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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받을 땐 한국식, 봉양할 땐 미국식?…아들만 보면 화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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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81회 작성일 24-04-2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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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현성가명씨는 60대 중반의 남성입니다. 자수성가하여 회사 대표 자리까지 올랐고 퇴직한 뒤에는 집에서 주로 지내고 있습니다. 그는 30대 초반의 외아들이 있습니다. 아들은 고등학교 때 미국으로 가서 명문대학을 졸업했습니다. 졸업 뒤 귀국해 다국적 기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아들이 이번에 미국 유학 중에 만난 인연과 결혼을 했습니다. 사돈 집안은 남부럽지 않은 재력이 있는 집안으로 사위를 무척 좋아합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성공한 자식 농사이지만 현성씨는 전혀 좋지 않고 아들을 만날 때마다 이유 없이 예민해지고 작은 일에도 쉽게 화가 납니다.






지원받을 땐 한국식, 봉양할 땐 미국식?





현성씨의 아내는 ‘아들바라기 엄마’입니다. 아들 성공이 지상 목표였습니다. 아들이 어릴 적에는 집안이 넉넉하지 않았지만 아내의 주장으로 비싼 사립 유치원과 사립 중학교에 아들을 보냈습니다. 아들이 친구들 앞에서 기죽지 않도록 명품 옷을 입히고 명품 학용품을 사줬습니다. 현성씨는 원하지 않았지만 부모가 누리지 못했던 것을 아들에게는 해주자는 아내의 말에 결국 동의했습니다. 아들은 말 잘 듣는 모범생이었습니다. 고등학교도 미국 명문 기숙학교를 다녔고 아이비리그 대학에도 무난히 입학했습니다. 현성씨가 번 수입의 대부분은 아들에게 투자되었습니다.



현성씨의 아내는 아들을 만나기 위해서 수시로 미국을 오갔습니다. 현성씨는 작은 아파트에 전세로 살면서도 아들을 위해 아낌없이 돈을 쓰는 아내를 늘 지켜보았습니다. 현성씨가 생각하기에 아내의 마음에는 아들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현성씨는 이를 위해 필요한 현금자동인출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는 친구와 친척들에게 아들 자랑을 할 때 가장 즐거워 보였습니다.



아들이 결혼한 뒤 현성씨는 혼자 집에서 지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내는 친구들과 함께 골프 여행을 다녔습니다. 그는 이유 없이 슬프고 혼자 남겨진 듯한 외로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직장 다닐 때 함께 하던 동료들과 가끔 연락은 하지만 요즘에는 많이 뜸해졌습니다. 아들이 집을 찾아오는 횟수는 점점 줄고 연락도 거의 없습니다. 처가에는 매주 찾아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자신은 아들에게 모든 것을 쏟아붓느라 남은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 때문에 아들이 자신에게 관심이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자신은 아들과 아내에게 배신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들고 분노가 생겼습니다. 결국 참아오던 화를 아내에게 내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현성씨가 퇴직 후 히스테리가 생긴 것 같다며 현성씨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아들은 미국에서 오래 교육을 받아서인지 부모와 자식을 분리하는 걸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현성씨는 교육 비용을 한국식으로 지원받고 대학을 마치고는 미국식으로 부모와 상관없이 자신의 길을 가는 아들이 얄밉게 느껴졌습니다. 계속 혼자 남겨진 것 같은 우울감과 불안감을 느끼게 되었고 인근 정신건강의학과 외래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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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 받지 못한 사랑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상담을 통해서 현성씨는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 살아온 과정을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는 술만 마시면 자신을 때리고 정이라고는 없는 아버지 밑에서 자랐습니다. 어머니는 현성씨가 중학교 때 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현성씨는 아버지에게서 벗어나 서울의 친척 집에서 지냈습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머리가 좋아 공부를 잘했습니다. 대학교를 다니면서 등록금을 벌기 위해서 과외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그는 작은 회사에 들어가서 밤낮없이 열심히 일했습니다. 회사는 성장했고 현성씨는 노력을 인정받아 대표 자리에까지 올랐습니다.



현성씨는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성공을 위한 노력으로 승화시키고 과거의 트라우마로 힘들 때 더 열심히 일했습니다. 회사가 자신이고 자신의 정체성이었습니다. 하지만 회사에서 떠난 뒤에는 마음 둘 곳이 없어졌습니다.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고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 같은 느낌 속에서 살았던 현성씨의 어린 시절이 생각났습니다. 아내에게도 아들에게도 자신이 준 만큼의 사랑을 받지는 못한 것 같았습니다. 현성씨는 ‘왜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따뜻한 가정을 느껴볼 수 없는지?’라는 우울감에 빠져든 것이었습니다.



현성씨의 ‘안전기지’는 자신의 직장뿐이었습니다. ‘안전기지’는 내가 믿고 의지할 수 있으며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대상을 의미합니다. 이는 애착을 통해 형성되는데, 애착이란 강하고 지속적인 유대감을 말합니다. 유아와 부모의 초기 관계 형성이 애착을 형성하는 첫번째 중요한 시작이 됩니다. 초기 애착 관계가 잘 형성되면 그 뒤 인생에서 맺어지는 대인관계에 도움이 됩니다. 부모를 안전기지로 잘 형성했다면 다른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됩니다.



어린 시절의 경험과 부모와의 관계는 평생에 걸쳐 예민성을 줄이는 데 중요합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 그런 관계를 형성하지 못했다고 해서 좌절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 뇌는 현재의 좋은 기억을 통해 과거를 극복하는 새로운 신경망을 형성할 수 있습니다. 다만, 내가 편안하게 느끼는 사람과 일을 찾는 충분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취미, 좋아하는 책, 아니면 치료하는 의사가 이와 같은 편안함을 줄 수 있다면 큰 도움이 됩니다.



현성씨는 자신의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처음으로 털어놓으면서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버지가 선사하지 못한 편안함을 담당 의사에게서 받으면서 ‘좋은 아버지’의 느낌을 처음으로 생각해보았습니다. 가정을 꾸린 뒤 부모에게 기대지 않고 살아가는 아들의 모습을 독립적인 어른으로 성장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아내도 현성씨의 공허함과 외로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현성씨도 자신의 경험을 살려 책도 집필하고 봉사활동도 해볼 생각입니다. 현성씨는 지금부터 새로운 자신의 ‘안전기지’를 만들어갈 출발선에 섰습니다.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책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상담소’를 썼습니다. 글에 나오는 사례는 특정인을 지칭하지 않으며, 이해를 돕기 위해 여러 경우를 통합해서 만들었습니다. 자세한 것은 전문의와의 상담과 진료가 필요하며, 쉽게 자가 진단을 하거나 의학적 판단을 하지 않도록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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