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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에서 먹는 라면, 맛있다”가 발단
지난 2일 해발 1700m 한라산 윗세오름대피소에서 용기라면에 온수를 넣고 있는 탐방객. 최충일 기자
“남기지 않으려 작은 라면으로 샀어요.”
2일 오전 11시 해발 1700m 한라산 윗세오름 대피소. 탐방객 20여명이 목재 데크에서 이른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공통점은 대부분 보온병을 가지고 왔다는 점이다. 뜨거운 물을 부어 먹는 용기라면을 먹기 위해서다. 일부는 김밥과 삶은 계란, 초코바 등도 함께 먹었다. 탐방객 방한웅44·경기도씨는 “아내, 11살 딸아이와 함께 3시간에 걸친 산행 후 라면을 맛보니 뿌듯하고, 더 꿀맛”이라며 “음식물을 남기지 않기 위해 작은 용기라면을 사 왔는데 딸아이까지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다 먹어줘 더 기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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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물 염분이 한라산 생태 파괴
지난 2일 오전 11시 해발 1700m 한라산 윗세오름대피소에서 용기라면과 김밥 등 점심밥을 먹고 있는 가족 탐방객. 최충일 기자
‘한라산에서 먹는 라면이 맛있다’는 입소문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증 때문에 ‘라면국물 처리’ 고민에 빠졌던 제주도가 한숨을 돌리게 됐다. 최근 탐방객이 라면 국물을 거의 남기지 않는 분위기가 감지돼서다. 라면 국물이 한라산에 버려지면 국물 속 염분 때문에 토양과 계곡 등이 오염돼 특산식물과 곤충이 절멸할 우려가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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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반물반’ 캠페인 지켜주세요”
지난 2일 오후 2시 해발 1700m 한라산 윗세오름대피소에 설치된 용기라면 음식물쓰레기 수거통이 거의 비어있다. 최충일 기자
제주도 한라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는 3일 “지난 2월까지 많으면 하루 100ℓ가 넘었던 라면국물 음식물쓰레기가 최근 들어 기존의 10% 수준인 하루 10ℓ 수준으로 크게 줄었다”고 밝혔다. 실제 이날 오후 2시 윗세오름의 60ℓ짜리 잔반 통에는 라면 국물이 바닥을 제외하곤 거의 없었다. 하성현 한라산 공원보호과장은 “겨울 산행 시기가 끝나 라면을 먹는 탐방 인원이 줄어든 점을 감안한다 해도 음식물쓰레기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며 “올 3월 29일부터 집중 홍보한 ‘스프반 물반’ 캠페인이 자리를 잡아가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캠페인은 라면 1개를 다 먹기가 부담스러운 이는 국물이 절반인 라면을 만들어 되도록 다 먹고, 국물과 기타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자는 취지다. 이날 윗세오름 대피소에선 현수막 등을 통해 캠페인을 접한 이들이 “물을 반만 넣어라”, “난 다 먹을 수 있다” 등 각각의 의견을 내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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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부터 한라산 ‘산밥’ 된 용기라면
지난 2일 오전 11시 해발 1700m 한라산 윗세오름대피소에서 용기라면과 김밥 등 점심밥을 먹고 있는 탐방객들. 최충일 기자
한라산 라면이 이른바 ‘산밥’이 된 것은 1990년 1월부터 윗세오름과 진달래밭 대피소, 어리목의 매점에서 라면을 판매했을 때부터다. 매점은 ‘한라산국립공원후생복지회’가 운영했다. 당시 복지회가 사들인 컵라면은 한 해 30만개에 달했다. 때문에 모노레일을 이용한 컵라면 수송 작전이 연출되기도 했다. 특히 겨울 등반 시즌 두 달 전부터는 눈이 오기 전 라면과 물을 끓일 연료 등을 매일 운반했다. 당시 윗세오름이나 진달래밭 대피소 앞에는 컵라면을 사고 온수를 받기 위해 수십미터씩 줄이 이어지는 일도 잦았다. 하지만 2018년 1월, 28년 만에 한라산국립공원후생복지회가 해산하며 이런 풍경도 사라졌다. 문화재청 승인을 받지 않고 28년간 매점을 운영해온 것이 문제가 돼 멈췄다. 본래 문화재청 소유 국유재산이던 윗세오름 대피소와 진달래밭 대피소는 붕괴와 조난사고 예방을 위해 개축된 후 2009년 3월과 2008년 5월 문화재청으로 각각 다시 기부채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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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물 줄이고, 쓰레기 잘 챙기는 분위기 다행”
지난 2일 해발 1700m 한라산 윗세오름대피소 실내에 걸린
매점이 사라졌지만, 한라산에서 먹는 라면의 인기는 현재진행형이다. 때문에 1700m 고지대에 남겨진 라면 국물 등 음식물 쓰레기 처리 문제가 꾸준히 불거졌다. 관리사무소는 2021년 8월 윗세오름 대피소 등에 등산객이 먹다 남긴 라면 국물을 모으는 60ℓ 용량의 잔반통을 비치하고, 친환경 음식물 처리기 2대도 설치했다. 제주도는 한라산에 라면국물을 몰래 버리다 적발되면 자연공원법상 과태료 20만원을 부과하고 있다. 김학수 한라산관리사무소장은 “최근 탐방객 사이에서 라면 국물을 줄이고, 다른 쓰레기도 잘 모아 챙겨가는 분위기가 감지돼 다행이라 생각한다”며 “아름다운 한라산을 지켜가기 위해 탐방객의 지속적인 관심이 요구된다”고 했다.
제주=최충일 기자 choi.choong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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