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말기인데, 우리 개 가족 좀…"88세 할아버지의 부탁[체헐리즘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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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도암 4기 판정받은 뒤, 홀로 남겨질 반려견 행운이 걱정하는 87세 할아버지
가족도 없이 외롭던 날들에 서로를 따스히 채워준 단짝, 건강 악화돼 갑자기 떠날까 매일 걱정
"좋은 가족 찾아달라" 했다가도, 문득 몸 상태 나아진 날엔 "천천히 떠나보내고 싶어" 속내 비춰
가족도 없이 외롭던 날들에 서로를 따스히 채워준 단짝, 건강 악화돼 갑자기 떠날까 매일 걱정
"좋은 가족 찾아달라" 했다가도, 문득 몸 상태 나아진 날엔 "천천히 떠나보내고 싶어" 속내 비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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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좋은 자리는, 할아버지의 옆자리. 행운이를 처음 만난 2023년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보인 모습이 그랬다. 서로가 그런 존재였다가, 그중 하나가 훌쩍 떠나게 된다면 어떨까. 그럼에도 다른 한 존재가 잘 살아갈 수 있게 하고 싶었다. 그게 할아버지의 가장 큰 바람이었기에./사진=남형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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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문자엔 염려와 우정과 사랑이 다 있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우주인 두 존재 중 하나가 떠났을 때, 그게 할아버지였을 때. 홀로 남겨질 8살 진돗개 행운이가 새 가족을 만나 잘 살아갈 수 있게 바라는 거였다. 내용이 이랬다.
지난해 8월에 담도암 4기 판정을 받고 현재까지 4개월을 힘들게 지내왔습니다. 이젠 기력이 많이 소진돼 하루가 다르게 몸 상태가 안 좋아지고 있네요. 살만 치 살았으니 내일 죽어도 아쉬움은 없습니다. 다만 끝까지 살펴주지 못할 행운이가 눈에 밟힙니다.
할아버지가 문자를 보내 도움을 청한 이는, 장신재 핌피바이러스 대표였다. 그는 유기 동물의 임시 보호를 더 많이 알리고 늘리려 진심인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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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가 행운이 가족을 찾아달라며 장신재 핌피바이러스 대표에게 보낸 장문의 문자. 서툴게 작성했으나 한 자 한 자 꾹꾹 써내려갔을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사진=장신재 핌피바이러스 대 |
행운이와 매일 산책하며 건강히 버텨온, 소소한 행복의 날들이 저물려 하고 있었다.
이번엔 말기암이란 압도적인 질병이, 8년의 단짝을 정말 갈라놓으려 하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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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에서 꼬물거리던 행운이를…따스히 품고 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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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같은 시간에 동네를 산책하는 행운이와 할아버지 사진. 평범하고도 소소한 행복의 장면들./사진=남형도 기자 |
할아버지는 사람이 다 떠난 외로운 섬 같았다. 자식도, 가족도 없이 텅 빈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시장에 다다랐을 때 상자 안에서 꼬물거리는 강아지들을 마주했다. 그중 한 마리와 눈이 마주쳤다.
"글쎄, 다섯 마리가 상자에 있었는데, 행운이 요놈이 제일 열심히 움직이는 거야. 가만히 바라보니 저절로 마음이 가더라고요. 그 길로 데려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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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으로 마음으로 반기는 걸 표현한다면 이런 것일지. 할아버지에게 기쁨을 표현하는 행운이의 모습./사진=남형도 기자 |
행운이는 더는 떨지 않았다. 둘도 없는 서로의 친구이자 좋은 가족이 되었다. 매년 행운이 생일이면 닭까지 삶아 먹였다. 태어난 날을 함께 기억하고 기뻐해 주었다. 할아버지에게도 행복한 일들이 함박눈처럼 소복소복 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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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도, 행운이도 죽을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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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이란 세월이 흐르는 동안, 서로를 오롯이 의지하며 살아온 두 존재들. 작은 존재와 그보다 더 작은 존재가 만든 커다란 행복./사진=남형도 기자 |
심장 문제였다. 의사는 할아버지가 위험할 뻔했다며, 박동기를 다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이웃집 할머니에게 행운이를 부탁하고 힘든 수술을 잘 마쳤다. 오랜만에 돌아온 그를, 행운이가 좋다고 꼬릴 세차게 흔들며 반겼다.
그 무렵부터 할아버지는 여생을 생각했다. 단짝 행운이와 할아버지가, 남은 시간이 서로 다르단 걸 알았다. 좋은 가족을 찾아주기로 결심했다가 밤새 행운이를 보며 울다 결국 포기했다.
그때 우연히 행운이와 할아버지를 처음 알게 됐다. 돕고 싶었다.
행운이가 다른 보호자를 만나도 잘 살 수 있도록 응원하는 이들이 모였다. 장신재 핌피바이러스 대표와 이규상 트레이너, 내가 한 팀이 됐다. 우린 매주 행운이와 할아버지를 만났다. 할아버지 건강이 갑작스레 나빠질 경우에도, 행운이가 새 가족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사회화 훈련을 했다.
"너무너무 고맙습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행운이와 함께 열심히 살아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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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은 점퍼로 겨울을 나는 게 안타깝다고. 행운이 수술비를 모금한 이들의 요청에, 할아버지도 생애 처음 두툼하고 긴 패딩을 입게 됐다. 뒤에서 흐뭇하게 바라보는 행운이./사진=장신재 핌피바이러스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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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엔딩 바랐으나…"담도암 4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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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를 애정하는 행운이의 표정은, 소나무처럼 사시사철 한결 같이 푸르렀을 거라고./사진=남형도 기자 |
지난해 12월에 단톡방 알림이 떴다. 장 대표가 보낸 메시지였다. 그가 사진으로 공유한 건 할아버지가 보낸 문자였다. 심장이 쿵,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담도암 4기이며 연세가 많아 수술을 포기했단다. 물끄러미 할아버지를 바라보는, 많은 게 담긴 행운이의 표정이 떠올라 애써 외면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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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상 트레이너가 손을 내밀자, 물끄러미 바라보는 행운이./사진=이규상 트레이너 |
"얼굴이 새까매지고 눈이 노래지는 거예요. 앉아 있질 못했어요. 어떤 느낌이냐면 추운 날 빈속에 막 떨리는 것 같았지요. 심하게 어지러워서 병원에 갔더니 담도암 4기라고 하잖아요. 수술을 빨리 해야 한다고. 암이 다 퍼지는구나, 생각했지요. 아프니까, 죽게 생겼으니까 저 녀석 어떡하나 싶어서 빨리 보내야겠단 맘이 들더라고요."
행운이가 할아버지 다리 뒤에 앉아, 그 얘길 듣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이내 화초 내음만 킁킁 맡았다. 할아버지는 행운이가 가장 좋아하는 손길로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그러자 행운이는 두 앞발을 할아버지 무릎에 올렸다. 밖에 나가 산책하자고 보챘다. 오래 보고픈 평범한 행복의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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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행운이 가족…천천히 알아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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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이를 쉬이 보내지도, 그렇다고 보내지 않을 수도 없는 할아버지의 마음. 건강 관리 잘해야겠다는 다짐만으론 쉽지 않단 걸 알기에, 그는 행운이가 없는 세상으로 넘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사진=남형도 기자 |
"한 열흘 전엔 죽을뻔했는데, 이튿날부터는 또 가라앉아서 아직까진 아무렇지도 않고 괜찮아요. 의사가 암이 전이가 안 됐대, 많이 좋아졌다고요. 운동을 많이 하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엔 행운이랑 보라매공원 한 바퀴 돌고, 산책을 1시간씩 해요. 살만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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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것, 기름기 있는 음식을 좋아했는데 그런 거 먹으면 나쁘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좋다는 것만 골라서 먹고 있어요. 우리 행운이하고 더 오래 잘 살아보려고요." 할아버지의 마음이 이랬다./사진=남형도 기자 |
"지금은 반반이야. 조금 나아지니까 사람 마음이…행운이랑 눈이 마주치면, 안타까워서 저 녀석을 어떻게 보내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냉정해야 하는데 내가 그러질 못해. 그래도 누가 잘 키워준다고 하면 보내야지."
이리 애매하게 말해서 너무 미안하다고. 그러나 마음을 어쩌지 못하는 할아버지의 마지막 당부가 이랬다.
"정 좋은 사람이 있으면 보내야지. 근데 급하게 하지는 말고 천천히… 여유 있게 알아봐 줄 수 있을까요. 바쁘실텐데 번거롭게 해드려서 정말 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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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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