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물들 시간이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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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늦을 줄 몰랐습니다. 이번 선물에는 꼭 노란 은행나무를 담겠노라 다짐했는데 생각보다 더디게 물드는 단풍에 며칠 동안 ‘눈치 게임’을 했습니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단풍없는 단풍구경을 다녀왔다”는 이야기에 점점 불안했습니다. 은행나무 단풍으로 유명한 충북 제천 배론성지, 괴산 문광저수지, 강원도 원주 문막읍 반계리까지 매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폐쇄회로텔레비전CCTV를 지켜보다가 갑작스러운 한파 소식에 뒤도 보지 않고 경기도 여주 강천섬으로 향했습니다.
오후에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지금이 아니면 못 찍을 수도 있으니까요. 갑작스럽게 눈이 내릴 때 ‘조금 이따가 찍어야지’하며 다른 일을 먼저 하면 어느새 눈은 그칩니다. 그뿐인가요, 집회 현장에서도 누구보다 간절하고 팔뚝질을 하는 참가자를 눈여겨보다가 아주 잠깐 렌즈를 다른 곳으로 돌리면 그분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립니다. 참 신기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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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는 별개로 저는 요즘 시간을 두고 생각하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조급하게 말을 내뱉지 않으려 노력 중입니다. 제 스스로 왜 이런 생각을 하는지,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를 물어봅니다. 또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어떤 생각을 했을지,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를 곱씹어 봅니다. 그러고 나면 그때의 말과 행동이 후회스럽기도 합니다. 다시 주워 담을 수도 돌릴 수도 없으니까요. 그때엔 보이지 않는 생각과 이해할 수 없었던 감정들이 정리가 됩니다. 아쉽게도 생각의 끝이 늘 자책으로 끝나지만 그래도 언제인가 이 모순의 순환이 끝날 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여주 강천섬은 4대강 공사 이전에 주민들이 땅콩을 많이 재배해 ‘땅콩섬’으로 불리던 곳입니다. ‘바위늪구비’와 이어진 습지였는데 4대강 공사로 샛강을 뚫고 둑을 쌓으면서 섬이 됐습니다. 6만㎡에 이르는 섬에는 갈대숲, 단양쑥부쟁이, 억새, 목련 등도 만날 수 있습니다. 넓은 잔디광장에서는 주말에 종종 문화행사가 열리기도 합니다. 강천섬 주차장 인근과 굴암리 주민회관 인근 두 다리를 통해 자전거와 보행자만 드나들 수 있습니다.
아마 지금쯤이면 강천섬에는 노란 은행잎 카펫이 깔렸을 겁니다. 잎을 모두 떠나 보낸 은행나무는 앙상하게 가지만 남아 있겠지만, 또 한번 찬란하게 빛날 가을을 기다리겠죠. 다음 선물은 추운 겨울이 반가운 이유 중 하나를 준비하겠습니다. 큰 일교차에 감기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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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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