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의 벗겨진 채 발견된 여교사 시신…9년만 잡힌 용의자는 무죄[뉴스... > 사회기사 | society

2018년 12월21일. 9년간 미제로 남았던 살인 사건 용의자가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새롭게 발견된 정황 증거로 용의자를 추려냈지만, 재판에 넘겨진 용의자는 3년 만에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았다. /사진=제주경찰청

2018년 12월21일. 9년간 미제로 남았던 살인 사건 용의자가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새롭게 발견된 정황 증거로 용의자를 추려냈지만, 재판에 넘겨진 용의자는 3년 만에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았다.

법원은 왜 과학 수사까지 거쳐 잡은 용의자를 풀어줬을까. 경찰이 무고한 시민을 용의자로 착각한 것일까.

실종 8일만…주검으로 발견된 A씨

제주 어린이집 보육교사 A씨가 2009년 2월1일 실종된 이틀뒤인 2월 3일 경찰이 배포한 수배전단. /사진=뉴스1

숨진 피해자 A씨는 2009년 2월8일 오후 1시50분쯤 제주 애월읍 고내봉의 한 배수로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어린이집 보육교사였던 그는 8일 전 실종된 상태였다.


A씨는 실종 전날인 1월31일 오후 제주 대학로의 한 술집에서 친구와 이튿날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 이후 술집 근처에 자신의 차를 놓아둔 채 택시를 타고 제주 용담동에 있는 연인 남자친구의 집으로 향했다. 남자친구 집에 도착한 시각은 새벽 2시50분쯤.

A씨는 불과 10분 만인 새벽 3시 남자친구 집에서 나왔다. 남자친구가 몰래 흡연한 것을 들켜 말다툼이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3시3분 남자친구에게 네가 정말 이럴 줄 몰랐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남기고 콜택시를 불렀지만, 새벽이라 택시는 배차되지 않았다. 이후 한 시간이 흐른 새벽 4시4분쯤 A씨의 휴대전화는 애월읍 광령초등학교 인근에서 꺼졌다.

2월2일 월요일, A씨에 대한 실종신고가 접수됐다. 같은 날 오후 8시20분 옛 제주세무서 주차장에서 A씨의 차량이 발견됐으며, 실종 닷새째인 2월6일 오후 3시20분쯤에는 제주 아라동의 한 밭에서 A씨의 가방이 발견됐다. 가방에는 휴대전화와 주민등록증을 포함한 소지품이 그대로 들어있었다.

A씨의 사체가 발견된 건 그로부터 이틀이 더 흐른 2월8일이다. A씨는 실종 전날 입고 나간 점퍼만 걸치고 있었으며, 하의는 벗겨져 있었다. 부검 결과 사인은 경부압박에 의한 질식사였으며, 특별한 외상이나 타박상이 발견되지는 않았다.

사망 시점 놓고…경찰, 부검의와 혼선

장기 미제사건인 제주 보육교사 살인 사건 유력 용의자 B씨. /사진=뉴스1

경찰은 A씨가 남자친구 집에서 나온 직후 납치돼 피살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시신에 외상이 없는 점으로 미뤄 A씨가 콜택시를 배차받는 데 실패하고 지나가는 택시에 탔다가 살해당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경찰은 제주도 내 택시 기사 5000명을 용의선상에 올려 전수조사에 나섰다. 택시업체 운행일지와 이동경로, CCTV 26대를 시간대별로 분석해 용의자 B씨를 특정했다. B씨는 여러 차례 사건 당일 자신의 행적에 대한 진술을 번복했고, 거짓말 탐지기 조사에서는 거짓 반응까지 나왔다.

하지만 사망 시점이 걸림돌이 됐다. 경찰은 A씨가 2월1일 실종 당일 숨졌다고 판단한 것과 달리, 부검의는 시신이 거의 부패하지 않아 A씨가 사망한 지 24시간이 지나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 A씨가 2월7일 숨졌다면 경찰이 그간 수집한 모든 정황 증거가 무의미했다. 특히 B씨는 2월7일 확실한 알리바이를 갖고 있었다.

결국 수사를 중단한 경찰은 8년여 만인 2017년 다시 이 사건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프로파일러 8명과 합동 분석을 실시하고 2018년 1월 말부터 3월 초에 걸쳐 사망 시점 추정을 위한 동물 실험을 다섯 차례 실시했다. 개 사체 3구와 돼지 사체 4구를 이용해 사체 부패를 재현한 결과 A씨의 사망 시점을 실종 당일인 2월1일~4일 사이로 추정했다.

경찰은 또 미세증거 증폭 기술을 통해 시신에서 발견된 실오라기를 정밀 분석했고, 이것이 B씨가 사건 당일 입었던 옷과 유사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법원 "직접 증거 없다" 무죄 확정

장기 미제사건인 제주 보육교사 살인 사건 유력 용의자 B씨. /사진=뉴시스

하지만 법원은 2018년 6월 사망 시점과 미세 섬유 모두 정황 증거일 뿐, 직접 증거로 볼 수 없다며 B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후 재판에 넘겨진 B씨는 1심과 2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의 주장이나 변명이 일부 모순되거나 석연치 않은 점이 있고, 통화내역을 삭제하는 등 피고인이 범행을 저질렀다고 의심할 만한 정황이 있다"면서도 "하지만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입증이 되었다고 볼 수 없다"고 봤다.

정황증거였던 미세섬유에 대해서는 "수천, 수만벌씩 제작되는 기성복 특성상 제3자에 의해 섞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2심 재판부도 "수사기관은 피고인이 범인임을 전제로 사건을 추적한 것으로 보인다"며 B씨의 손을 들어줬다.

검찰은 이에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2021년 10월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B씨는 재판 후 "처음부터 억측으로 수사가 시작됐다"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전형주 기자 jhj@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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