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신입생 0명→폐교→상권 붕괴→동네 소멸 도미노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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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 0명’ 작년 157→올해 184곳
슈퍼마켓 등 상권 소멸도 빨라져

“수백 명이던 학생이 줄어서 40명 남았어요.”
23일 인천 강화군 송해초등학교 앞에서 만난 이 마을 이장 조성환 씨70는 이렇게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학교 앞으로 보이는 건 끝없이 펼쳐진 논밭, 낡은 주택, 비닐하우스, 철물점뿐이었다. 올해 이 학교 신입생은 0명이다.
교육부 등에 따르면 올해 전국 초등학교 가운데 입학생이 한 명도 없는 학교는 184곳으로 잠정 집계됐다. 지난해 157곳에서 27곳이 늘었다. 내년에는 사상 처음으로 200곳을 넘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올해 폐교하는 초중고교도 49곳으로, 지난해 33곳보다 크게 늘었다.
문제는 학교 입학생 감소와 폐교가 단순히 학교와 학생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 동네 소멸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17일 동아일보가 찾아간 경기 파주시 적암초등학교도 반경 1km 내에서 슈퍼마켓 하나 찾기 어려웠다. 학교에서 1.3km 떨어진 거리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정순옥 씨73는 “최근 몇 년간 문방구, 사진관이 하나씩 사라졌고, 물품 납품하는 업체는 ‘기름값도 안 나온다’며 지난가을부터는 물건도 안 갖다 준다”고 했다. 이 학교의 올해 입학생은 4명, 지난해 입학생은 0명이었다.
전국 184개 초교 ‘신입생 0명’… 비수도권 학령인구 감소 두드러져
지역 중고교도 연쇄적 존폐 위기… 주변 학원-문구점 등 폐업 속출
“젊은 사람들 일자리 찾아 떠나… 장학금 지급 등 자구책 역부족”
“학교와, 학교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학원 갈 때 빼곤 제 나이 애들 볼 일이 없어요.”
17일 경기 파주시 적암초등학교 앞에서 만난 재학생 박모 군11이 말했다. 공터로 둘러싸인 적암초 주변은 적막했다. 문구점은 물론이고 상점 하나 찾기 어려웠다. 박 군은 “학교 근처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엔 아무것도 없어서 이동할 땐 항상 부모님 차로 다닌다”고 했다.
● 올해 전국 초교 184곳 ‘신입생 0명’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에 따르면 ‘입학생 0명’ 학교는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2021년 112곳이었던 것이 2022년 126곳, 2023년 149곳, 2024년 157곳, 올해 184곳으로 늘었다.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내년에는 처음으로 200곳을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고 교육당국은 보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학령인구 감소가 가속화되고 있는 비수도권 지역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올해 기준 경북에서 42곳의 초등학교가 입학생을 받지 못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어 전남 32곳, 경남 26곳, 전북 25곳, 강원 21곳 순이었다.
인천 강화군 송해초 인근에서 평생을 살아온 주민 이모 씨89는 “젊은 사람들은 다 객지로 떠나고 이곳엔 노인들만 남았다”고 했다. 올해 입학생이 없는 강화군 해명초에서 통학 버스를 운행하다 5년 전 퇴직한 정해영 씨67는 “5, 6년 전부터 학생 수가 조금씩 줄더니 이제는 마을에서 초등학생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며 “주변에 공업단지도 없고 먹고살 만한 일자리가 없다 보니 젊은 사람들이 다 떠나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 지역 경제에 도미노 여파

초등학교 입학생 ‘0명’의 여파는 단순히 해당 학교의 폐교로 끝나지 않는다. 학령인구가 줄어들면 중학교와 고등학교 역시 존폐 위기에 놓이고, 결국 지역사회 전체가 영향을 받는다. 실제로 전국 폐교된 초중고교는 2021년 24곳, 2022년 25곳, 2023년 22곳, 2024년 33곳, 2025년에는 49곳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이 과정에서 지역 상권도 급격히 쇠락한다. 정 씨는 “예전에는 학교 앞에 태권도 학원과 피아노 학원 버스가 줄지어 서는 모습을 자주 봤다”며 “하지만 학생 수가 줄면서 학원들이 문을 닫았고, 동네 문구점과 구멍가게도 모두 사라졌다”고 밝혔다.
이날 찾은 해명초 인근에서도 학생은 물론이고 주민조차 찾아보기 어려웠다. 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던 펜션 6곳도 모두 문을 굳게 닫은 상태였다. 적암초 인근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박모 씨62는 “4, 5년 전만 해도 초등학생들이 가게에 들러 간식을 사곤 했는데, 요즘은 그런 모습을 볼 수 없다”며 “손님이 줄어 폐업을 고민 중”이라고 했다.
● 기부금 유치하고 입학생에 장학금
일부 학교들은 폐교 위기를 막기 위해 다양한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 동문들을 통해 기부금을 유치하거나, 입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2020년부터 신입생이 없었던 충북의 한 중학교는 동문들의 기부금을 활용해 학생들을 위한 특별 프로그램을 마련한 끝에 겨우 입학생을 유치했다.
개별 학교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안으로 ‘공동일방 학구제’ 도입이 거론된다. 시·읍 지역의 학교와 면 단위 소규모 학교를 공동 학구로 지정해 주소 이전 없이 학생들이 소규모 학교로 전학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다만 이를 위해선 지역 인프라 개선, 학교 자체 프로그램 마련, 통학 차량 노선 확대 등의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김희규 신라대 교육학과 교수는 “지역 초중고교의 폐교는 그 지역의 경제는 물론이고 소멸과 직결되는 문제”라며 “소멸 위기 지역이 공동 학구제를 도입해 학생을 유치할 수 있도록 교육청과 지자체가 주위 인프라를 개선하고 학교 프로그램과 통학 차량을 마련하는 등 지원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강화=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파주=천종현 기자 pun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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