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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얼굴 190번 찔러 살해했는데 징역 17년…유족구조금, 국가의 배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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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260회 작성일 24-03-24 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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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석·이가영의 사건노트]

[사건노트]는 부장검사 출신 김우석 변호사가 핫이슈 사건을 법률적으로 풀어주고, 수사와 재판 실무에 대해서도 알려드리는 코너입니다. 이가영 기자가 정리합니다.

한 방송에서 공개된 여자친구를 190여 차례 찔러 살해한 A28씨의 사진. 실제 방송에선 피해자인 여자친구 얼굴만 모자이크되고, 가해자 얼굴은 그대로 노출됐다. /JTBC

한 방송에서 공개된 여자친구를 190여 차례 찔러 살해한 A28씨의 사진. 실제 방송에선 피해자인 여자친구 얼굴만 모자이크되고, 가해자 얼굴은 그대로 노출됐다. /JTBC

“유족구조금을 받았는데, 이게 양형에 참작된다는 걸 알았다면 절대 받지 않았을 겁니다. 국가가 저를 배신하고, 국가가 저를 상대로 사기 친 겁니다.”

20일 서울고법 춘천재판부 형사1부재판장 민지현 법정. 결혼을 약속한 동거남에게 흉기로 200회 가까이 찔려 잔혹하게 살해당한 피해자의 모친은 이렇게 말하며 울분을 토했다.

피고인 A28는 지난해 7월 영월군 한 아파트에서 동거하던 여자친구를 집에 있던 흉기로 190여회 찔러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얼굴 부위를 집중적으로 찔렀다. 공판 검사가 “부검 서류를 차마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안타까웠다”고 말할 정도의 사건이었다. A는 ‘이웃과의 층간소음 문제로 여자친구와 대화하던 중 살인을 저질렀다’는 주장을 펴고 있지만, 유족 측은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는 입장이다.

A에게 1심에서 선고된 형량은 ‘징역 17년’.

재판부는 형량을 줄여준 사유를 열거하면서 ‘유족이 유족구조금을 받았다’는 점도 포함했다. 국가가 지급한 유족구조금이 살인자의 형량을 줄여주는 이유가 됐다는 것이다.

◇유족구조금, 국가의 배려인가 배신인가

Q. 우선 유족구조금이 무엇인가요?

A. 살인 등 강력범죄로 사망한 피해자의 유족에게 국가가 지급하는 구조금입니다. ▲가해자를 알 수 없거나 ▲가해자가 피해를 보상할 경제력이 없어 유족의 피해 회복이 불가능할 때 국가가 유족을 보호·지원하는 제도입니다.

Q. 살인 피해자의 유족이 국가로부터 구조금을 받으면 살인범의 형량이 줄어드나요? 사실이라면, 유족 입장에서는 너무 억울하고 원통할 것 같은데요.

A. 유족구조금은 국가가 지급하는 것입니다. 살인범이 유족의 피해를 회복시켜준 것이 아니죠. 따라서, 유족구조금을 이유로 살인범의 형량을 낮추는 것은 부적절합니다.

방송에서 공개된 A씨의 사진과 신상 정보. /JTBC

방송에서 공개된 A씨의 사진과 신상 정보. /JTBC

◇판결문에 ‘유리한 양형 사유’ 있어도, 실제는 다르다?

Q. 그럼 1심 재판부는 왜 유족구조금을 A씨에게 유리한 양형 사유라고 본 건가요?

A. 1심 판결문을 보면 “검찰 측은 피해자의 유족 측에 유족구조금을 지급하고서 피고인에게 구상금 지급을 청구하였는데, 피고인 측은 이 금액 전액을 검찰 측에 지급하였다”고 되어 있습니다. 결과만 보면 피고인이 유족 구조금 상당액을 피해 변제한 셈이 되니까, 1심은 이를 유리한 양형 사유로 본 것입니다.

실무 경험에 기초한 개인적 추측입니다만, 1심 재판부는 극히 일부라도 A씨가 피해를 변상했다는 취지를 기재하려다가 유족구조금이 언급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피해자 가족이 단지 유족구조금을 수령했다는 이유로 A씨를 선처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유족은 ‘국가’가 주는 ‘구조금’이라고 생각하고 유족 구조금을 받은 것이지, ‘피고인’이 주는 ‘합의금’이라 생각하고 받은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법원은 당연히 이런 사정을 참작합니다.

Q. 판결문에 ‘유리한 양형 사유’라고 적혀 있는데, 실제 선처 사유가 아닐 수도 있나요?

A. 가해자에게 유리한 양형 사유가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실제 선처가 되지는 않습니다.

예컨대, ▲가해자가 건강이 나빠 수감 생활이 어렵고 ▲가해자 지인들이 가해자의 선처를 탄원하며 ▲가해자가 반성문을 거듭 제출하고 ▲가해자만 바라보는 부양가족이 있다는 점 등은 대다수의 판결문에 공통적으로 나열되는 선처 사유입니다.

하지만, 이런 사유가 있다고 해서 언제나 선처하지는 않습니다. 선처를 받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에게는 없고, 나에게만 존재하는 ‘나만의 선처 사유’가 있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갖고 있는 선처 사유를 이유로 특정인을 선처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런데, 판결문에는 이러한 나만의 선처 사유와 함께 ▲건강 ▲선처 탄원 ▲반성 ▲부양가족 등 ‘일반적으로 유리하다고 볼 수 있는’ 양형 사유가 함께 기재됩니다. 이런 것은 ‘덧붙여 기재하는 장식’에 불과할 뿐, 실질적인 선처 사유는 아닙니다. 그래도 판결문에 기재는 되어 있으니 실무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은 ‘이것 때문에 선처를 받았다’고 오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판결문에 유족구조금을 통한 피해 회복이 ‘유리한 양형 사유’로 언급되는 것 자체가 유족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유족의 마음을 조금 더 배려했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190여 차례 찔렀는데 ‘우발적 살인’?

Q. 검찰은 징역 25년을 구형했는데, 1심은 징역 17년을 선고했습니다. 형량이 적절하다고 보시는지요?

A. 법원의 양형 기준에 의하면, ‘우발적 살인’의 기본 형량은 징역 10~16년입니다. 1심은 흉기로 190여회 찌른 점을 고려해 이보다 높은 징역 17년을 선고한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검찰은 형량을 훨씬 더 가중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범행 동기가 규명되지 않았을 뿐, ‘우발적 살인’은 아니라고 판단하는 듯합니다. 층간 소음 스트레스 때문에 사람을 190여회 우발적으로 찌른다는 것은 상정하기 어려우니까요. 유족도 이렇게 생각하니까, 딸 잃은 설움에 억울함까지 복받치는 것입니다.

다음 달 17일 2심 판결이 선고될 예정입니다. 법원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합니다. 아울러, 고인의 명복과 유족의 회복을 기원합니다.

김우석 법무법인 명진 대표 변호사. /조선DB

김우석 법무법인 명진 대표 변호사. /조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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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영 기자 2ka0@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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