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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장례 못가고 속앓이…하늘길 막혀도 공항 못 떠나는 승객들[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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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4회 작성일 24-11-28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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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오후 폭설로 항공편이 대규모 연기·결항되며 인천국제공항에 발이 묶인 여행객들. /사진=독자제공

"어젯밤 11시 비행기가 밤새 연착되더니 결국 취소됐어요. 23개월 아기가 피곤한지 계속 울고 있습니다."

#. 28일 오전 6시30분쯤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에 여행객들이 초췌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오늘은 기다리면 갈 수 있는 거냐"며 수군거리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누구는 캐리어에서 세면도구를 꺼내 화장실로 이동했다.

수도권에 폭설이 계속되는 가운데 인천공항을 이용하는 항공기 승객들의 발이 묶였다. 인천공항공사는 이날 오전 6시 기준 항공기 111편이 결항되고 31편이 지연됐다. 또 한국공항공사에 따르면 인천국제공항 외에 오전 9시 기준 전국에서 항공기 30편이 결항되고 25편이 지연됐다.


인천공항 터미널 안내판에 지연으로 표시된 항공편 다수는 시간이 지나면서 결항으로 바뀌었다. 28일 오전 출발 예정이던 항공편들도 3시간 이상 지연되고 있다. 항공기 이륙이 지연되며 면세구역에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이용객이 가득 찼다.

30대 싱가포르 여성 A씨는 23개월 아들과 남편과 인천국제공항 여객터미널에서 노숙을 했다. 전날 오후 11시10분 싱가포르행 항공편에 탑승할 예정이었지만 지연이 계속됐다. 항공편은 늦은 밤이 되자 결국 취소됐다. A씨 가족은 이날 오전 싱가포르에 도착해 크루즈 여객선에 탑승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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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이 내린 28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에서 여행객들이 항공기 지연 상황을 확인하고 있다. /사진=이찬종 기자

A씨는 항공사나 공항 직원에게 물어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명확한 답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싱가포르에 머무르는 계획이 무산돼 너무 힘들다"며 "아이가 피곤한지 자주 울고 있다"고 했다.

일본에 가려던 가족도 기약 없는 기다림 끝에 항공편을 취소했다. 최모씨는 부모님을 모시고 부인과 6살, 2살 딸들과 일본 여행을 갈 계획이었다. 폭설로 항공편은 결항됐고 발권한 항공권을 취소하기 위해 이날 오전까지 공항에 머물렀다. 최씨의 2살 딸은 기다림에 지쳐 보채기 시작했다. 최씨 아버지는 "얼마나 기다렸는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직장인 이모씨27도 공항에서 밤을 새웠다. 오사카행 항공편은 전날 오후 3시 이륙 예정이었지만 자정을 넘긴 시각 취소됐다. 전날 저녁 식사는 항공사에서 나눠준 밀 바우처로 공항 면세구역 음식점에서 해결했다. 집에 갈 차편이 없어 밤을 새우고 공항철도 첫 차를 탔다. 이씨는 "휴가 하루를 날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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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구조단체 위액트 봉사자들이 구조견을 캐나다로 입양보내기 위해 28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찾았다. /사진=이찬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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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전 동물구조단체 위액트 봉사자들이 캐나다로 입양보내기 위해 인천국제공항에 데리고온 구조견. /사진=이찬종 기자

동물구조단체 위액트 봉사자 임모씨32는 구조한 대형견 2마리를 캐나다로 입양 보내기 위해 공항에 왔다. 이날 오전 10시20분 항공편에 탑승하려 했지만 오후 12시20분으로 지연됐다.

임씨는 구조견의 비행기 탑승 시간을 줄이기 위해 평소에도 최대한 늦게 수속을 밟는다. 대기 시간엔 산책도 시킨다. 하지만 이날은 무더기 지연으로 공항 이용객이 많아 산책을 할 수 없었다. 날씨도 추워 밖에 나갈 수도 없다.

임씨는 "기내에서 개들이 화장실을 못 가서 먹이나 간식을 주지 않고 있다"며 "현장 상황이 좋지 않지만 개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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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늦은 오후 인천국제공항 출국장 면세구역에 몰린 승객과 승무원들. /사진=독자제공

국제대회에 참가하려던 선수들도 하늘길이 막혀 애를 태웠다. 20대 수영선수 이모씨는 같은 팀 선수 4명과 코치 2명과 함께 이날 오전 김포공항 출국장에서 항공기 안내판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전날 밤 항공사에서 결항 소식을 알렸지만 출전을 포기할 할 수 없어 공항에 왔다고 한다. 도쿄에 갈 다른 방법을 찾기 위해 분주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이씨는 "혹시 모르니 공항에 왔다"며 "내일 시합 못 나가면 큰일 난다"고 했다. 그러면서 "연착되다가 급하게 도착하면 아무래도 성적이 걱정된다"며 허탈해했다.

할머니 장례를 치르기 위해 급하게 공항에 온 유학생도 있다. 상하이행 항공기 탑승을 위해 김포국제공항을 찾은 중국인 B씨는 "조모상에 꼭 가야 하는데 눈이 많이 와서 걱정"이라며 "12시 비행기인데 일단 기다려볼 계획"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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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에서 항공편을 대기 중인 승객들. /사진=이찬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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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진 기자 sejin@mt.co.kr 김호빈 기자 hobin@mt.co.kr 인천=이찬종 기자 coldbell@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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