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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인사해도 친했던 엄마들이 모르는 척하네요…내가 미혼모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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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238회 작성일 24-05-16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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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딸에게 호적 파가고 집에 발 들이지 말라 호통"
"미혼모라는 사실 알게 된 직장 동료들이 거리 두기도"
"남자친구가 도주해 미혼모 됐는데…사회적 편견 억울"

[※ 편집자 주= 김민정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대표의 인터뷰 기사는 분량이 많아 세 차례로 나눠 송고합니다. 첫 번째 기사는 10일 [삶] "일부러 월세 살고, 車 파는 아빠들…미혼모에 양육비 안주려고"라는 제목으로 나갔습니다. 이번이 두 번째 기사입니다. 정책적, 구조적 문제 등을 다룬 세 번째 기사는 다음 주 중후반에 나갈 예정입니다. 자서전적 인터뷰여서 개인적 스토리가 많이 들어갑니다.]

[삶] quot;인사해도 친했던 엄마들이 모르는 척하네요…내가 미혼모라고quot;

서울=연합뉴스 윤근영 선임기자 = 한 미혼모는 초등학생의 엄마다. 녹색 어머니 활동을 열심히 했다. 어느 날 그는 아주 친한 학부모 한명에게 자기가 미혼모라는 사실을 말했다. 그러자 녹색 어머니 활동을 같이하는 학부모들이 그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먼저 인사를 해도 아는 척도 하지 않고 그냥 모르는 척, 쳐다만 보고 지나갔다. 자기 아이들에게는 이 엄마의 아이와 놀지 말라고 했다.

이는 김민정50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대표가 전한 한 회원의 이야기다.

김 대표는 지난달 25일과 30일 연합뉴스와의 두차례 인터뷰에서 미혼모들은 부모, 사회, 직장, 친구들로부터 소외되고 단절되는 삶을 산다고 했다.

그는 "가정에서 아버지는 미혼모 딸에게 집에서 나가라고 하고, 학교 측은 자퇴를 종용하고, 직장 상사는 퇴직하라고 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미혼모에 대한 이런 반응은 억울한 측면이 있다"면서 "남자 친구가 책임을 안 지고 도망갔지만, 미혼모는 자기 행위에 책임을 지고 끝까지 생명을 지킨 사람들"이라고 했다.

1974년 경남 합천에서 태어난 김 대표는 아버지가 스님이 되고, 어머니가 집을 떠나는 바람에 홀할머니 아래에서 성장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한겨울에도 고무장갑 없이 빨래했고, 초등학교 4∼5학년 때부터는 남의 집 논에 가서 벼 베기, 모내기를 도와주고는 약간의 품삯을 얻었다. 매일 똑같은 김치 반찬 도시락이 싫어서 초등학교와 중학교 점심시간에는 밥을 먹지 않고 교실에서 나와 계단에 앉아 있었다.

그는 야간 여자상업고등학교에 다니면서 낮에는 실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부기, 타자 등을 배웠다. 이런 주경야독의 생활은 야간 전문대학교 시절까지 이어졌다.

그는 만 30세 때 남자 친구와의 사이에서 원하지 않는 임신을 했다. 남자친구는 낙태하라고 했지만 김 대표는 거절했다. 그의 아이는 성장해서 20대 초반의 대학생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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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할머니 아래에서 자랐는데, 어린 시절에 어머니가 보고 싶지 않았나.

▲ 강렬하게 보고 싶지는 않았다. 다만, 엄마가 어떻게 생겼고,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긴 했다. 우리 집에는 엄마의 사진 한 장 남아 있지 않았다. 가난해서 사진을 못 찍었을 수도 있고, 할머니가 모두 치웠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니 엄마의 얼굴을 알 수가 없었다. 나의 마음속에는 원망보다는 나를 낳아주신 분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던 것 같다. 스님이 되신 아버지는 1년에 1∼2차례 집에 오셔서 하루 이틀 머물다 가시곤 했다.

-- 어머니를 만난 것은 언제인가.

▲ 2013년, 내가 마흔 살 때였다.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웠고 빚까지 있어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고민 끝에 수소문해서 어머니한테 연락했다. 서울 광진구 중곡동 어린이대공원에서 만났는데, 아이는 처음 보는 할머니에게 금방 "할머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아이에게 놀이기구를 태워주셨다. 나를 마주한 어머니는 "너희 자매를 키워주지 못해 미안하다"면서 많이 우셨다. 나는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 어머니는 왜 한 번도 집에 찾아오지 않았다고 하나.

▲ 어머니는 우리 자매를 잊은 적이 없다고 했다. 가끔 집에 전화했는데, 그때마다 할머니가 우리를 바꿔주지 않았다고 한다. 아이들에 대해 궁금해하지도 말고, 전화하지도 말라고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는 것이다. 아이들을 버리고 가고는 왜 전화를 하느냐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할머니는 우리 남매한테 엄마로부터 전화가 왔었다는 이야기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 어머니에게 자식들을 두고 떠난 이유를 물어본 적이 있나.

▲ 어머니는 아이 둘을 데리고 살기 어려워서 그랬다고 했다. 아무런 기술이 없고 돈도 없는 상태에서 남편 없이 혼자 아이들을 키우기가 너무 막막했다고 했다. 게다가 시어머니김 대표의 할머니와 시누이들김 대표의 고모들 가운데 누구 하나 엄마 편이 없어서 힘들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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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부가 아이를 키우는 게 쉽지 않은데, 미혼모는 더욱 어려울 듯하다.

▲ 아이한테 뭔가 해주고 싶은데 경제적 여건이 안 돼서 해주지 못할 때 엄마로서 마음이 아프다. 우리 아이는 음악에 재능이 있어서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싶어 했지만, 학원비가 너무 비싸서 보내지 못했다. 대학도 예술 계통으로 가고 싶어 해서 나는 투잡이라도 뛸 생각을 했다. 레슨비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는 엄마가 힘들까 봐 레슨을 포기하고, 멀리 있는 지역으로 저렴한 강의를 들으러 다녔다. 40분 강의에 참석하기 위해 왕복 3시간의 거리를 다니는 아이에게 너무 미안했다.

-- 자녀가 아기일 때는 더욱 힘들 텐데.

▲ 아기는 밤낮이 바뀌는 경우가 꽤 있다. 엄마가 잠을 제대로 못 자니 잠깐이라도 쉬어야 한다. 미혼모는 아기를 맡길 데가 없으니 더욱 힘들 수밖에 없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경우에도 문제가 생긴다. 아이가 아프면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오는데, 일을 하고 있으니 달려갈 수 없다. 누구한테 부탁해야 하지만 미혼모 주변에는 그럴만한 사람이 없다,

-- 미혼모들이 친정 부모님께 부탁할 수는 없나.

▲ 쉽지 않다. 집에서 쫓겨난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주로 아버지들이 딸에게 집에서 나가라고 한다. 호적을 파서 나가라고 하고, 집에는 발도 들이지 말라고 한다. 이런 아버지도 시간이 흐르면 바뀌는 경우가 꽤 있다. 아기를 한번 보고, 두 번 보면 자기 핏줄인 아기가 이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 부모님들은 딸의 임신 사실을 비교적 일찍 알게 되지 않나.

▲ 그렇지 않다. 딸이 마음먹으면 임신 7개월까지는 숨길 수 있다. 임신 초기에는 배가 많이 불러오지 않기에 펑퍼짐한 옷을 입으면 같이 사는 부모도 눈치채지 못한다. 8개월 정도가 되면 더 이상 감추기 어렵다. 이때 임산부는 친구 집에 가는 등의 방식으로 집을 나온다. 이렇게 되면 부모가 딸의 임신과 출산을 모를 수 있다.

-- 대체로 부모님은 딸이 임신한 것을 알게 되면 어떤 반응을 보이나.

▲ 기절하다시피 한다. 그다음에는 낙태하라고 한다. 딸이 거부하는데도 부모가 낙태를 강행하는 일이 많다. 이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대학교 저학년의 한 여학생이 임신한 일이 있었다. 부모는 낙태하라고 했지만, 딸은 아기를 낳으려 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딸을 병원에 강제로 끌고 가서 낙태 수술을 받도록 했다. 그 여대생은 아기를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 극단적 선택을 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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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생이 아이를 낳으면 학교에 다니지 못하나.

▲ 학교 측이 퇴학시킬 수는 없다. 자퇴를 종용하는 경우는 있다. 학생 본인도 검정고시를 보면 되기 때문에 굳이 학교에 다니는 것을 고집하지 않는다. 이미 소문이 퍼졌기에 학교 다니는 것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 미혼모가 다른 학부모들에게 차별받는 일도 있나.

▲ 초등학생을 둔 한 미혼모가 있었다. 그 엄마는 녹색 어머니 활동을 열심히 했다. 이 활동은 아이들 등교 시간에 학교 근처에서 교통정리를 하는 학부모들의 자원봉사를 말한다. 그 엄마는 그 활동을 하면서 다른 학부모들과 잘 어울렸다. 어느 날 이 엄마는 친한 다른 엄마에게 자신이 미혼모라는 사실을 이야기하게 됐다. 그랬더니 학부모들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 엄마가 인사를 해도 받아주지 않았다. 멀뚱멀뚱 쳐다보고는 모르는 척하고 그냥 지나쳤다. 이 엄마들은 자기 자식이 이 미혼모의 아이와 노는 것도 막았다.

-- 미혼모 자녀들은 잘 성장한다고 하던데.

▲ 사람들이 우리 미혼모와 자녀들을 주시한다. 색안경을 끼고 문제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갖고 관찰하는 것이다. 미혼모의 아이들은 생각보다 잘 성장한다. 재능이 있고, 공부를 잘하는 경우가 많다. 엄마가 고생하는 것을 눈으로 보니 일찍 철이 들어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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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혼모가 되면 친척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나.

▲ 친척들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부모가 친척들 만나는 것을 자제하기 때문이다. 만나서 이야기하다 보면 딸이 결혼 전에 아기를 낳은 사실을 친척들이 알게 되니 아예 왕래하지 않는 경우가 꽤 있다. 부모도 단절을 겪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친척들도 알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미혼모라는 점에 대해 좋게 보지 않는다.

-- 본인이 미혼 상태에서 아이를 낳은 것에 대해 친척들은 뭐라고 했나.

▲ 할머니 생신날, 부산 큰댁에 친척들이 모였다. 아이가 4살 때였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아이를 데리고 갔다. 친척들은 놀라는 눈치였다. "어떻게 된 것이냐?", "결혼도 안 하고 왜 아이를 낳았느냐?", "아이 아빠는 누구냐?"고 했다. 그러자 아버지가 "아무것도 묻지 말라"고 선을 그었다. 당시에는 그 말씀을 해주신 아버지가 고마웠다. 할머니도 놀라셨지만 좋은 말씀을 해주셨다. 나한테 가족이 생겼으니 이제 내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고 하셨다. 내가 책임감 있게 살아갈 것이니 안도한다는 의미였다.

-- 친척들이 본인의 귀농을 막았다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인 2012년께 귀농을 하려 했다. 서울에 살 집이 없었고, 수입도 부족했기 때문이다. 차에 이삿짐을 싣고 합천의 우리 집에 왔는데, 이웃 마을에 살던 작은 어머니가 오셨다. 그분은 "결혼도 안 하고 애 낳은 게 무슨 자랑이라고 여기에 와서 살려고 하느냐. 동네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라고 했다. 나는 기분이 매우 나빴지만, 아이가 옆에 있었고 어른이 하는 말씀이어서 아무런 항의를 하지 못했다. 아이와 나는 3∼4개월 정도 고향 집에 머물다 서울로 다시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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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혼모들은 직장에서도 부당한 대우를 받나.

▲ 권고사직으로 처리되는 경우가 있다. 그건 그나마 다행이다. 고용보험을 통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냥 퇴직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회사 측은 직접적으로 나가라고 하지 않는다. 알게 모르게 압력을 가한다. 과도한 업무를 맡기거나 다른 분야의 업무를 추가로 떠넘기는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직장 생활이 너무 힘들게 되니 그냥 나가게 된다.

-- 회사 측이 미혼모를 퇴사시키려는 이유는.

▲ 회사 이미지가 나빠진다는 이유로 퇴사시키는 일이 꽤 있다. 어린이집에 한 미혼모가 근무하고 있었다. 원장이 미혼모라는 사실을 알고는 대놓고 나가라고 했다. 어린이집 이미지를 실추시킨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엄마는 저항 없이 퇴사하고 말았다.

-- 직장 동료들도 미혼모라는 것을 알면 부정적 반응을 보이나.

▲ 한 엄마는 직장에 다니던 중 미혼모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갑자기 동료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말을 건네지 않고 거리를 뒀다. 결국 그 엄마는 퇴사하고 말았다. 현재, 학원에서 일하는 한 미혼모는 직장 상사가 비꼬는 식으로 말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 미혼모는 직장을 그만두고 싶지만, 돈이 필요해서 퇴사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 미혼모라는 것을 알고 추근거리는 사람도 있다고 하던데.

▲ 한 동네 아저씨가 미혼모라는 것을 알고는 "오늘 집에 가면 밥 한 끼 차려주려나?", "오늘 재워주려나?" 같은 말을 하는 사례가 있었다. 어떤 엄마는 사이버 학교에 다녔고, 오프라인 모임에도 갔다. 그 모임에 나온 한 유부남이 미혼모인 것을 알고는 집 앞까지 따라왔다. 결국은 스토킹 사건으로 확대돼 법적 소송까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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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녀들은 엄마가 미혼모라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는 않나.

▲ 별로 개의치 않는 것 같다. 우리 아이는 초중고 다닐 때 친구들에게 "나는 아빠 없이 그냥 엄마와 살고 있어"라고 말하고는 친구들과 잘 지냈다. 요즘은 이전과 달리 가족 형태가 다양해져서 아빠 없이 사는 것이 특이하지 않다. 친구들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주변의 시선에 예민한 미혼모 자녀들도 있다.

-- 본인의 아들은 엄마가 미혼모라는 것을 언제 알게 됐나.

▲ 아들이 아빠에 관해 의문을 갖고 물었던 것은 5살 때쯤이었다. "엄마, 나는 왜 아빠가 없어?. 나도 아빠 보고 싶은데"라고 했다. 나는 "아빠와 같이 살 수 없어서 너는 엄마와 살고 있는 거야. 엄마는 아빠 연락처를 몰라서 연락하지 못했어"라고 답변했다. 그 당시 아이는 엄마가 당연히 결혼해서 자기가 태어난 줄 알고 있었다. 아이는 "엄마가 조금만 참지, 왜 아빠를 내보냈어?"라고도 했다. 엄마가 미혼모라는 것을 아이가 안 것은 초등학교 고학년, 아니면 중학교 때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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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인 인생에서 하이라이트는 언제였다고 생각하나.

▲ 지금인 것 같다. 아이가 다 커서 자유시간도 많다. 미혼모를 대변하는 활동을 하고 있는데 내가 이런 일을 할 수 있고, 누군가는 내 말을 들어주니 감사하다,

-- 후회되는 게 있다면.

▲ 아이가 태어났는데, 4년간 그걸 감췄다. 그때는 용기가 없었고, 자신감도 부족했다. 누군가에게 아이의 존재를 알리는 것이 두려웠다. 가족에게는 빨리 아기의 모습을 보여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아이와 할아버지의 애착 관계가 형성되지 못했다. 나한테도 마이너스이고, 아이에게도 손해였다.

-- 본인의 삶의 원칙이 있다면.

▲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삶을 살지 말자는 것이다. 나는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으면 도우려 한다. 그냥 지나치면 마음이 너무 불편하기 때문이다.

--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 미혼모 가정이라고 해서 다른 가정과 다를 게 없다. 아이에게 아빠를 만들어줄 기회를 놓쳤을 뿐이다. 미혼모는 아이 아빠가 도주한 상황에서 용기를 갖고 생명을 지켜낸 사람이다. 그러니 저희들 가정에 대해 편견을 안 가져주시면 고맙겠다. 혼자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힘든 것은 사실이다. 부모, 사회, 친구로부터 모두 단절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미혼모에게 "대단하다", "잘하고 있다"고 한마디 해주면 큰 힘이 된다. 취재지원 이은도 인턴기자

keunyo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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