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매일 새로운 의혹이 제기되고 해명과 반박이 거듭되면서 본질은 사라지고 왜곡된 파편만 남게 됩니다. [리뷰1]은 이슈의 핵심을 한눈에 파악하고 전체를 볼 수 있도록 도움을 드리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전문가와 현장의 목소리도 함께 담겠습니다.
서울=뉴스1 유민주 기자 = 어린이날 이벤트 빠르게 해요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형형색색의 액상 전자담배 기기 판매 글들이 확산하고 있다. 액상통 관련 광고 문구도 귀엽다 향이 달콤하다 맛있는 액상 다 있다 세련되고 예쁘다 등의 수식어로 구매를 유도하고 있었다. 온라인상에는 심지어 5월5일 어린이날을 앞두고 대리구매 이벤트를 진행한다는 홍보 글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원래 담배로 분류되는 제품들은 온라인 광고가 불가능하다. 그뿐만 아니라 전자거래 금지, 담뱃값 경고 그림 문구 표시, 광고 제한 같은 각종 규제를 받지만 액상 전자담배는 현재 예외다.
담배규제기본협약에 담배의 정의를 연초의 잎을 원료로 만든 것으로 한정하고 있는데, 액상 전자담배의 원료는 화학물질을 이용한 합성 니코틴이기 때문에 담배로 분류되지 않는다. 온오프라인에서 청소년들에게 무분별하게 노출되더라도 법적으로 규제할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문제는 또 있다. 성인 신분증만 갖다 대면 구매가 가능한 전자담배 무인 자판기 매장도 늘어나는 추세인데 편의점과 달리 사람이 감시할 수 없다 보니 심리적인 접근성 또한 쉬워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2일 실제로 방문한 종로구의 한 전자담배 무인 매장에는 폐쇄회로CC가 설치돼 있고 출입문에도 미성년자 출입 금지라는 표시가 붙어있었다. 하지만 감시하는 사람이 없어 들어가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또 밀폐된 공간에 자리 잡고 있어 주변 시선을 의식할 필요도 없어 보였다.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전자담배 자판기. ⓒ News1
자판기 사용법도 간단했다. 성인 인증을 위해 바코드 읽는 곳에 신분증을 넣고 스캔하면 된다. 빌려온 지인의 신분증을 넣고 신용카드로 계산해도 문제없이 결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미성년자가 어떤 경로든지 성인 신분증을 확보하면 어렵지 않게 전자담배를 구매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 국가금연지원센터가 지난해 11월 인터넷 모니터링과 현장 점검을 통해 전국에 운영 중인 무인 담배판매점 62곳상당수가 액상 전자담배판매점을 확인했다. 전체의 83.9%52곳는 출입문이 상시 개방돼 있었고 성인 인증 장치신분증·신용카드도 부착하지 않고 있었다.
성인 인증 장치가 아예 고장 난 곳도 발견됐다. 62.9%39곳는 출입문에 ‘19세 미만 출입 금지’ 문구가 붙어 있지 않았다. 또 실제 제품 구매 시도 결과 절반에 가까운 48.3%30곳는 성인 인증 장치가 부착돼 있었음에도 다른 사람 신분증을 이용해 제품을 살 수 있었다.
◇ 학교 앞 전담 자판기 있어도 못 막아…개정안 30일 자동 폐기
합성 니코틴 전자담배 등 담배사업법상 담배에 포함되지 않아 학교 인근에 전자담배 무인 자판기를 설치해도 현재로서는 법적으로 제재할 방법이 없다. 교육환경법 적용을 받지 않아서다.
건강증진개발원이 서울 지역 무인 담배판매점 19곳을 조사한 결과 5곳이 교육환경 보호구역 내에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곳은 학교 출입문에서 직선거리로 50m 이내인 절대 보호구역, 4곳은 학교 경계로부터 직선으로 200m까지인 상대 보호구역에 있었다.
교육환경법에 따르면 교육환경 보호구역 내에선 담배자판기를 설치해선 안 된다. 다만 예외로 유치원, 대학교 상대 보호구역 내에선 설치할 수 있다. 즉 초중고 교육시설의 담장으로부터 직선거리 200m 이내는 교육상 위생이나 유해 업종의 제한과 규제를 할 수 있기에 전자담배 자판기 설치에 대한 최소한의 조치는 가능하게 된다.
정부도 계속 손 놓고 있던 문제는 아니었다. 지난해 11월 국회에 담배사업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아직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담배 정의를 연초의 뿌리나 줄기, 합성 니코틴으로 제조한 것까지 넓히려고 시도했지만 이달 30일 21대 국회가 종료되면 자동 폐기될 예정이다.
액상 전자담배 유해성 분석결과 발표를 앞둔 12일 오후 서울의 한 전자담배 매장에 전자담배 액상이 진열돼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날 국내 시판 중인 153개의 액상형 전자담배 내 7개의 성분 분석 작업을 마무리하고 최종 결과를 발표한다. 2019.12.12/뉴스1 ⓒ News1 성동훈 기자
◇ 전담 매장도 잦은 미성년자 방문에 골머리
<뉴스1>
취재에 따르면 전자담배를 판매하는 매장 10곳 중 7곳은 최근 직접 전자담배 구매를 시도한 미성년자를 내쫓은 경험이 있다고 했다. 편의점과 동네 구멍가게에서 청소년들이 신분을 속이고 술과 담배를 사려는 시도는 늘 있었다. 하지만 최근 우후죽순 생긴 전자담배 매장에서 과거와 비슷한 수법의 사례들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 인근의 한 전자담배 매장에 앳된 얼굴의 손님이 들어왔다. 점장 A 씨가 신분증을 요구하자 지갑을 여러 번 뒤지더니 신분증을 놓고 왔다며 난감해했다. A 씨가 판매를 거부하자 처음에 카드로 결제한다던 학생들은 곧장 바로 앞 매장에 들어갔다.
전자담배 판매 4년 차인 A 씨는 "혹시 몰라서 다가가 나이가 어떻게 되냐고 물었더니 한 명은 고1, 다른 한 명은 고2였다"고 말했다. 이후 A 씨는 신고를 위해 거기서 구매한 영수증을 보여달라고 했지만 이들은 부모님 계좌를 통해 이체했기 때문에 보여주기가 어렵다고 대답했다.
그는 "갓 스무살 된 아이들이 신분증을 자기 후배한테 3만~5만 원을 받고 파는 경우도 종종 봤다"며 "어차피 신분증은 재발급받으면 되니까 돈벌이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고개를 저었다.
서울 광진구 건대입구역 인근에서 매장을 운영한 지 두 달째인 B 씨는 벌써 미성년자를 적발한 건수가 10건 정도 된다고 털어놨다. B 씨는 "며칠 전 외국인 학생 부모님이 가게에 찾아와서 왜 아이한테 전자담배를 팔았냐고 따졌는데 당시 그 친구는 위조 여권으로 나이를 속였다"며 "05년생이 아니라 08년생이었는데 신분증이 가짜인 것은 아무리 열심히 봐도 알 수가 없는 문제"라고 고충을 털어놨다.
청소년보호법 제28조에 따르면 미성년자가 주류·담배를 구매할 경우 처벌 규정은 판매자에게만 해당하며 무인 판매 장치를 통한 미성년자 구매 역시 동일한 규제가 적용된다. 하지만 지자체도 담배 자판기 판매 금지 장소, 성인인증 기능 부착 등을 강제하는 것 외에 별다른 규제는 없는 실정이다.
youm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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