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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먹으러 오라" 말에…경찰과 밥친구 된 노숙인의 보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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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233회 작성일 24-06-22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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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경찰서 김용만 경위. 사진 서초경찰서 제공

서울 서초경찰서 김용만 경위. 사진 서초경찰서 제공

20일 오전 8시 서울 서초경찰서 구내식당에 검은색 야구모자를 쓴 한 남성이 들어섰다. 아침 식사를 하는 다른 직원들과는 달리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그는 익숙한 듯 식판을 집어 밥과 반찬을 담은 뒤 자리를 잡았다. 경찰서에서 승용차로 5분 거리인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일대에서 2년째 노숙 생활을 하는 박경수가명·55씨다.

그의 맞은편엔 27년차 경찰인 서초서 강력계 형사 김용만54 경위가 앉았다. 김 경위는 셀프 코너에서 직접 만든 계란부침을 박씨의 짜장밥 위에 얹어줬다. 두 사람은 1980년대 인기 그룹가수인 ‘배따라기’의 영상을 유튜브에서 본 이야기를 나누며 밥을 먹었다.


두 사람은 지난 2월 경찰과 피의자로 처음 만났다. 김 경위는 분실 신고된 신용카드 사용 사건을 수사하다가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박씨를 붙잡았다. 박씨는 5000원, 1만원 등 소액을 음식을 사는 데 썼다. 조사 과정에서 박씨가 하루에 한 끼만 먹고 산다는 이야기를 들은 김 경위는 “이런 짓 하지 말고 경찰서로 아침밥을 먹으러 오라”고 했다.

이튿날 아침 8시 박씨가 경찰서로 찾아오면서 두 사람은 아침밥 친구가 됐다. 1인당 5000원인 식사 비용은 김 경위가 낸다. 김 경위는 박씨가 경찰서까지 버스를 타고 오거나 쉬는 날 끼니를 챙길 수 있도록 종종 교통카드에 돈을 충전해준다. 낯선 인물과 매일 아침밥을 먹는 김 경위를 수상하게 여기던 동료들 사이에선 이내 선행이 입소문을 탔다.
박경수가명씨가 고속터미널에서 주워 김용만 경위에게 건넨 분실 카드들위. 20일 박씨가 주워온 카드와 주운 일시 등이 적혀 있는 메모. 이보람 기자

박경수가명씨가 고속터미널에서 주워 김용만 경위에게 건넨 분실 카드들위. 20일 박씨가 주워온 카드와 주운 일시 등이 적혀 있는 메모. 이보람 기자

박씨도 김 경위 호의에 화답했다. 그는 터미널을 이용하는 시민들이 흘린 신용카드나 지갑 등을 주워 경찰서에 갖다 줬다. 박씨가 4개월 동안 주워 온 신용카드는 90장에 이른다. 박씨는 이날 아침에도 카드를 주운 일시와 장소 등이 적힌 메모와 함께 카드 한 장을 김 경위에게 건넸다. 터미널 일대 노숙인들의 건강 상태 등 근황을 알려주기도 한다.

박씨는 “김 반장님은 죽으려던 저를 다시 살린 사람”이라고 말했다. 극단적인 선택까지 생각했던 시절 김 경위를 만나 다시 한번 삶의 의지를 다지게 됐다는 것이다. 점유이탈물횡령 등 혐의로 벌금형 처벌을 받은 박씨는 최근 다시 사회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그는 “요즘엔 다시 사회에서 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노숙인 자립센터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프로그램이 끝나면 아르바이트라도 해 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지난 20일 서울 서초경찰서 형사인 김용만 경위 사무실에 붙어 있는 화이트보드. 서초구 반포동 서울고속버스터미널 노숙인들의 사진과 특징 등이 적혀 있다. 이보람 기자

지난 20일 서울 서초경찰서 형사인 김용만 경위 사무실에 붙어 있는 화이트보드. 서초구 반포동 서울고속버스터미널 노숙인들의 사진과 특징 등이 적혀 있다. 이보람 기자


김 경위는 박씨와 연을 맺으면서 범죄 노출될 가능성이 큰 노숙인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의 사무실엔 터미널에 살며 범죄를 저질렀던 노숙인들 사진과 정보가 빼곡히 적힌 화이트보드가 걸려 있다. 김 경위는 “더 힘든 일을 하는 경찰이 많은데 이런 일로 주목받게 돼 민망하다”며 “이제는 박씨가 친구 같다. 매일 아침 환하게 웃으면서 경찰서에 들어서는 박씨 생각에 지각도 못 한다”고 말했다.

이보람 기자 lee.boram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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