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 차림으로 종일 돌아다녀 보니…"살아 있는 유물이 된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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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한복 입고 전철 타고 백화점에 가 보았다 지난 13일 한복을 입은 장근욱왼쪽 기자가 ‘한복 나들이’ 취미를 즐겨온 IT 개발자 송민근씨와 서울 지하철 5호선 목동역 개찰구를 지나고 있다./주민욱 영상미디어 기자 마치 연예인이 된 것 같았다. 주말이던 지난 13일 온종일 한복을 입고 서울 시내를 돌아다녔더니 이런 반응을 받았다. 머리에는 뾰족이 솟은 갓을 쓰고 바지와 저고리를 입었다. 여기에 두루마기를 걸치고 고무신도 신고 거리로 나섰다. 지하철, 버스 등 대중교통을 타고 백화점에 들렀다가 먹자골목으로 향하는 코스였다. 어떤 행인은 신기하다며 즐거워했지만 또 다른 행인은 인상을 찌푸리면서 한복 차림을 아래위로 훑어봤다. 이렇듯 일상생활에서 입는 한복은 기이한 구경거리가 됐는지도 모른다. 요새는 전통 혼례나 고궁 나들이 때 사진을 찍는 등 특별한 때만 한복을 입는 분위기다. 그렇지만 자유 대한민국이다. 미풍양속을 해치지 않는다면 어느 옷이든 입어도 되지 않을까? 용기를 내서 한복을 입고 외출을 감행했다. 지난 13일 서울 중구의 한 버스 정류장에서 송민근오른쪽씨가 손에 쥐고 있던 전통 부채를 들어 올려서 버스 탑승 의사를 표현하고 있다. /주민욱 영상미디어 기자 한복을 입고 거리로 나서니 몸가짐이 자연스레 단정해졌다. 무엇보다 ‘갓’ 때문이었다. 챙이 넓고 위로 뾰족한 갓이 여기저기 부딪혔다. 지하철에서 타고 내릴 때, 버스 좌석에서 고개를 돌릴 때, 화장실을 드나들 때도 그랬다. 송씨에게 갓 쓰고 다니는 요령을 배웠다. 좁은 문을 지날 땐 허리를 앞으로 깊이 숙이고 얼굴은 정면을 향했다. 중심을 잡기 위해 뒷짐을 졌다. 영락없는 ‘양반걸음’이었다. 계단을 내려갈 때도 두루마기 자락을 잡아야 땅에 끌리지 않았다. ‘밥상머리 예절’은 체화됐다. 한복 두루마기의 소매는 품이 넓다. 팔을 뻗으면 천이 아래로 축 처졌다. 젓가락을 들거나 잔을 들 때 반찬이 옷에 묻지 않으려면 그쪽 소매를 다른 손으로 붙잡아 줘야 한다. 오늘날 ‘짠’ 하며 건배할 때 잔을 받치는 예절의 기원을 새삼 느꼈다. 지난 13일 서울 중구 신세계백화점 지하 푸드코트에서 한복을 입고 젓가락질을 하는 송민근왼쪽씨를 장근욱 기자가 지켜보고 있다. 송씨는 한복 소매를 손으로 받쳐 음식이 옷에 묻지 않도록 하는 모습. /주민욱 영상미디어 기자 실전형 한복 예절도 있었다. 송씨는 기자에게 “주위에 폐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그는 “‘왜 한복을 입냐’며 시비를 거는 사람도 있다. 한복을 입으면 되도록 혼자 다니고, 트집 잡히지 않도록 언행을 조심한다”고 말했다. 한복을 입는 것만으로 ‘기행’인데 ‘감점’을 더 받지 말자는 것이었다. 일부 젊은이는 일상생활에서도 한복을 입으려고 ‘시도’한다. “서양의 전통 정장은 입는데 한복은 왜 안 되느냐”는 게 이들의 관점. 10년 전부터 한복을 입는다는 직장인 이준혁34씨는 “예뻐서 입는다. 한복만의 기품이 있다”며 “갓도 페도라나 카우보이처럼 특별한 패션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출구 밖으로 나와 걸었다. 정부서울청사를 지나 경복궁이 가까워졌다. 한복을 입고 활짝 웃으며 기념사진을 찍는 인파에 휩쓸렸다. 이곳에선 남녀노소, 내·외국인 할 것 없이 한복 차림이었다. 마침내 한복 차림이 유난스럽지 않은 시대로 ‘타임슬립’을 한 듯 편안했다. 지난 13일 서울 광화문 인근 한복 대여점 앞에서 막 한복을 입고 나온 베트남 관광객들과 만나 기념 사진을 찍는 모습. /주민욱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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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닷컴 바로가기] [ 조선일보 구독신청하기] 장근욱 기자 muscle@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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