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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취업 기뻐하던 아빠…식물인간으로 퇴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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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3회 작성일 24-12-20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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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도봉구청 기간제근로자로 일하던 박근호씨가명, 63, 제초 작업하다 벌 쏘여 의식 불명
구청, 제초 작업시 벌 쏘임 예방 안전장비 지급 안 해…근호씨 치료비 매달 750만원씩 들어
가족들 "취업했다고 자부심 느끼고 행복해했는데 끔찍하고 슬퍼, 기다리던 자식 결혼식도 못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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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기간제 일자리를 얻었다며 기쁘게, 또 열심히 출근하던 가족이 혼수상태로 퇴근한다면 어떨까. 도봉구청 기간제 근로자로 출근해 제초 작업을 하다, 벌 쏘임을 당해 의식 불명에 빠진 박근호씨가 병상에 누워 있는 모습. 딸 수아씨는 "심장이 쿵 내려 앉고, 끔찍하고 슬픈 기분이었다"고 토로했다./사진=수아씨 제공
지난 1월 28일이었다. 가족들이 모인 단톡방에 채팅이 떴다. 박수아씨가명 아빠 박근호씨가명, 63였다. 근호씨가 기뻐하며 말했다.

"아, 나 다시 일하게 됐다. 최종 합격했다."


은퇴 후에도 꾸준히 일을 찾던 근호씨. 그가 도봉구청에서 기간제근로자로 일하게 됐단 거였다. 올해 2월부터 12월까지, 근호씨가 평생 살아온 도봉구에서 산불과 산사태를 예방하는 일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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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와 올해, 박근호씨가명, 63는 도봉구청에서 기간제 근로자로 일했다. 합격한 뒤엔 이리 기뻐했다고 했다. 소식을 가족 단톡방에 알렸고, 축하가 오갔다. 자식들 다 결혼시킬 때까지 도움이 된 뒤 은퇴하고 싶다던 가장이었다./사진=수아씨 제공
근호씨를 만난 건 그로부터 11개월이 흐른 뒤였다. 지난 12월 9일, 의정부 한 병원에서였다. 근호씨의 딸 수아씨도 함께 있었다. 수아씨가 환자복을 입은 아빠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말했다.

"자부심이 크셨었어요. 가족들에게도, 아빠 스스로에게도요. 여전히 한 사람의 몫을 한단 것에 대해 뿌듯함을 느끼셨어요. 친구들에게도 그러셨대요. 내가 자식들 다 결혼시킬 때까지 일해서 도움이 좀 되고 완전히 은퇴하면 정말 걱정이 없겠다고요. 기분 좋다고, 평생 이리 행복한 적이 없다고요."

딸이 아빠에 대해 말하는데도, 근호씨는 그저 휠체어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너무나 가만히. 표정도 잃고 움직임도 잃었다. 그저 눈만 뜨고 허공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가족도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근호씨는 5개월 넘게,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벌, 벌, 벌"…제초 작업하다 벌에 쏘여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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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호씨가 제초 작업을 하다 벌 쏘임 사고를 당한, 서울 도봉구 생태터널 인근 녹지./사진=수아씨 제공
사고가 난 건 지난 7월 11일. 근호씨가 출근해 향한 곳은 서울 도봉구 생태터널 인근 녹지였다.

여기서 산사태 예방의 일환이라며, 도봉구청 공원여가과 자연생태팀 주무관으로부터 제초 작업 지시를 받았다.

그날 오후 3시14분쯤. 근호씨는 풀을 제거하다 수풀 사이 벌집에서 나온 벌떼로부터 머리를 쏘였다. 동료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벌 쏘임 이후 아나팔락시스 쇼크심각한 알레르기 반응로 인해 기도가 막힌 상태라 말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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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또 다른 동료 기간제 근로자 임모씨가 근호씨를 발견했다. 동료를 본 근호씨는 "벌, 벌, 벌"하며 손가락을 네 개 들었다. 네 방을 쏘였다고 하는 듯했다. 그러면서 몸을 떨고 가슴이 아프다고 호소했다. 임씨가 바로 119에 신고해 근호씨는 병원에 실려 갔다.

이후 심장은 살렸으나 혼수상태에 빠졌다. 병원에선 심정지로 인해 심각한 뇌 손상을 입어 의학적으로 의식을 회복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소견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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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월 넘게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박근호씨의 의사 소견서./사진=수아씨 제공



산불·산사태 예방인데 제초는 왜…벌 쏘임 보호구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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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초 작업 전 안전장비를 제대로 착용한 모습./사진=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지침
딸 수아씨는 당시 아빠 소식을 듣고 억장이 무너졌단다.

"진짜 심장이 내려앉는단 게 이런 거구나 싶었어요. 끔찍했죠. 아빠 같은, 특히 60세가 넘은 분들은 산 같은데 돌아다니며 위험해 보이는 게 있으면 보고 올리는 정도로만 생각했어요. 아빠도 그 정도로 알고 있었고요. 위험한 업무는 일반인들이 잘 못 하잖아요."

제초 작업을 할 때 벌에 쏘이는 사고는 지속적으로 빈번히 발생해 왔다. 지난 8월 24일엔 강원도 화천에서 제초하던 60대가, 무릎을 벌에 쏘여 병원 치료 도중 숨졌다. 지난 8월19일엔 전남 해남군 폐교서 풀을 베던 50대가 벌 쏘임으로 숨졌고, 16일 경기 군포에서도 생태공원에서 제초 작업하던 70대가 말벌에 쏘여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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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마련한 예초기 작업에 관한 기술 지침엔 독충 물림, 충돌, 전도 등 사고 발생 시 팔, 다리 등 작업자 신체를 보호할 안전 보호복 등 개인 보호구를 착용하게 돼 있다. 이와 관련해 안전 교육도 실시하게끔 나와 있다. 행정안전부가 지난 8월 낸 추석 예초기 사고 주의 관련 보도자료에도 "안면보호구, 보안경이 필수"라고 적혀 있다.

도봉구청 측은 제초시 돌이나 식물 뿌리가 튈 때 막을 보호구는 지급했다고 밝혔다. 도봉구청 공원여가과장은 "돌 튈 때 막을 오토바이 하이바 같은 안전 장비와 팔토시, 앞치마, 안전화 등을 지급했다"고 했다. 그러나 벌 쏘임 등 독충을 막을 보호장비는 지급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근호씨 재해 사고 이후 도봉구청은 추가로 벌 쏘임 보호장비를 지급했다고 밝혔다. 담당 과장은 "혹시라도 벌이 나올 때 대비할 안전 장비는 구매해 지급하고 있다"면서도 "작업시 시야 확보가 안 돼 또 다른 안전 사고가 생길 수 있다"고 했다.



"재취업 어려운 연세라, 책임자 지시 어기기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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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호씨와 도봉구청 현장 책임자인 자연생태팀 주무관이 주고 받은 업무 보고 카톡. 산사태 예방 일자리임에도 멧돼지 포획틀 먹이 공급, 간이화장실 청소 등 업무를 추가로 했다./사진=수아씨 제공
근호씨 가족은 제초 작업이 당초 왜 산불 및 산사태 예방에 속하는지도 의문이라고 했다.

수아씨가 추가 확인해보니, 아빠 근호씨가 하던 건 제초 작업뿐만이 아녔다. 화장실 청소, 멧돼지 포획틀 설치 및 철수 등까지 도맡아 해야 했다.

근호씨가 계약한 산불·산사태 예방 일자리 공고에 나온 주요 업무는 산불 예방 및 진화 활동, 연소 물질 제거 활동, 산사태 취약지역 등의 예방 순찰 및 조치, 주민대피 등 안전조치 등이 주로 나와 있었다. 그러나 기타 관계 공무원이 필요하다고 인정되어 지시한 제반 업무가 포함돼 있어, 업무 범위가 애매모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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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아빠가 일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수아씨가 알 것 같다고 했다. 그가 울분에 차서 말했다.

"어디 가서 재취업하기 힘든 분들이잖아요. 60세가 넘으셨고 집에만 있기엔 또 젊은 분들이고요. 계속 일하고 싶은 분들이라, 그 지시를 안 따를 수가 없거든요. 아빠도 정말 열심히 하셨어요. 도봉구 소속으로 일하신단 거에 자부심이 있으셨고요."

이와 관련해 도봉구청 공원여가과장에게 산불·산사태와 제초 작업의 업무 연관성을 묻자 그가 이리 답했다.

"산불이 날 때 잡풀에 붙어서 야산 쪽으로 퍼지잖아요. 불이 풀부터 붙어서 확산이 된다고요. 풀이 자라다 놔두면 말라서 불쏘시개가 될 수 있으니, 그거를 제거한다 이거죠."



한 달 치료비 750만원인데…도봉구청은 합의금 1억에, 2년치 치료비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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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수아씨 제공

도봉구청이 근호씨 가족 측에 먼저 합의를 제안했단다. 근호씨 재해에 대한 위로금 1억원에 내년과 후년까지 치료비를 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근호씨 가족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수아씨에게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아빠 한 달 치료비가 750만원 정도 나가거든요. 산재에 해당이 돼서 일정 부분 보조가 되지만, 그게 끝나면 오롯이 다 저희가 내야 하니까요. 10년간 혼수상태가 유지되는 경우도 많다는데, 3년은 짧게 느껴졌어요. 처음에 말했던 것과 태도도 달라졌고요."

근호씨 가족 측에 따르면, 도봉구청 측은 사고 직후엔 사과와 지속적인 치료비 지급을 약속했으나, 지난 10월 가족들과 처음 만난 자리에선 "과실이 없다"며 입장을 번복했다고 했단다. 상호 간 비방, 명예훼손 등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도봉구청이 제시한 합의서에 적혀 있기도 했다고. 가족 측은 "언급하지 않게 하려는 은폐 시도"로 느껴졌다고 했다.

도봉구청 담당 과장은 "산재 처리를 해드렸고, 구청에선 예산으로 지출하는 거라 근거가 있어야 한다. 외부 전문가 자문을 종합한 결과, 위로금 1억원이 안 될 수도 있고 줄 수 있는 근거가 없다고 한 것"이라고 했다.



"자식 결혼식 기대했는데 못 본 아빠…안전하게 바뀌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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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수아씨 제공
그냥 넘어가면 안 되겠다 싶었단다. 근호씨 가족들은 오언석 도봉구청장, 공원여가과 과장, 자연생태팀 주무관 등을 산업안전보건법위반 및 업무상 과실치상 등으로 도봉경찰서에 고발했다.

이들이 적은 고발이유서에는 이리 적혀 있었다.

피고발인들의 반성하지 않는 태도로 미루어 보아, 이 사건 재해 이후로도 피고발인들은 산업재해 예방 조치를 준수하지 않겠다고 판단하여 이 사건 재해와 같은 사고가 재발하는 것을 방지하고자 고발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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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아씨가 이와 관련해 추가로 덧붙였다.

"아빠 같은 상황이 생기면 과연 치료비를 부담할 수 있을까. 저희야 자식이라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그럴 때 호흡기를 떼면 저희가 죽이는 거나 다름없잖아요. 이런 문제들이 많이 벌어질 수도 있겠다 싶더라고요. 진짜 다시는 이런 사고가 안 일어나게, 안전하게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서 딸은 의식이 없는 아빠에게, 아빠가 좋아할 말을 계속 들려준다고 했다.

"동생이 10월에 결혼했단 얘길 들려줬어요. 엄청나게 기대하고 계셨었거든요. 재해 때문에 못 갔죠. 조카들이 곧 초등학교에 들어간다, 그런 얘기들을 계속해줘요. 엄마는 계속 우시면서 이제 나 혼자 어떻게 하냐고 하시고요. 할머니는 아직 살아계신 데 말씀을 못 드렸어요. 충격받으실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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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에도 일한다고 행복해하던 아빠가 이리 돌아올줄 몰랐다고. 딸 박수아씨가명는 혼수상태로 돌아온 아빠 박근호씨가명, 63 모습이 믿어지지 않아 한참을 힘들어 했다. 스스로 한 사람 몫을 한단 것에, 일도 열심히 하고 기쁨을 느끼던 이가 근호씨라고 했다./사진=남형도 기자
진짜 쾌활하고 착하고 좋은 분이었다며 수아씨는 눈시울을 또 붉혔다. 옛날처럼 돌아오는 건 바라지 않으니, 그저 눈만 뜨고 말할 수만 있음 좋겠다고. 기적처럼 그런 순간이 오면, 실명이 기재된 걸 보고 싫어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부디 익명으로 기사에 담아달라던 딸의 부탁이 내내 어른거렸다.

"아빠, 다음에 봐."

돌아서는 수아씨의 인사에도, 근호씨는 아무런 답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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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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