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살 직전 돼지에게, 밥과 물을 주었다[남기자의 체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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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살장 앞, 뜨겁고 비좁은 트럭에서 울부짖던 돼지들, 시원한 물 주니 우르르 다가와 벌컥벌컥…고기로만 알았던 돼지들의 고유함, 죽이기 직전까지 굶기고 옴짝달싹 못하게하는 어떤 폭력에 대한 기록
[편집자주]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시내를 다녀 봤습니다.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습니다. 직접 체험해 깨닫고 알리는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입니다. 체험과 저널리즘을 합친 말입니다. 사서 고생하는 맘으로 현장을 누비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을 알리고, 가장자리에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2층짜리 트럭엔 돼지들이 빼곡했다. 트럭 뒤엔 또 다른 트럭이, 그 뒤엔 또 다른 게 줄지어 서 있었다. "진짜 추석 전이라 그런지 너무 많네요." 사이란 이름의 활동가가 말했다. 1시간쯤 뒤면 도살돼 보기 좋게 포장될 거였다. 그 포장지 일부엔, 돼지들 의사와는 무관하게, 웃는 캐릭터가 들어가기도 할 거였다. 최대한 잔뜩 실으려했던 게 느껴졌다. 누가 묶어놓은 게 아님에도 돼지들이 옴짝달싹 못했다. 옆에, 뒤에, 앞에, 심지어는 위에까지. 돼지들이 서로를 죽어라 밀고 눌렀다. 가뜩이나 뜨거운 트럭 안. 살과 살이 마찰해 흡사 익어버릴까 싶을만큼 빽빽했다. "꽤애액", "꽤액". 절규가 들릴 때마다 고막에 고통이 파고들었다. 아비규환. 그러느라 탈진한 존재들은 겹겹이 쌓여 있기도 했다.
뚜껑에 뚫린 작은 구멍으로 기다란 물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이를 알아챈 돼지들이 정신 없이 몰려들었다. 자조하는 인간 동물이 주는 물일지언정 가리지 않고 벌컥벌컥 받아마셨다. 이들에겐 선택지가 없었다. 이미 12시간은 굶고 물도 못 마신 상태였다. 도살 직전엔, 반드시 그러도록 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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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앞둔 돼지를 만나러, 강원도 감자 네 개를 삶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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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밤이 됐다. 강원도 감자 네 개를 삶았다. 아내가 "내일 취재 가서 먹으려고?"라며 물었다. 돼지들에게 줄 거라고 하니 의아해했다. 그 돼지가 마지막으로 먹을 밥과 물이라는 말은 속으로 삼켰다. 감자를 서걱서걱 깎고, 거기에 물을 뿌렸다. 전자레인지를 돌려 푹 익을 때까지 잘 삶았다. 뚜껑을 여니 김이 모락모락 났다. 뜨거운 걸 적당히 잘 식혔다.
노랗게 잘 익은 감자 네 개와 2리터짜리 빈 물통. 이름 모를 돼지들의 마지막 식사를 가방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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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공기를 처음 맡은…6개월 된 초등학생 돼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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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돼지 수십마리가 가득했다. 정확히는 죽기 직전 돼지들이었다. 굶을대로 굶은. 우는 것처럼 병든 시뻘건 눈, 아무렇게나 구겨진 몸, 피부에 난 상처, 쉴새 없는 비명. 잘 포장된 고기이거나 음식이기 이전의 모습들. 잘 숨겨져 왔던 광경들. 사이 활동가가 말했다. "태어난지 6개월 정도, 사람으로 치면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 된 거예요." 태어나자마자 꼬리와 이빨이 잘린다. 마취 없이 고환이 뜯긴다. 좁은 시설에 갇힌다. 쓰레기 같은 음식을 먹는다. 끊임없이 주사를 맞는다. 항생제와 더불어 무럭무럭 살찌운다. 자란다. 또 자란다. 죽이기 좋을만큼 알맞게 자란다. 죽는 날 드디어 바깥에 나온다. 6개월 된 아기 돼지가 킁킁거린다. 축사 악취가 아닌 깨끗한 공기를 처음 안다. 탐험하듯 들이마신다. 우리가 만난 장소, 도살장 앞 공간은 그런 의미였다. 가둬지지 않고, 인간 동물과 비인간 동물이 서로 눈을 바라볼 수 있으며, 숨이 섞일 수 있었던, 유일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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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감자를 먹이며 알게된 폭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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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열기의 틈바구니에서 한 돼지가 솟은 걸 보며, 사이 활동가가 말했다. 잠깐 고개든 돼지는 중력에 막혀 바닥으로 되돌아갔다. 비질에 참여한 이들이 받아온 물을 줬다. 새벽이생추어리에서 온 활동가 몇몇은 아예, 물 주는 펌프를 가져왔다. 마지막 밥과 물. 대기하는 트럭이 출발하기 전에, 빠르게 줘야만 했다. "돈사 안이 비명으로 가득 차기 시작하는 건 이빨을 자를 때부터다. 한 손으로 돼지 목을 잡고 엄지손가락을 입안에 넣어 강제로 입을 벌린다. 다른 손엔 니퍼를 들고 이빨을 잘랐다."한승태 작가 - 고기로 태어나서
트럭은 이미 건너편에서 무게를 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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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짐없이 다른 얼굴들, 성격들
━ 그리고 알아챈 건 이런 거였다. 당연하게도 다 같은 얼굴이 아녔다. 다 달랐다. 같은 존재는 없었다. 성격도 그랬다. 어떤 돼지는 물을 줬을 때 외면했다. 얼굴에 물줄기를 그대로 맞기만 했다. 가장 기억나는 돼지는 몸집이 상대적으로 작았다. 3초를 고민하다 울음이라고 명명해봤다. 울음이는 특이하게, 물을 주다 다른 돼지에게 주면 꾸에엥하고 울었다. 그러다 다시 물을 주면 꿀떡꿀떡 물을 마셨다. 그리고 또 돌리면 끄엥, 꽹하고 작게 울었다. 떼쓰는 어린이 같았다.
그 존재들에게서 저마다의 다름이 보이고, 고유함으로 느껴지는 순간, 이들을 분별없이 막 실은 거대한 트럭이 숨막히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트럭은 쉴새 없이 줄지어 도살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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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식이 아니라…어떤 동물도 안 하는 폭력에 대한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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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스러웠다. 고기를 먹는 주제에, 복잡한 현장의 결론은 어떻게 지어야 하는 건지. 사이 활동가는 단지 육식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했다. 인간 동물이 비인간 동물과 구분 짓고, 마구 행하는 폭력에 대한 게 본질이라고. 그 폭력이, 동물이라면 저지르지 않는 거란다. 그의 설명이 이랬다.
도살장에서 공개 구조돼 돼지답게 살아가는 새벽이생추어리의 새벽이. 새벽이가 동물다움을 회복하는 과정은, 인간이 가한 폭력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이가 잘려 처음엔 작은 수박 조각도 먹기 어려워했던 새벽이. 입에서 송곳니가 자라난 걸 바라보던 활동가들의 기록이 이랬다.
비질을 시작하기 전 사이 활동가가 이리 말했었다. "저기 끌려가는 돼지들이 정말 무력할까요? 끝까지 소리지르는 존재도 있고, 누군가은 완전히 탈진된 걸 보여주며 끝까지 숨을 놓지 않지요. 어느 누구도 투쟁하지 않는 존재가 없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도와주는 게 아니라 투쟁하는 당사자에게 연대하는 거지요." 도살장 건너편에서 각자 방식으로 기도할 때였다. 누군가는 절을 하고 누군가는 묵념했다. 난 도살장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거기 실린 돼지들을 보고 있었다. 철컹철컹 소리가 들렸다. 한 돼지가 바깥쪽을 바라보며 열망하는 소리였다. 코로 트럭 철창을 들어올리려 애쓰고 있었다. 그러나, 별수 없이, 고개를 들 수 있는 만큼만 철창이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그걸 보고, 난 핸드폰을 재빨리 꺼내어 영상으로 기록해두었다. 자기 자리에서 포기 않고 싸우던, 돼지에게 기꺼이 연대하는 마음으로. 그날 밥과 물을 주며 같은 동물로서 관계란 걸 맺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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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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