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발진 의심 그 도로, 도현이 아빠 대신 달렸다[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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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급발진 의심 사고’ 지난 19일 재연 시험
시민이 동일 모델 차량 빌려줘 운전 전문가가 대신 운전하기도 도현이 아빠 “진실 꼭 밝혀지길” ‘차량 급발진 의심 사고’로 고故 이도현사망 당시 12세군이 숨진 지 501일째가 되던 지난 19일. 도현이가 떠난 강릉시 회산동 도로 위에서 사고를 재구성한 ‘재연 시험’이 진행됐다. 사고 차량과 동일한 모델의 차량이 준비됐고, 전문가가 운전대를 잡았다. 도로 통제는 경찰관, 시청 직원, 모범택시 기사들이 도왔다. 재연 시험을 위해 이들을 한 자리에 모을 수 있었던 건 아들의 죽음을 규명하려는 아버지 이상훈씨의 간절함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현행 제조물 책임법은 급발진 의심 사고 원인을 소비자가 입증토록 하고 있다. 따라서 재연 시험 준비는 온전히 상훈씨 몫이었다. 상훈씨는 먼저 해당 시험을 위해 사고 차량과 같은 ‘티볼리 에어2018년식’ 구입 계약금을 이미 지불해뒀다. 운전도 직접 할 작정이었다. 차량의 구간별 속도 변화를 포함해 상훈씨 본인만큼 사건을 속속들이 아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 때문이다. 하지만 안전상의 이유로 감정인과 변호인이 그를 극구 말렸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막막하던 상훈씨 앞에 김상권43씨가 나타났다. 지인을 통해 운전 전문가인 김씨와 연결된 것이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똑같은 차량, 똑같은 연식의 티볼리를 소유한 사람이 차량을 제공하겠다고 나섰다. 국내 급발진 의심 사고 최초로 사고 현장에서 진행된 재연 시험은 이같이 일면식도 없던 타인들의 온정이 더해지면서 기적처럼 성사될 수 있었다.
“운전대 꼭 붙든 할머니 마음 헤아려”
언론을 통해 ‘운전 전문가’로 소개된 김씨는 강원도 강릉에서 토목공사업에 종사하는 직장인이다. 취미로 아마추어 레이싱을 했고, 관련 자격증을 소유하고 있다. 김씨는 23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그래서 아마 전문가로 보도된 것 같다”며 멋쩍은 듯 웃었다. 김씨가 지인의 연락을 받은 것은 재연 시험을 나흘 앞둔 15일이었다. 그는 “제안을 받았을 때 솔직히 망설여졌다”고 털어놨다. 큰 관심을 받는 사고였고, 운전 중 실수라도 하면 괜한 불상사가 생길 수 있었다. 다칠까 봐 두렵기도 했다. 김씨는 “이틀만 시간을 달라”고 한 뒤 깊은 고민에 빠졌다고 한다. 답답한 마음에 사고가 난 도로를 걸어보기도 했다. 자주 다녀 익숙한 길이었다. 발걸음을 옮기는 동안 김씨는 도현군 할머니를 떠올렸다. 사고가 발생한 2022년 12월 6일 뒷좌석에 손자를 태운 할머니가 차량이 도로 옆 지하통로에 빠지기 전까지 운전대를 꼭 붙들고 있었던 심정을 헤아려봤다. “아마 저라면 그냥 두 눈 질끈 감고 브레이크제동장치만 밟으면서 앞차를 들이박았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할머니는 핸들을 놓지 않고 600m 정도를 가셨잖아요. 대단한 정신력이죠. 아마 손자를 위해 그러신 것 아닐까요. 그런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이분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차피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잖아요.” 김씨는 시험 당일 티볼리 차량에 올라 4가지 과제를 수행했다. 사고 당시 상황을 재연해 분당 회전수RPM와 속도 변화를 측정하는 것 등이었다. 이는 “기계적 결함이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 결과와 비교·분석하기 위해 꼭 필요한 자료였다. 아직 정확한 결과가 나오지 않아 조심스럽지만, 김씨는 재연 시험이 끝난 뒤 상훈씨의 억울한 마음을 더욱 이해하게 됐다고 했다. “‘풀 액셀’을 밟으면 차가 기어 단수를 낮추면서 훅 튕겨 나가요. 그럼 그 관성 때문에 사람의 몸이 뒤로 쏠리거든요. 그걸 버티면서 힘으로 액셀을 밟고 있어야 해요. 보통 사람도 운전할 때 차가 갑자기 나가면 본능적으로 발을 떼잖아요. 근데 그걸 뒷좌석에 손자를 태운 할머니가 계속 밟았다는 게… 저는 그나마 차량이 통제돼서 도로라도 뚫려있었지만….” 김씨는 이날 재연 시험 후 평소처럼 출근 복장을 갖추고, 회사로 출근했다. 아내와 가족에게는 그제야 소식을 전했다. 아내는 덤덤히 “잘했다”고 격려해줬고, 어머니는 “그 위험한 일을 왜 했느냐”며 걱정스러운 마음에 화를 냈다. 그래도 사정을 설명하자 아들의 뜻을 이해했다고 한다. “저는 아직도 사고 블랙박스 영상에서 할머니가 ‘도현아, 도현아’ 부르시는 목소리를 들으면 눈물이 나요. 저도 그렇고, 저희 가족들도 그렇고, 주변에 도현이 아버님을 응원하는 분들이 많으니까 끝까지 힘내시면 좋겠어요.”
“별일도 아닌데요…망가지면 고치면 되죠”
차량을 빌려준 A씨는 끝내 이름을 밝히길 거부했다. 강릉에서 오토바이 정비 관련 일을 한다는 그는 국민일보와의 전화 인터뷰를 하는 동안 “별일 아닌데요”라는 말을 반복했다. 차량 파손 위험을 감수하고 선뜻 차를 내준 일도 ‘별일’이 아니고, 그 바람에 지인 택시를 얻어 타고 출퇴근하는 불편함을 감수한 것도 ‘별일’이 아니어서 ‘별로’ 할 말도 없고 ‘굳이’ 이름을 밝힐 일도 아니라고 했다. 차량을 빌려준 것도 그에겐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지인이랑 이야기를 나누다가 마침 제 차량이 사고 차량이랑 똑같더라고요. 그래서 빌려줬죠.” 차량 손상도 특별히 걱정하지 않았다. “망가진 거는 고치면 되고요. 사람 목숨에 비할 바가 되나요.” 혹시 사고라도 나면 수리비를 사비로 부담해야 하는 것도 그에게는 큰 고려 사항이 아니었다. “보험처리 하면 되는데요. 자식을 잃은 마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재연 시험 당일, 그는 차가 없어진 탓에 이웃주민 택시를 얻어 탔다고 한다. 택시 운전기사인 이웃이 A씨 사정을 듣고 무료로 출퇴근 시켜준 것이다. 가족들도 A씨 결정에 별말을 하지 않았다. ‘빌려주겠다’는 A씨 말에 아내는 그저 “그래, 알았어”라고 답했을 뿐이었다. A씨는 차량을 내주는 데 “일말의 고민도 없었다”고 했다. 두 딸의 아빠인 그는 “부모 입장에서 이 사건 자체가 너무 안타깝다”며 착잡해 했다. “위로를 한다고 위로가 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어떤 말을 드릴 수 있겠어요. 제가 그 심정을 느낄 수도 없는 거고…. 마음이 너무 아프죠.”
한 마음으로 지켜본 재연 시험…“진실 드러나길”
재연 시험 당일 상훈씨를 도운 건 두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재연 시험이 진행되는 동안 도로 통제와 시민 안내를 맡아줄 인력이 필요했다. 이에 강릉경찰서에서 당초 6명의 인력 지원을 약속했지만 당일 10명 안팎의 인원이 나왔다고 한다. 강릉시청에서도 10여명의 직원들이 현장을 찾았다. 모범택시 운전기사들도 힘을 보탰다. 혹시 모를 사고 가능성을 우려한 상훈씨가 강릉 모범운전자회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 정문철65 회장은 “시간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가겠다”고 흔쾌히 답했다. 그렇게 당일 7명의 모범택시 기사들이 도로 통제를 도왔다. 모두 상훈씨와 일면식도 없었다. 정 회장은 “필요하면 7명보다 더 많은 인원이 갈 수도 있었다”며 “다들 무조건 도와줘야 한다고, 더 가겠다고 난리였다”고 전했다. 이들의 마음이 모아져 성사된 재연 시험은 약 2시간 동안 진행된 끝에 마무리됐다. 정확한 분석 결과가 나오기까지 다소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지만, 상훈씨 측은 운전자 과실이 아니라는 점을 강력히 시사할 수 있는 결론이 나왔다고 보고 있다. 재연 시험 결과 국과수 발표와 다소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상훈씨는 “사고 이후 저희 가족의 일상은 전부 파괴됐다. 진실이 왜곡되지 않고, 반드시 드러나기 바라는 마음”이라며 “입증 책임을 제조사로 전환하는 ‘도현이법’제조물 책임법 일부개정안도 꼭 통과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 [국민일보 관련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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