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죽인 원수"…고3 아들은 형사가 됐다, 13년 뒤 마침내 범인 검거 > 사회기사 | society

서울=뉴스1 박태훈 선임기자 = 불구대천지원수不俱戴天之怨讐라는 말이 있다.

같은 하늘 밑에 있을 수 없는 원수, 더불어 살 수 없는 미운 존재라는 뜻으로 2500여년 전 중국에서 유래했다. 부모를 죽인 원수로 자식이라면 반드시 원한을 갚아야 할 대상이었다.

7년 전 오늘, 2017년 12월 5일엔 어머니를 죽인, 불구대천지원수를 잡기 위해 형사가 된 아들이 13년여간 범인을 찾아 헤맨 끝에 마침내 검거, 모친 원한을 갚았다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사연이 알려져 많은 이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자식 뒷바라지를 위해 노래방 매니저로 일하던 어머니, 새벽에 싸늘한 주검으로

사연의 주인공은 대구 중부경찰서 강력반 A 형사1986년생.

A 형사는 고등학교 3학년 때인 2004년 6월 25일,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경찰 연락을 받고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에 주저앉아 펑펑 울고 말았다.

그날 A 형사의 모친인 B 씨당시 44세는 대구 북부의 한 노래방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B 씨는 자녀들 학비에 보탬이 되겠다며 노래방을 운영하고 있던 친척 부탁으로 이따금 카운터를 보곤 했다. 그날도 "야간 근무를 좀 해 달라"는 청에 따라 노래방에 갔다가 변을 당했다.

B 씨 시신은 그날 아침 8시 무렵 관내 순찰에 나섰던 지구대 경찰관이 날이 훤하게 밝았는데도 노래방 간판 불이 꺼지지 않은 점을 이상하게 여겨 노래방에 들어갔다가 발견했다.

온몸 흉기에 찔려…범인이 남긴 것이라곤 담배꽁초, 지문 사라진 흉기뿐

B 씨는 흉기에 온몸을 찔린 채 카운터 앞쪽에 숨진 채 쓰러져 있었다.

출동한 형사대는 노래방과 주변을 샅샅이 뒤졌으나 발견한 건 범인이 버리고 간 흉기와 범인이 핀 것으로 보이는 담배꽁초뿐이었다.

흉기엔 지문이 남아 있지 않았고 2004년 당시만 해도 CCTV를 설치한 가게도 드물었고 노래방 주변 역시 CCTV가 없어 범인 윤곽조차 잡기 힘들었다.

또 부검 결과 B 씨가 새벽 5시 직전 숨진 것으로 드러나 시간상 목격자가 있었을 가능성도 희박했다.

여기에 B 씨가 주변 원한을 산 적도, 채무를 진 적도 없는 지극히 선량한 시민이었던 까닭에 경찰은 오랫동안 수사에 매달렸으나 이렇다 할 진전을 보지 못했다.

마지막 희망이었던 담배꽁초에서 뽑아낸 DNA를 국가에 등록된 범죄자와 대조했으나 동일인이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경찰은 DNA를 첨부해 미제사건으로 넘겨버렸다.

어머니 죽인 원수 갚기 위해 경찰관 된 아들…모친 사망 9년 뒤 마침내 형사가 돼

어머니를 죽인 원수를 갚은 뒤에야 잠을 자도 편하게 자겠다고 결심한 아들은 2015년 경찰관이 됐다.

신입 경찰관이라면 거쳐아 할 파출소 근무 등을 거쳐 마침내 2013년 형사가 된 아들은 잡범이든 강력범이든 잡히기만 하면 혹시 어머니를 죽인 그놈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시간이 날 때면 사건 현장으로 갔고 주변인들에게 혹시 들리는 말이 없냐고 묻고 다녔다.

이러한 A 형사의 노력에 하늘도 감복했는지 강도 신고가 들어와 현장으로 출동했다.

20대 여성 강도당해…범인이 피우고 버린 담배꽁초, 불구대천지원수 바로 그놈 것

2017년 11월 21일 자정 무렵 대구 중부경찰서에는 강도 사건 신고가 들어왔다.

밤 11시 50분쯤 귀가 중이던 20대 여성22이 괴한이 휘두른 둔기에 맞아 쓰러지고 손가방을 빼앗겼다는 것.

경찰은 사건 현장 CCTV를 분석한 결과 40대~50대로 보이는 남성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찾아낸 뒤 피해자로부터 범인이 맞다는 확인을 받았다.

이에 경찰은 사건현장 바닥에 떨어진 담배꽁초 수십 개를 수거해 국과수에 감정을 의뢰했다.

국과수 통보를 받아든 A 형사는 손을 부들부들 떨고 말았다.

한시도 잊지 못하던 어머니를 죽인, 불구대천지원수 그놈의 DNA와 일치한다는 결과통지서였기 때문이다.

전담팀 편성한 경찰…만약의 사태를 막기 위해 형사 아들 휴가 보내

관련 보고를 받은 대구경찰청은 즉시 범죄분석관, 미제사건수사팀, 중부서 형사팀으로 전담 수사팀을 꾸려 범인 검거에 나섰다.

이때 경찰 수뇌부는 어머니 원수를 갚겠다며 13년을 별려온 A 형사에게 "휴가를 떠나라"는 명령을 내렸다.

혹시나 검거 현장 혹은 조사 과정에서 범인과 대면했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불상사를 막기 위한 배려였고 13년간 고통을 겪었을 효자에 대한 위로 휴가 성격도 있었다.

7일 만에 붙잡한 범인…2009년 2월 노래방 여사장도 살해

전담수사팀은 범인을 C1970년생로 특정, CCTV 등을 통해 통선을 추적한 끝에 마침내 2017년 11월 28일 그의 집 앞에서 검거했다.

C는 "2004년 6월 25일 새벽 4시쯤 노래방을 찾았다가 요금 바가지를 씌워 화가나 죽였다"며 우발적 범행임을 주장했다.

하지만 피해자 신체 일부를 훼손한 이유를 추궁하자 그때서야 "성폭행을 시도했지만 실패한 뒤 신고할까 두려워 죽였다"고 자백했다.

이에 경찰은 미제사건으로 남겨져 있던 2009년 2월 대구 수성구 노래방 여사장당시 47세 피살사건과 유사하다는 점에 C를 집중 추궁해 "성욕을 느껴 성폭행하려 했지만 실신, 후환을 없애려 죽였다"는 실토도 받아냈다.

검찰 사형 구형…法 "사전에 범행 준비했다고 볼 수 없고 개선 가능성 있다" 무기징역형

강간살인·강도 살인미수 등의 혐의로 기소한 검찰은 C에 대해 사형을 구형했다.

하지만 1심인 대구지법 제12형사부정재수 부장판사는 2018년 9월 14일 C에 대해 무기징역, 10년간 신상 정보공개를 명령했다.

재판부는 "앞으로 유사 범행을 저지를 우려가 있지만 범행 전에 치밀하게 준비했다고 보기 힘든 점, 범행을 자백한 점, 처벌을 받겠다고 밝힌 점, 교화나 개선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점" 등을 들어 검찰 요구를 뿌리쳤다.

2심인 대구고법 형사1부박준용 부장판사도 2018년 11월 29일 "피고인에게 법정 최고형을 내릴 여지가 있지만 영원히 사회와 격리해 속죄하며 살아가게 하는 게 타당하다"며 역시 무기징역형을 선고했다.

현재 C는 무기징역형을 확정받고 옥살이 중이다.

buckba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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