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시방서가 뭐냐" 수상한 한마디…은행 지점장 촉이 피싱 막았다 > 사회기사 | society

지난달 4일 오전 서울 송파구 소재 김제산림조합금융 석촌지점으로 자신을 시공사 직원이라고 한 남성 A씨가 찾아와 현금 5000만원 인출을 요구했다. 그가 내민 건설법인 계좌는 한 달 전 개설된 것으로, 지점 측은 “인출을 위해선 관련 서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점 측이 건설업체의 기초적 서류인 시방서示方書·공사에 대한 표준안 및 규정 등을 설명한 문서 등을 제출할 것을 요구하자 A씨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게 뭔가”라고 되물었다.

임동열62 지점장은 이를 수상하게 여겼다. 임 지점장은 “건설업체라면서 아주 기초적인 서류인 시방서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등 수상하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임 지점장이 직접 서류를 검토한 뒤 재차 서류를 보완할 것을 요구하자 인출을 시도한 A씨는 그대로 돌아갔다. 이후에도 A씨가 한차례 서류를 보완해 다시 은행을 찾았지만, 임 지점장은 인출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서류 보완을 재요청했다. 그 사이 해당 계좌는 피해자의 신고로 정지됐고, 지난달 7일 자신이 시공사 대표라며 인출을 요구하던 B씨는 현장에서 계좌 정지 사실을 알게 되자 달아났다고 한다.


서울 도봉경찰서는 A씨 등이 보이스피싱 범행을 저지른 혐의를 포착해 이들을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 위반 혐의로 입건해서 수사하고 있다고 3일 밝혔다. A씨 등은 피해자에게 ‘카드 개설 안내’ 보이스피싱 범행을 저지른 뒤 빼돌린 개인정보로 피해자로부터 약 1억4200만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A씨 등은 또 피해자 계좌에서 5000만원을 빼돌리려 했지만, 임 지점장의 기지로 추가 범행을 막을 수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은행 측에서 인출을 미루면서 보이스피싱 피해를 예방한 건 처음 있는 일”이라고 전했다.

이에 경찰은 보이스피싱 추가 피해를 예방한 임 지점장에게 전날 정한규 서장 명의로 감사장을 전달했다. 30년간 시중은행에서 일한 경력의 임 지점장은 “직원들에게 늘 계좌 업무가 여러 사기 범죄로 이어질 수 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서민들에게 간다고 강조해왔다”며 “피해자의 소중한 돈 지킬 수 있어 뿌듯하게 생각한다”며 소감을 밝혔다.

신혜연 기자 shin.hye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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