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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탈모 10만명…탈모약 성지 종로5가 가보니[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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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26회 작성일 24-04-30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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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5가 병원·약국 탈모약 성지로 불려
약·처방전값 저렴해 탈모인 수십명 찾아
40분 넘게 기다려 진료 2분만에 처방 끝
탈모인 25만명 중 2030세대가 40% 차지
"탈모도 질병인 만큼 국가적 지원 필요해"

청년탈모 10만명…탈모약 성지 종로5가 가보니[현장]

[서울=뉴시스] 권신혁 수습기자 = 지난 20일 오전 10시께 탈모약 처방을 받기 위해 환자들이 병원으로 올라가고 있다. 2024.04.30. innovation@newsis.com





[서울=뉴시스]권신혁 수습 기자 = "탈모 때문에 머리까지 밀었어요. 졸업 후 취업 면접은 어떻게 볼 지 막막해요. 자영업이라도 해야 할까 봐요."

대학생 탈모인 이민근27씨는 탈모가 진행되자 머리를 밀었다. 빠진 머리카락이 점차 욕실 바닥에 쌓이자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삭발을 선택했다고 그는 말했다.


뉴시스는 지난 20일과 21일 이틀에 걸쳐 탈모인들의 성지 종로5가를 찾았다. 이 일대 병원과 약국은 다른 곳보다 처방전과 약값이 싸다. 이씨도 주로 이곳으로 탈모약을 처방받으러 간다고 했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토요일 아침에도 병원과 약국 앞은 모자를 푹 눌러쓴 청년들로 붐볐다. 2층에 자리한 병원 앞 계단부터 우산을 든 방문객들의 줄이 길게 늘어섰다.

한 환자가 작은 목소리로 "탈모 때문에 왔다"고 접수처에 말하자 직원은 말없이 키오스크 화면을 가리켰다. 굳이 직원과 대면하지 않아도 키오스크로 접수할 수 있는 구조다. 개인정보를 입력하자 남성 탈모약 처방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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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권신혁 수습기자 = 20일 오전 10시께 탈모인들의 성지 종로5가의 한 병원은 젊은 탈모인들로 가득 찼다. 2024.04.30. innovation@newsis.com





병원 안에는 20~30대로 보이는 젊은 남성들이 많았다. 좌석이 부족해 서 있을 정도였다. 청년들은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거나 고개를 푹 숙인 채 휴대전화 화면만 바라봤다.

오전 10시가 넘자 대기 인원수는 40명까지 늘어났고, 환자들 사이에선 "다음 주에 다시 올까"라는 말과 함께 한숨이 흘러나왔다. 접수처 직원은 대기 중인 환자들을 향해 "40분 정도 기다려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직원 한 명은 대기실을 돌아다니며 "불렀는데 왜 대답을 안 하느냐"라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 긴 대기시간에도 불구하고 중간에 모자를 벗어 머리를 정리하는 환자는 보이지 않았다.

40분 정도 기다린 끝에 기자의 이름이 호명됐다. 진료실의 의사는 기자에게 먹는 약이 있는지 물었다. 처음 처방받는 것이라고 대답하자 컴퓨터 화면을 통해 가격대별 선택지를 보여줬다. 카피 제품, 정품 등 여러 종류의 약이 보였고, 한 알당 가격대는 330원부터 1200원까지 다양했다.

가장 싼 카피 피나스테리드 성분의 약을 추천한 의사는 3개월부터 효과를 볼 수 있으며 첫 달에 성기능 장애라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진료를 받고 처방이 나오기까지 2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기자의 정수리나 이마를 의사가 직접 살펴보는 일도 없었다.

처방전을 받아들고 향한 병원 밑 약국의 창구 뒤에는 탈모약이 성인 남성의 키 높이까지 쌓여있었다. 창구 앞에는 마찬가지로 처방전을 쥔 청년 탈모인 5명이 차례를 기다렸다.

기자는 남성형 탈모전문 치료제라고 쓰인 오뉴페시아를 받았다. 약사는 빨간 글씨로 어린이, 가임기 여성이 절대 만지지 않도록 주의하세요라는 문구와 함께 복용법이 적힌 작은 종이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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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20일 오전 11시께 탈모인들의 성지 종로5가의 한 약국에서 처방받은 탈모약의 모습이다. 2024.04.30. innovation@newsis.com





약국 앞에서 만난 대학생 김모25씨는 모자를 벗어 머리를 보여주며 "군대 가기 전에 진단받고 전역 후에도 계속 여기서 진료받는다"고 말했다.

김씨는 "탈모 진단을 받은 뒤 손으로 계속 머리를 만지는 습관이 생겼다. 어느 정도 비었는지 확인하려고 무의식중에 한다"며 "어머니는 그만 좀 하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이어 "모발이식은 굉장히 비싸대서 아직 대학생 신분이라 약 처방만 계속 받는다. 앞으로 사회생활은 어떻게 할지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대구에 사는 직장인 최모29씨는 서울로 출장 온 김에 성지를 찾아 1년치 약을 처방받았다. 지방에서는 이 정도 가격에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최씨는 "사람을 많이 만나는 일을 하고 있는데 머리가 더 빠지게 되면…"이라며 말끝을 흐린 뒤 "결혼을 생각하고 있는데 소개팅에서 상대가 대머리면 어떻게 생각하겠느냐"라며 울상지었다.

사회 초년생 성모27씨는 2년째 이 병원을 다니고 있다. 그는 진료실에 들어가 의사와 긴 대화를 하지 않고 원하는 약을 1분 내외로 처방받을 수 있다며 이 병원을 "완전 공장식"이라고 말했다.

성씨는 탈모로 겪은 어려움을 묻자 "매일이 에피소드"라며 "입사 전 면접 때부터 스트레스였다. 누가 탈모로 뭐라고 하진 않겠지만 나 혼자 주눅이 들고, 자신감이 떨어진다"고 했다.

성지에서 만난 청년 탈모인들은 "탈모는 국가적 지원이 필요한 질병"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민근씨는 이곳에서 처방받은 탈모약을 꾸준히 먹으며 머리도 주기적으로 밀고 있다.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매번 빠지지 않는 주제는 이씨의 대머리다. 놀림을 당하는 것에 이제 익숙해졌지만 가끔 화도 나고 주눅이 든다고 이씨는 말했다.

그는 "면접관들이 대머리인 나를 어떻게 볼 지 뻔하다"며 "보수적인 직장은 아예 꿈도 못 꾼다"고 했다. 언젠가 하게 될 결혼식에서 남은 머리를 지켜 멋진 모습으로 식장에 입장하는 것이 이씨의 작은 소망이다.

성씨도 "일상이 불편하고 힘들면 질병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딱 탈모"라고 전했다. 최씨 역시 "솔직히 질병이 맞다. 이만큼 스트레스로 마음고생이 심한데 어떻게 병이 아닐까. 나보다 더 탈모가 심하면 밖에서 생활하는 것 자체가 고통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직장인 한모31씨는 "내 머리만 봐도 축축 처지고 기분이 안 좋아진다. 탈모 때문에 우울증을 의심하기도 했다"라며 "어쩔 땐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다. 우리에게 탈모는 질병 그 자체"라고 했다.

실제 국내 탈모증 환자 숫자가 꾸준히 늘어나는 가운데 2030 청년 탈모인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2015년 약 20만8000명이었던 탈모 환자 수는 2022년 24만8000명으로 약 4만명 증가했다. 같은 해 전체 탈모인 중 20~29세는 18.6%, 30~39세는 21.5%로 40대 이하 청년 탈모인이 전체의 40% 이상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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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권신혁 수습기자 = 탈모인 이민근27씨는 탈모가 진행되자 머리를 밀었다. 사진은 머리를 민 이씨의 모습이다. 2024.04.30. innovation@newsis.com





권오상 서울대학교병원 피부과 교수는 젊은 탈모 환자 증가의 원인으로 ▲빨라지는 사춘기 시작 시기 ▲서구화된 식단 ▲과체중 ▲운동량 부족 등을 뽑았다. 서구화된 식단으로 육류 섭취가 늘고, 이로 인해 생긴 지방이 호르몬 균형을 무너뜨린다는 것이 권 교수의 설명이다.

권 교수는 "사고로 생긴 얼굴의 흉터는 질환으로 취급돼 보험의 적용도 받고 군 면제도 받는다. 탈모도 흉터와 크게 다르지 않다"라며 "탈모의 진행을 너무 미용적인 부분으로만 생각하는 것 같다"며 "탈모도 질환으로 인정해 줘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탈모가 진행되면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조기 치료가 중요하다"며 "젊은 탈모인들을 위한 지원책을 지자체 규모에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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