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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대통령, 5·18기념식서 어느 열사 묘소 찾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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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83회 작성일 23-05-18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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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조국이 날 불러요" 정의로운 고등학생 전영진
계엄군 집단발포 당일 행방불명 구둣공 김재영
5월 27일 최후항전 끝에 구금·옥고치른 정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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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42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을 마친 뒤 행불자 묘역에 참배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2022.05.18.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광주=뉴시스]이영주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제43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기념식을 마친 뒤 참배하는 열사들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18일 광주시와 국가보훈처 등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10시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리는 제43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뒤 3명의 열사 묘소를 찾는다.

윤 대통령은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전영진당시 18세 군, 행방불명된 고아 구둣공 김재영당시 17세 군, 시민군 정윤식당시 22세 열사의 묘소를 찾을 것으로 알려졌다.

전 군은 1980년 당시 대동고 3학년 재학 도중 5·18을 마주했다. 휴교령이 내려지며 등교를 못하게 되자 집에서 공부하게 된 그는 참고서를 사러 나가던 중 계엄군에게 구타를 당했다.

겨우 집으로 돌아온 전 군은 계엄군의 행동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닫고 시위에 나서기로 결심했다. 대학가에서 부르짖는 민주화는 잘 몰랐지만, 시위대가 부르짖는 외침이 올곧다는 것 만은 느낄 수 있었다.

전 군은 5월 21일 오전 금남로로 뛰쳐나갔다. 계엄군이 금남로에서 시민들을 향해 집단 발포한 날이다. 전 군도 하필 그 자리에 있었다. 당일 오후 2시 전 군은 옛전남도청 옥상에서 날아온 흉탄에 머리를 맞아 세상을 떠났다.

전 군은 집을 나서기 이틀 전 어머니에게 "엄마, 조국이 나를 불러요"라고 말했다.

전 군은 1묘역 1-51에 안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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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뉴시스] 이영주 기자 = 5·18 당시 숨진 정의로운 고등학생 전영진 군의 영정사진 사진 = 국립5·18민주묘지 제공 2023.05.18. leeyj2578@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전 군이 숨진 같은 날 구둣공 김 군은 금남로에서 행방불명됐다.

김 군은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마저 형제들을 데리고 집을 나갔다. 작은아버지를 통해 가까스로 주민등록까지 마쳤지만, 이밖의 도움의 손길을 마다한 채 거리를 전전했다.

어려서부터 혼자 세상과 부딪혀온 김 군은 금남로에서 행인들의 구두를 닦는 일로 생계를 유지했다. 그의 생계 터전이었던 금남로에는 5월 18일 이후 매일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김 군은 금남로에서 시위에 휘말렸다가 계엄군의 총에 맞았다.

김 군은 자신처럼 총에 맞아 쓰러진 시민들을 태운 계엄군 트럭에 실렸다. 이 트럭이 유동 방향으로 사라지면서 43년이 지난 현재까지 행방이 불분명하다. 김 군의 묘소는 1묘역 10-11에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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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뉴시스] 이영주 기자 = 5·18 당시 최후항전에 참여한 뒤 옥고를 치른 시민군 정윤식씨의 영정사진 사진 = 국립5·18민주묘지 제공 2023.05.18. leeyj2578@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정 열사는 1980년 당시 광주공원 주변 한 식당에서 일하던 중 5·18을 겪게 됐다. 시민군이 전남 곳곳의 파출소에서 탈취한 총기 등을 광주공원에서 나눠주자 그도 합류했다. 시민군이 된 그는 공권력이 사라진 광주의 치안과 질서를 도맡았다.

시민군 최후항전이 벌어졌던 5월 27일 그는 옛전남도청에서 계엄군에게 체포됐다. 등에 폭도라고 적힌 채 상무대로 끌려간 그는 모진 옥고를 치른 뒤 그해 9월 5일 풀려났다.

고초 끝에 트라우마를 얻고 만 정 열사는 자기 팔을 담뱃불로 지지거나 집안에 놓인 가구를 마구 던졌다. 남에게 해코지를 하기에 이르면서 한방 치료를 시작했지만 약효가 듣지 않았다.

시름시름 앓던 정 열사는 2년 뒤인 1982년 2월 28일 가족들의 품에서 숨을 거뒀다.

정 열사는 1묘역 2-77에 묘소가 마련됐다.

☞공감언론 뉴시스 leeyj2578@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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