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富·능력 과시하듯…"우리 애는 ○○ 영어유치원 다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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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6회 작성일 24-12-20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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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교육 양극화의 단면 : 영어유치원 4만명 시대 - 下 학부모들 ‘스펙’된 영유· <끝>

매월 100만원 이상 드는 영유

‘돈 잘 버는 집안’ 임과 동시에

‘레벨테스트 합격 = 영재’ 증명

학부모 ‘新지위재’로 자리잡아

사교육에 익숙한 요즘 부모들

‘글로벌 스펙 쌓기’ 열망 투영


“출산 전부터 영어유치원 부담

아이 낳는게 맞나 생각들기도” 끝>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거주하는 고모36 씨는 4세, 6세 아이를 G 영어유치원에 보내고 있다. 부부의 월급 절반을 아이들의 유치원비에 사용하고 있어 살림이 빠듯하지만, 고 씨는 “아이들을 위한 투자”라고 말했다. 고 씨는 20일 “영어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 부모님 중에 의사·변호사·교수 등 반반한 직종이 많다”며 “어릴 때부터 좋은 집안에서 올바른 교육을 받으며 자라난 아이들과 함께 놀면 우리 아이도 좋은 영향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여 빠듯한 살림에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 화성시에 거주하는 이모34 씨는 “남편이 외벌이를 하는 등 상대적으로 넉넉한 집안들 사이에서는 아이가 어느 영어유치원을 다니는지가 마치 엄마들 사이 서열처럼 작동하고 있다”며 “엄마가 자신의 철학으로 영어유치원을 안 보내고 싶어도 주변 사람들이 ‘못’ 보낸 것처럼 인식하니 일반 유치원을 보낼 자유마저 사라진 느낌이다”고 말했다.

◇부모들의 트로피 된 ‘영유’=일부 학부모들 사이 인기를 끌고 있는 영어유치원은 아이들의 교육을 위한 수단을 넘어 자신의 부와 성공을 증명하는 ‘트로피’가 됐다. 월 100만 원 이상의 영어유치원 교육비는 일반 부모들이 감당하기 쉽지 않은 비용이다. 이 때문에 아이가 영어유치원에 다니기만 해도 부부는 ‘잘사는 집안’임을 증명받게 된다. 또 자녀가 영어유치원 ‘레벨 테스트’에 합격했다는 사실은 ‘영어유치원→ 국제초→ 국제중 → 특목고→ 명문대’라는 ‘엘리트 코스’의 출발점에 올랐다는 것과 같다. 즉 자녀가 영재임을 증명받고 이로 인해 자신들도 ‘엘리트 가족’임이 증명되는 것이다. 박주형 경인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자동차를 타고 다니느냐를 통해 부를 파악하고 서로를 비교하듯 학부모들 사이에선 아이가 어떤 유치원을 다니느냐가 서로를 비교하는 하나의 ‘지위재’가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경쟁과 비교에 익숙한 ‘신新학부모’= 최근의 영어유치원 열풍은 현재 영유아를 낳고 키우는 부모들의 세대 특성이 반영된 현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들은 현재 20대 후반∼30대로, 평생 영어의 중요성을 교육받고 자란 세대다. 명문대 진학률이 높은 특목고에 들어가기 위해 중학교 때 내신 영어 1등급을 맞아야 했고, 수능에서도 높은 영어성적을 받아야 했다. 내신뿐 아니라 학생의 종합적 능력을 평가하는 학생부 종합전형에서도 텝스, 토플과 같은 영어 자격증 시험의 높은 성적이 요구됐다. 또한 제2 외국어 하나를 병행하며 자신이 ‘글로벌 인재’임을 증명해야 했다. 대학 입학 후에도 영어는 ‘스펙 쌓기’의 기본으로 여겨졌다. 입사 후에는 영어를 잘해야 해외 업무 기회가 주어졌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현 부모세대는 학교, 직장, 사회가 영어 잘하는 사람에게 어떤 보상을 내리는지 목격한 세대”라며 “내 자녀도 보상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열망을 갖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 부모세대는 사교육을 집중적으로 받은 첫 세대이기도 하다. 이들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국어·영어·수학을 기본으로 학원을 다녔다. 수능을 잘 보기 위해 재수를 하며 기숙학원을 다니기도 했다. 대치동, 양천구 목동 등 학군지에는 학원이 밀집한 ‘학원가’가 등장했다. 대구 수성구에 거주하는 A 씨는 “영어유치원을 보내고 싶지 않지만, ‘그럼 어떻게 아이를 가르쳐야 하나’ 생각해보면 딱히 떠오르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정윤경 가톨릭대 심리학과 교수는 “부모세대가 사교육을 받는 것 자체에 너무나 익숙해지면서 사교육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지식을 익히는 것에 대한 경험과 자신감이 부족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SNS의 ‘비교 문화’도 영어유치원 열풍의 원인으로 꼽힌다. SNS에는 대치동, 목동 등 일명 ‘학군지맘’의 미취학 아이들이 영어 스피킹대회에서 상을 받거나 영어원서를 원어민 발음으로 술술 읽는 영상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이런 영상을 올린 엄마들은 영어 조기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영상을 본 엄마들은 “역시 영유 출신”이라는 댓글을 달며 영상 속 아이와 부모를 부러워한다. 다니는 학원이나 공부 방법을 알려달라는 댓글이 수백 개 달리기도 한다. 대전에서 5세 아이를 키우는 B 씨는 “영유에 다니는 같은 개월 수의 아이를 SNS에서 볼 때마다 ‘우리 아이는 아직 이건 못하는데 이렇게 둬도 괜찮을까’하는 생각이 많아지고 불안해진다”며 “그럼에도 정보가 없으면 뒤처지는 사회라 SNS를 끊을 수도 없고, 양날의 검 같다”고 말했다.

◇사교육 저연령화 저출생 원인으로 작용=영어유치원 열풍은 만 2세부터 월 100만 원 이상의 사교육이 당연한 분위기를 형성하기도 한다. 이는 고물가, 과잉경쟁 속에 살고 있는 청년세대의 저출생·결혼기피 경향을 강화한다. 국세청에 따르면 2022년 30대 미만의 평균 연봉은 2453만 원, 30대 연봉은 4263만 원으로 이들의 한 달 월급은 200만∼300만 원에 불과하다. 대부분이 영어유치원 한 달 등록비를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올해 9월 결혼한 C 씨는 “친구가 아이 생각이 있으면 지금부터 미리미리 영어유치원을 알아보라 해 소개받은 인터넷 카페에 들어갔는데,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배워야 하는 지식이 너무 많아 큰 부담이 느껴졌다”며 “이렇게 공부를 해야 아이가 잘살 수 있다면, 과연 아이를 낳는 것이 맞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고 말했다.

조율·김유진·노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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