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보자 오열한 美 참전용사…"내가 왜 우는지 모를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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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만명 울린, 라미 현 작가의 미공군 6·25 참전 용사와의 만남
전 세계 참전용사 2700명 만나며 사진 찍어주고, 함께 밥 먹으며 기록 레스 크롬웰 참전용사, 태극기 보며 "내가 얼마나 이 순간을 기대했는지, 이보다 좋을 수 없어"
찾아다니는 이들은 미국에 사는 참전용사였다. 주로 20대 젊은이였을 이들. 6·25 전쟁에서 자유를 지키려 총을 들었을 군인들. 1950년에 작고 낯선 한국에 와서, 총탄과 포격에 무수히 피흘리며 죽어가거나 다쳤을, 그저 사람들. 고작 19살이었다. 참전용사이자 미 공군이었던 라스 크롬웰 말이다. 1932년 여름에 태어난 이는, 수원 비행장에서 전투기 조종사로 전쟁을 치렀다. 북한이 보유한 미그기에 대항하려, F-86 세이버 같은 빠른 비행기를 몰았다. 라미 작가가 그에게 태극기를 건네었다.
"오, 세상에…." 이어 그는 오열하기 시작했다. 참을 수 없단듯 왼손으로 이마를 감싸고, 몸을 위아래로 들썩이며 한동안 꺽꺽 울었다. 그리고 라미 작가에게 이리 말했다. "미안해요. 내가 왜 우는지 이해하지 못할 거야. 내가 얼마나 이순간을 기대했는지. 정말 이보다 좋을 순 없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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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롬웰이 기억했던 전쟁 "고아 15~20명, 겨울에 지낼 곳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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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 시간 정도 대화했거든요. 그렇게 보자마자 흐느끼시는 분은 처음 봐서 당황했어요. 우리가 국기를 보며 오열하고 그랬던 적이 있었을까요. 참전용사들은 감사를 넘어, 자기가 했던 것들을 보상 받는 느낌이었겠지요." 크롬웰 용사가 전해준 이야기들. 그걸 들으니 그 감정이 이해가 되었다. "우리 기지에는 15~20명의 고아가 머무르고 있었어요. 마음이 편치 않았지요. 부모도 없고, 아무것도 가진 게 없고요. 최소한 우리 군인들은 몸을 뉘일 막사라도 있었지만요. 당시 겨울에 영하 30도까지 떨어지는데, 어디서 지내겠어요." 크롬웰과 군인들은 아이들이 지낼 곳을 마련하는 게 큰 걱정거리였다. 힘을 합쳐 배를 채울 수 있게 도와줬다. 나무를 모아 지낼 수 있도록 헛간을 지어주고, 난로도 넣어줬다. 크롬웰이 회상했다. "어쩌면 버릴 것들로 사람 목숨을 살릴 수 있단 게 놀라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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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그기 격추시키고, 탈출하는 적군…죽이지 않고 경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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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존 글렌이란 조종사와 K-13 비행기를 몰 때였다. 해군 소속인 글렌은 진정한 조종사이자, 좋은 사람이었다. 크롬웰이 말했다. "한 번은 미그기를 격추시켰어요. 조종사가 낙하산을 타고 비상 탈출을 했지요. 그때 적을 죽이는 건 식은 죽 먹기에요. 그런데 글렌도 저도 죽이길 꺼려했지요. 우리는 비상탈출하는 조종사 옆을 그냥 지나치고, 경례했어요." 죽이지 않고 지나쳤단 이야기. 라미 작가는 "진짜 그랬느냐, 말도 안 된다"고 답했다. 처음 듣는 얘기였단다.
"이런 걸 보면 우리가 싸우는 적군 조종사들도 똑같은 인간이었던 거지요. 그런 와중에도 인간적인 면이 존재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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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미 작가 "한 명 찾아갈 때마다, 한 명 더 가봐야겠다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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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용사가 군복을 입고, 서재에 섰다. 사진을 찍고 고급 액자에 넣어 보여줬다. 크롬웰이 또 울었다. "이 사진은 정말 믿을 수가 없어요. 내 모든 인생이 다 들어 있어. 자네 정말 대단한 청년이군." 라미 작가가 대답했다. "용사님의 희생과 헌신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뵈러 온 거고요. 저는 앞서 말한 것들이 기억되길 바랄 뿐입니다. 다음 세대에게도요. 자유가 공짜가 아니란 걸 알리기 위해서요."
상황은 여의치 않다. 라미 작가는 늘 버틴다는 표현을 자주 썼다. 정부나 기업 후원을 받으며 하는 일도 아니다. 기록하고 만난 참전용사는 2700명. 인력은 고작 한 명. 영상 한 편을 만드는데 일주일씩 걸려, 만났음에도 담지 못한 이가 200명이 넘는단다.
"미국은 참전용사가 옆집에 있을 때 돌봐줍니다. 자주 와서 말동무도 해주고, 밥도 같이 먹고요. 참전용사란 이유만으로요. 그런 게 부럽지요." 끝으로 라미 작가가 크롬웰 용사에게 말했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절대 용사님을 잊지 않을 겁니다." 용사가 대답했다. "나 또한 절대 잊지 않을 걸세. 부탁이 하나 있어. 모든 참전 용사를 기억해주기를. 나뿐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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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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