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료생 251명 중 우리 아들만 없네요"…얼차려 사망 훈련병 母 편지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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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권센터, A4 2장 분량 편지
19일 용산 인근 분향소 차려져 훈련병 모친, 조문객 받을 예정 얼차려군기훈련를 받다가 쓰러져 이틀 만에 숨진 훈련병의 어머니가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 셋째도 안전하게 훈련 시키겠다던 대대장의 말을 기억한다"며 정부와 군 관계자들을 비판했다. 군인권센터는 19일 훈련병 박모씨의 어머니가 전해 온 A4용지 2장 분량의 편지를 공개했다. 그는 편지에서 "도대체 군대는 하늘 같은 생명을 어떻게 아는 것이냐"며 "대낮에 규정에도 없는 군기훈련을 받다가 목숨을 잃은 아들을 어떻게 책임질 건가"라고 지적했다. 이날은 박씨가 소속됐던 12사단 신병대대의 수료식이 열리는 날이다. 편지에는 얼차려를 지시한 중대장과 훈련 강도에 대한 질타가 담겼다. 박씨의 어머니는 "자대 배치를 염두에 두고 전우와 몇 마디 나눈 것이 그렇게 죽을 죄냐"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26㎏의 완전군장 상태에서 총을 땅에 닿지 않게 팔굽혀 펴기를 시키고, 총을 땅에 떨어뜨리면 다시 시작시키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구보를 뛰게 하다가 아들을 쓰러뜨린 중대장과 우리 아들 중 누가 규칙을 더 많이 어겼나"라며 "안전하게 훈련시켜 수료식 날 보여드리겠다던 대대장의 말을 기억한다"고 했다. 박씨가 쓰러진 뒤 군에서 유족 측에 온 연락 내용도 언급됐다. 박씨의 어머니는 "지난달 23일 오후 5시 43분쯤 소대장으로부터 군기훈련을 받다가 쓰러져 중대장과 병원으로 이송 중이다라는 첫 전화를 받았다"며 "이후 어느 병원으로 보낼지 결정하라는 중대장의 연락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당시 중대장은 무슨 일 나면 나라에서 책임지냐는 물음에 그렇다고 답했다"면서 "지금 무슨 책임을 지고 있느냐"며 원통해 했다. 숨진 아들에 대한 그리움도 편지 곳곳에 담겼다. 박씨 어머니는 "지난달 12사단에 입대하면서 충성 경례를 했던 의젓한 아들이 이제는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다"며 "아들이 다시 살아 돌아 온다면 더 일찍 쓰러지는 척이라도 하지 그랬느냐고 전하고 싶다"고 털어놨따. 편지 말미에는 "오늘 수료생 251명 중 우리 아들만 없다"며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다 죽임 당한 아들이 보고 싶다"고 썼다. 이날 박씨의 어머니는 서울 용산역 광장 인근에 차려진 분향소를 방문해 조문객을 맞이할 예정이다. 센터는 "부모님께서 답답한 수사 상황과 군, 가해자들이 보여준 일련의 행태를 보면서 직접 분향소로 나오기로 했다"며 "연대의 마음을 더해달라"고 밝혔다.
박 훈련병 어머니 편지 전문
12사단에서 아들을 떠나보낸 박OO 훈련병의 엄마입니다.
12사단 입대하던 날 생애 최초로 선 연병장에서 엄마, 아빠를 향해서 ‘충성’하고 경례를 외칠 때가 기억납니다. 마지막 인사하러 연병장으로 내려간 엄마, 아빠를 안아주면서 “군생활 할만 할것 같다”며 “걱정마시고 잘 내려가시라”던 아들의 얼굴이 선합니다. 승용차로 6~7시간을 달려야 집에 도착할 엄마, 아빠를 걱정하며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충성” 경례 한번 잘한 것 갖고 제법 씩씩 의젓하게 말하며 안심하고 돌아설 수 있도록 오히려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등을 다독이던 우리 아들. 이제는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습니다. 아들이 떠난 텅 빈 세상에서 그날을 그려봅니다. 4개월간 입대를 위한 노력을 펼치다가 드디어 가게 된 곳이 12사단 신병훈련소였습니다. `거기가 어디야?`하고 묻는 엄마에게 아들은 ‘강원도 인재군 원통리요’ 라고 대답했습니다. 제가 “오매 거기가 옛말에 ‘인제가면 언제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 하던 멀고 험한 전방이구만. 어쩐다냐?”하고 우스갯소리를 했습니다. 그러곤 주일 예배 때 마지막 반주를 하곤 점심밥 먹으면서 할머니 권사님들의 용돈을 받더니 “휴가 올 때 주일 껴서 와서 반주할게요”하고 약속하고 출발하여 12사단을 답사하고 인제에서 하룻밤을 같이 지낸 것이 아들과의 마지막 기억입니다. 우리 마음을 군대는 알까요? 이 나라의 우두머리들은 알까요? 아들이 입대하러 하루 먼저 가서 대기하다가 군말 없이 죽어 간 것을 그들은 알까요? 대낮에 규정에도 없는, 군기훈련을 빙자한 광란의 질주를 벌이고 있는 부하를 두고 저지하는 상관 하나 없는 군대에서, 살기 어린 망나니 같은 명령을 받고 복종하는 병사들의 마음을 알까요?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 셋째도 안전하게 훈련 시켜 수료식 날 보여드리겠다’던 대대장님의 말을 기억합니다. 우리 아들의 안전은 0.00001도 지켜주지 못했는데 어떻게, 무엇으로 책임지실 것인지요? 망나니 같은 부하가 명령 불복종으로 훈련병을 죽였다고 하실 것인가요? 아니면 아들 장례식에 오셔서 말씀하셨듯 “나는 그날5월 23일, 아들이 쓰러진 날 부대에 없었습니다”라고 핑계를 대실 것인가요? 아니면 “옷을 벗을 것 같습니다”라던 말씀이 책임의 전부인 걸까요? 도대체 이놈의 군대는 하늘 같은 생명을 알기를 어떻게 알길래...... 우리 아들, 신병으로 9일 동안 지내면서 겨우 친해진 옆 전우와 취침시간에 말을 조금 했다고 합니다. 군이 처음 사랑스러운 우리 아들에게 씌운 프레임은 “떠들다가 얼차려 받았다”입니다. 떠든다는 표현이 평소 아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기 때문에 믿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동료와 나눈 말은 ‘조교를 하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겠네’ 같은 말이었다고 합니다. 그러곤 들켜서 얼차려를 받았습니다. 자대배치를 염두에 두고 몇 마디 한 것뿐일 테지요. 그게 그렇게 죽을죄입니까? 군장을 아직 다 보급받지도 않아서 내용물도 없는 상황에서 책과 생필품을 넣어서 26킬로 이상 완전군장을 만들고, 완전군장 상태에서 총을 땅에 안닿게 손등에 올리고 팔굽혀펴기를 시키고, 총을 땅에 떨어뜨리면 다시 시작시키고, 잔악한 선착순 달리기를 시키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구보를 뛰게 하다가 아들을 쓰러뜨린 중대장과 우리 아들 중 누가 규칙을 더 많이 어겼습니까? 아들이 다시 온다면 묻고 싶습니다. 팔다리가 굳어가고 근육이 녹아내리고 호흡이 가빠올 때 숨이 안쉬어지고 아프다고 얘기하고, 더 일찍 쓰러지는 척이라도 하지 그랬니..... 엄마, 아빠, 형, 너를 보물 같이 여기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라고...... 그 망나니 같은 명령도 명령이라고 열심히 따른 이유가 있었겠지요. 괜히 잘못했다가는 자기 때문에 중대장이 화가 나서 동료들까지 가중되는 벌을 받을까 무서웠겠지요. 두려운 상황을 빨리 끝내고 후일담으로 삼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그렇게 뛸 수도 없이 굳은 팔다리로 40도가 넘는 고열에 시달리며 얕은 숨을 몰아쉬는 아들에게 중대장이 처음 한 명령은 “야! 일어나 너 때문에 뒤에 애들이 못 가고 있잖아!”였다고 하네요. 분위기가 어땠을지 짐작이 갑니다. 쓰러진 뒤의 일도 원통합니다. 아들이 쓰러지고 첫 전화를 받은 건 5월 23일 17시 54분입니다. 소대장이 “어머니 OO이가 어젯밤 점호 시간에 떠들어서 군기훈련 받다가 쓰러져서 중대장님이랑 병원 이송 중입니다”라고 하더군요. 의식이 있다가 없다가 한다고...... 아들은 죽어가고 있는데 군에서 어떤 사람이 전화와서 부모가 올라와야 한다고 하더니 저희가 빨리 올라 올 수 있는 교통편을 알아 봐주겠다더군요. 그 때 아빠가 옆에서 큰 소리로 제게 ‘빨리 헬기를 띄워서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이나 큰 병원으로 이송해라’라고 소리를 쳤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갈지가 아니라 아들을 어떻게 큰 병원으로 옮길지 고민하라고 말해줬습니다. 참 기가 막혔습니다. 얼마 지나서 중대장이 연락이 왔습니다. “상급부대에 서울로 후송 요청했고 답변 준다고 기다려달라고 했습니다. 병원 측은 원인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후송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해서 CT결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더니 제게 어느 병원으로 보낼지 결정을 하라 하더군요. 강릉아산병원을 말하면서요. 제가 그 병원이 어디라고, 병원 수준도 모르는데, 왜 제게 어디 병원으로 옮길질 묻느냐고 따지며 “나중에 무슨 일 생기면 우리가 결정했다고 하려고 그러냐” 물었습니다. 그때 제가 분명히 말했습니다. 아들에게 무슨 일 나면 그 병원에서 책임지냐고. 무슨 일 나면 나라에서 책임지냐고. 그렇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강릉아산병원에 가게 된 것입니다. 지금 이들이 무슨 책임을 지고 있습니까?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부모의 선택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지, 그런 생각도 듭니다. 5월 24일 새벽 3시 경, 강릉아산병원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를 달고, 위에서는 피가 나오고 있고, 의식도 없이 처참한 모습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치료하면 곧 좋아진다는 소견을 의심 없이 믿으며 중환자실 앞에서 죄인처럼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그러다 5시간 뒤 만난 담당 의사선생님이 “열이 40도 이상에서 안 떨어지고 있으니 장기가 익어간다고 보시면 됩니다. 2~3일 뒤에는 포기하실 때가 옵니다”라는 말을 했을 때, 억장이 무너지는 마음으로 아들에게 했던 말이 있습니다. “아들아, 아빠 엄마가 응급헬기를 띄울 힘 있는 부모가 아니어서 너를 죽인다.”지금도 그 비통함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할까요. 사랑하고 존경하는 내 아들. 오늘은 12사단 신병대대 수료식 날인데, 수료생들이 엄마, 아빠 만나는 날인데, 엄마, 아빠 너무 멀고 힘드니까 굳이 안 오셔도 된다고 그랬는데.. 그런 배려 깊은 아이였는데... 오늘 수료생 251명 중에 우리 아들만 없습니다. 대체 누가 책임질 것인가요? 국가의 부름에 입대하자마자 상관의 명령이라고 죽기로 복종하다 죽임당한 우리 햇병아리, 대한의 아들이 보고 싶습니다. 김태연 기자 tykim@hankookilbo.com 관련기사 - 새벽 2시 만난 푸틴과 김정은… 포옹하며 브로맨스 - 할머니가 몰던 승용차, 주차장 벽에 쾅…10개월 손자 숨져 - 황보라 의료파업 때문에 페인버스터 못해 발언 사과 죄송 - 월 100만 원도 못 벌어 백종원 연돈볼카츠 점주들 분노 - 동남아 방문 때, 가장 무서운 사람은 한국인 [아침을 열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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