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어렵게 내지마" 민원 폭탄…신도시 중학교 절반은 만점 세례[무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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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박혜원 기자] 동탄 소재 한 중학교는 지난 1학기 영어시험에서 2학년 300명 중 70명이 만점을 받았다. 학년 절반 이상은 내신 A 등급이었다. 그럼에도 이 학교 교사 김모45씨는 ‘시험이 어렵다’는 학부모 민원을 받아야 했다. 김씨는 “문제 출제부터 보안 유지까지, 몇 주를 피말리며 문제를 출제했지만 허무했다”면서도 “괜히 까다로운 문제를 냈다가 이의신청으로 피곤해질까봐 교사들 사이에서도 어떻게든 쉽게 문제를 내자는 분위기가 팽배하다”고 전했다.
이는 비단 A 중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동탄은 비평준화 지역으로, 중학교 내신 성적 순으로 고등학교 입시가 결정된다. 성적을 낮게 받은 학생 학부모가 학교에 민원을 내고, 교사들은 민원 탓에 다음 시험에 더 쉬운 문제를 찾아 내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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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탄 지역의 쉬운 내신 고사는 동시에 인근 학원가의 주된 ‘불안 마케팅’ 수단이다. ‘사실상 변별력이 없는 수준.’ 지난 6월 중학교 중간고사 직후, 한 영어학원은 동탄 지역 학부모 커뮤니티에 ‘중학교 내신 점수를 믿지 말라’는 내용의 학교별 내신고사 평가를 올렸다. 동탄 지역 학원들이 게시하는 단골 홍보 유형이다. 쉬운 내신 고사가 아닌 학원 교육으로 고등 교육 과정을 대비해야 한다는 게 취지다. 교사 김씨는 “진짜 공부는 학원에서 한다는 인식이 커져 수업에 들어가면 대부분이 잠만 자는 풍경이 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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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 경쟁에 따른 사교육 수요가 높아지는 가운데, 동탄 등 일부 지역에서는 고등학교 입시가 사교육을 더 부추기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주로 교육 인프라가 부족한 신도시 비평준화 지역에서 발생하는 일이다. 교사들은 시험을 쉽게 출제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는 한편, 학원가는 이를 타깃 삼아 학부모에 사교육을 부추기는 악순환이다.
7일 지역별 교육청에 따르면 신도시 비평준화 지역의 학원 규모는 다른 지역 대비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비평준화 지역 중에서도 특히 학원가가 크게 형성된 동탄 지역 소재 학원은 2019년 936개에서 5년 만인 2024년 1315개로 40.5% 늘었다. 동탄과 비슷하게 신도시가 형성된 평택은 같은 기간 학원이 759개에서 984개로 30.0% 늘었다. 대치동 학원이 같은 기간 1079개에서 1261개로 16.9% 늘어났다는 점을 고려하면 2배가량 증가세가 높은 수준이다.
학교 현장에선 이같은 현상이 턱없이 낮은 수준으로 시험이 출제될 수밖에 없는 비평준화 지역 특성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전국 행정구역 대부분은 1970년대 도입된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으로 시험 없이 배정만으로 고등학교에 입학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교육 인프라가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신도시 상당수는 학부모 가구가 밀집해 있지만 여전히 비평준화 지역이다.
학구열이 높은 부모가 주로 모이는 신도시에선 때문에 고등학교 입시 경쟁이 더욱 치열하다. 신도시 비평준화 지역 특유의 변별력 없는 내신고사 문제도 이 때문에 발생한다. 중학교 내신이 낮으면 소위 지역 명문고에 입학하기 어려워, 내신고사나 수행평가가 어렵게 출제될 경우 즉각 학교에 민원이 쏟아지는 구조다.
이런 지역에서 학교 평가는 의미를 잃어버린 지 오래다. 평택에서 근무하는 교사 손모씨는 “우리 학교 애들만 내신이 낮아 고등학교를 못 갈까봐 너도나도 시험을 쉽게 낸다”며 “수행평가도 미리 문제하고, 학원에서 만들어준 답안을 학생들이 외워서 평가를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중간고사도 평균이 너무 낮아 수행평가는 너그럽게 채점하자는 이야기가 있다”고 전했다.
역설적으로 학부모들 사이에선 학원에 다녀야만 고등학교 교육 과정, 나아가 대입을 제대로 준비할 수 있다는 불안이 커진다. 학원가 역시 이런 지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동탄에서 과학학원을 운영하는 최모씨는 “한 반에 절반 이상은 100점을 맞는 수준이다 보니, 내신 점수를 학생 실력이라고 믿으면 안된다며 학원들이 선행학습을 유도하는 분위기가 크다”고 전했다. 동탄 교사 김씨는 “학원가에서 어떤 학교가 내신을 따기 쉬운지 나서서 분석해주고, 실제로 학부모들에 그에 따라 움직여 학원 의존이 나날이 심해질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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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공교육 평가가 힘을 잃어도 별다른 제재 수단은 없는 상황이다. 시험이 제대로 치러지고 있는지를 평가할 객관적인 지표가 없기 때문이다. 경기교육청 관계자는 “성취 평가가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정도의 지침을 학교에 내리긴 하지만, 지표 기준이 명확하지는 않다”며 “성취도 분포를 매년 점검하고 특이사항이 있는 학교에 지도점검을 나가는 정도”라고 설명했다.
비평준화 지역이 평준화로 전환을 시도하는 것도 쉽지 않다. 평준화 지역이 되려면 초중등교육법에 따라 일정 수준 이상의 교육 인프라를 갖춰야 한다. 그러나 조성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신도시, 혹은 도심 외곽 지역은 이를 충족하기 쉽지 않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은 ▷학교 간 통학에 불편이 없을 것 ▷중학교 졸업생과 고등학교 입학생 수가 균형을 이룰 것 등을 평준화 지역 요건으로 보고 있다. 특정 지역에서 평준화 전환 청원이 1만부 이상 접수될 경우 교육청이 적정 여부를 평가한다.
다만 학부모나 학생들이 평준화를 원하더라도 지역 안에서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기도 한다. 소위 명문고 체제가 깨질 수 있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경기교사노조 관계자는 “평택의 경우 과거부터 명문으로 꼽혔던 평택고 졸업생들의 반대가 크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충북 제천 역시 고교 평준화를 위한 여론조사를 진행했지만 같은 이유로 반대 여론이 더 크게 나오면서 무산됐다. 고교 평준화 문제를 연구한 한송이 세명대 교양대학 교수는 “명문고등학교, 혹은 명문대를 향한 과열된 입시 양상이 변화하지 않는 이상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k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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