 않고 일방통행길로 직진을 했다. 지난 3일 공개된 한 차량의 블랙박스에는 가해 차량이 직진을 하기 전 다른 차량이 소공로로 좌회전을 하는 모습이 촬영됐다. 일각에선 “가해 차량이 좌회전 차량을 피하려다 역주행을 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이호근 교수는 “가해 차량이 주차장에서 빠른 속도로 나오다 다른 차량을 피하려다보니 우회전을 못 하고 어쩔 수 없이 일방통행로로 직진을 했을 확률도 있다”고 했다. 이어 “이 때문에 역주행을 한 것으로 조사 결과가 나온다면 어느 정도 참작 요소는 될 것”이라고 했다. 2일 서울 중구 남대문경찰서에서 경찰 관계자가 견인차로 시청역 인도 차량돌진 사고 가해차량을 이동하고 있다. /뉴스1 스키드 마크Skid Mark·타이어 밀림 자국는 타이어와 노면 사이의 마찰이 발생하면 생긴다. 자동차가 급 브레이크를 밟을 때 바퀴가 굴러가지 못하고 미끄러지면서 마찰력으로 타이어가 녹으며 생기는 자국이다. 지난 3일 경찰은 “사고 현장에서 스키드 마크가 없었다”고 밝혔다. 처음 발표에서는 “스키드 마크가 발견됐다”고 했지만, 이어 “사고 당시 흘러 나온 기름 자국이었다”며 정정했다. 박성지 교수는 “스키드 마크가 없었다는 것은 타이어가 제대로 돌았다는 뜻이다. 따라서 스키드 마크가 없었다는 것은 운전자가 계속 가속 페달을 밟았거나, 급발진일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정확한 것은 경찰과 국과수의 EDR자동차용 영상 사고기록장치 분석이 필요하다”고 했다. 3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18길 도로 모습. /연합뉴스 앞서 경찰 조사 결과 스키드 마크는 없었기 때문에 급발진의 가능성이 0%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사고 정황 상 급발진은 낮은 상태”라고 했다. 경찰 조사 결과 가해 차량은 90% 이상 가속 페달을 밟았다고도 한다. 이호근 교수는 “가해 차량이 사고 직후 제동制動을 했다. 이는 가해 차량에 이상은 없었고 ABSAnti-lock Braking System·브레이크가 잠기지 않게 하는 시스템도 제대로 작동했다는 것이다. ABS가 작동하지 않는 급발진이었다면 가해 차량은 멈춰서지 않고 다른 건물이나 차량에 돌진한 뒤 그 여파로 멈췄을 것이다. 따라서 급발진은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ABS는 2011년 이후 출시된 차량에 모두 설치돼있다. 가해 차량은 2018년 출시됐다. 김필수 교수는 “조사 결과 운전자의 운전 미숙이 사고의 원인일 수 있지만, 급발진 가능성을 전혀 배제하고 조사를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어 “급발진은 전자 제어의 이상으로 발생하는데, 이상이 발생했다가 충돌로 인해 없어질 수도 있다”며 “이번 사고처럼 제동을 하는 모습은 급발진 가능성을 줄이는 정황”이라고 했다. 박철완 교수는 “급발진 현상이라고 주장되는 것은 중간에 감속이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정용우 남대문경찰서 교통과장이 지난 2일 서울 중구 남대문경찰서에서 열린 시청역 인도 차량돌진 사고 관련 브리핑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뉴스1 박철완 교수는 “경찰에 이런 급발진 의심 사고 관련 전담 부서가 없어 우왕좌왕하는 것으로 보인다. 교통 사고를 전문적으로 조사해 본 경찰 과학수사대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나서야 한다”고 했다. 박 교수는 이어 “지난 3일 경찰은 사고 현장에 스키드 마크가 있었다고 했다가, 나중엔 없었다고 정정했다. 급발진 유무의 핵심 단서를 놓고 이런 실수를 했다. EDR이 뭔지, 스키드 마크가 뭔지도 모르고 해석을 하는 것 같다. 과학수사대의 체계적인 감식 결과가 나와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사고 직후 가해자 조사도 미흡했다고 입을 모았다. 박철완 교수는 “가해자가 사고 후 직장 동료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하는데, 이후 가해자는 경찰에 “부상을 당해 숨을 쉬기 어렵다”며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됐다. 아픈 사람이 어떻게 그 시간에 직장 동료에게 전화를 하나. 일관성이 없는 가해자의 이러한 부분을 경찰이 파고들었어야 했는데, 초동 조사 과정이 부실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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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닷컴 바로가기] [ 조선일보 구독신청하기] 안준현 기자 01052803806@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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