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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에 납치된 딸은…韓모녀 이야기, BBC 라디오 전파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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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57회 작성일 24-06-30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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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최초로 BBC 라디오극 공모전에서 우승한 권혁인 작가가 17일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 사옥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 강정현 기자

한국인 최초로 BBC 라디오극 공모전에서 우승한 권혁인 작가가 17일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 사옥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 강정현 기자


방탄소년단BTS의 노래 ‘페이크 러브’를 즐겨 듣는 34세의 루아. 독립할 나이지만 엄마 순자64의 곁을 떠나기엔 서울에서의 삶이 너무 팍팍하다. 오늘도 엄마가 차려준 밥을 먹고 있는데, TV에서 보이지 않는 신비한 힘이 동물들을 납치하고 있다는 이상한 뉴스가 흘러나온다.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겪은 할머니 정희89는 패닉에 빠진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 권혁인 작가38가 영어로 집필한 BBC 라디오극 ‘스테디 아이즈Steady Eyes’의 내용 일부다. 서울에 사는 모녀 3대의 갈등을 통해 한국의 아픈 역사가 개개인의 삶에 미친 영향과 함께 모성의 부재, 정서적 대물림 등의 주제를 탐구한 작품이다. 생일에 먹는 미역국, 제사 때 먹는 소고기 뭇국 등 한국적 요소도 들어가 있다. 여기에 ‘외계 생명체가 동물들과 60세 미만의 사람을 잡아간다’는 공상과학적 요소가 가미돼 이야기에 긴장감을 더한다.


이 작품은 지난 15일현지 시간 전 세계 3억 명 이상이 듣는 BBC 국제 라디오 방송인 BBC 월드서비스 채널에서 방송됐다. 권 작가는 이 작품으로 BBC 월드서비스와 영국문화원이 지난해 말 주최한 ‘제28회 국제 라디오극 공모전’에서 한국인 작가 최초로 영어 비모국어 부문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영국 런던 BBC 라디오 드라마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권혁인 작가의 스테디 아이즈. 제28회 BBC 국제 라디오극 공모전 영어 비모국어 부문 수상작이다. 사진 BBC 라디오 홈페이지

영국 런던 BBC 라디오 드라마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권혁인 작가의


심사위원장인 나이젤 해이스팅스는 ‘스테디 아이즈’의 독창적인 전제와 대담한 스토리텔링을 높이 샀다. 김네모 문화평론가는 “한국 가족 관계의 독특한 측면과 보편적 주제를 능숙하게 결합했다”면서 “BTS와 같은 K컬처 트렌드를 가미하면서 사랑, 희생, 갈등, 화해 등 시공간을 초월한 정서를 공상과학 가족 드라마라는 특색 있는 장르에 담았다”고 평가했다.

최근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 사옥에서 만난 권 작가는 “영화 분야에서 일하는 꿈을 갖고서 지난 10여년 간 영어, 일본어, 중국어 등 다양한 언어로 글을 써왔다. 2015년부터 꾸준히 같은 공모전에 출품해 오다가 8년 만에 수상하게 됐다. 한류의 세계적인 현상이 내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가 다양한 언어로 작품을 쓰는 이유는 “언어마다 표현 방식이 달라 재미있어서”란다. 그는 한예종 영상원 영화과를 졸업한 뒤 영국 런던정치경제대학교LSE와 중국 후단대학교에서 글로벌 미디어amp;커뮤니케이션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일본어는 일어 원서로 생물학을 전공한 어머니를 둔 덕분에 단편영화를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유창하다.

권 작가는 “유학 시절부터 서양 미디어가 유색 인종을 묘사하는 방식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우리 이야기를 영어로 옮기는 작업에 더욱 몰두한 것 같다. 여러 문화권을 아우르는 전업 작가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영국 런던 BBC 라디오 드라마 스튜디오에서 작업 중인 권혁인 작가왼쪽와 젬마 젠킨스 BBC 프로듀서. 사진 본인 제공

영국 런던 BBC 라디오 드라마 스튜디오에서 작업 중인 권혁인 작가왼쪽와 젬마 젠킨스 BBC 프로듀서. 사진 본인 제공



Q : ‘스테디 아이즈’는 어떤 아이디어로 시작한 작품인가.
A : “‘전쟁을 겪은 트라우마는 삼대까지 남는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듣고 연구해보고 싶었다. 집필 당시 읽었던 이민진 작가의 소설 ‘파친코’의 영향을 받은 부분도 있다. 전쟁통에서 버텨 살아남은 할머니, 모성애를 느끼지 못하고 외롭게 자란 엄마가 도망치듯 택한 결혼에서 태어난 딸, 그리고 그 딸도 자존감 있게 살진 못하고 있다. 지위·명예·부 등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서울에서 번아웃을 겪으며 힘들어한다.”

Q : 작품에선 딸이 외계인에 납치 당하며 끝나는데, 그 뒤엔 어떻게 됐을까.
A : “지구엔 60세 이상의 사람만 남는다. 지구 생태계가 무너지고 고령화되는 모습을 의미한다. 그런 디스토피아 세상에선 어쩌면 외계인을 따라가는 것이 새로운 유토피아를 찾는 길일지도 모른다.”
영어, 중국어, 일본어로 글을 쓰는 권혁인 작가는

영어, 중국어, 일본어로 글을 쓰는 권혁인 작가는 "언어를 배우는 것에 관심이 많고 욕심도 많다"고 말했다. 사진 강정현 기자



Q : 본인을 캐릭터에 투영한 부분이 있다면.
A : “루아는 미국 유학의 기회를 놓친 것을 후회하고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라고 자조한다. 나도 미국 유학 등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이 있다. 루아가 BTS 노래를 따라하는데, 내가 아미BTS 팬덤라서 극중 기자 이름도 김석진BTS 진의 본명으로 정했다. 학교에선 일본어만 써야 했고, 남장을 하고 다녀야 안전했다는 일제강점기 부분은 할머니 경험담에서 가져왔다.”

Q : 이 작품에 대한 BBC의 평은 어땠나.
A : “문화적 요소를 묻진 않았다. 배우들도 한국계 두 명을 포함해 대부분 아시아계라서 다들 정서적으로 이해하는 부분이 있었다. 놀라웠던 건 BBC에 언어 담당 부서가 있다는 점이다. 그 부서에서 극중 캐릭터명이나 ‘이생망’과 같은 한국어 발음 표기를 정리해줬다.”

Q : 앞으로의 꿈은.
A : “영어로 첫 소설을 쓰고 있다. 내 작품들을 잘 쌓아서 전업 작가가 되는 것이 목표다. 지금은 벌이가 부족해 과학 학술지 에디터 일도 겸하고 있다. 나만의 경험들을 잘 쌓아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황지영 기자 hwang.jee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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