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살 딸 실종 20일만 신고"…집에선 혈흔, 친부가 숨긴 비밀[뉴스속오늘] > 사회기사 | society

2017년 12월22일. 경찰은 한달 전 실종된 고준희5양의 친부 고씨의 집을 압수수색했다. 준희양에 대한 실종 신고가 접수된 지 보름이 지나도록 수색에 진전이 없자, 실종이 아닐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수사에 나선 것이다. 사진은 실종된 고준희양. /사진=뉴스1

"딸이 사라졌어요"

2017년 12월22일. 경찰은 한달 전 실종된 고준희5양의 친부 고씨의 집을 압수수색했다. 준희양에 대한 실종 신고가 접수된 지 보름이 지나도록 수색에 진전이 없자, 실종이 아닐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수사에 나선 것이다.

경찰은 고씨의 집에서 혈흔으로 추정되는 얼룩을 발견,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식을 의뢰했다. 감식 결과 혈흔으로 드러난 얼룩에서는 준희양의 유전자DNA가 확인됐다. 미궁에 빠졌던 실종 사건이 살인 사건으로 급물살을 타게 된 순간이다.


딸 실종 20일만 신고…"친부가 데려간 줄"

실종 신고 당시 전주 덕진경찰서가 준희양에 대한 신고 보상금 500만원을 내 걸은 전단. /사진=덕진경찰서 제공

준희양에 대한 실종 신고는 12월8일 접수됐다. 신고자는 고씨와 사실혼 관계였던 이씨로, 그는 "준희가 사라진 지 20일이나 지났다"고 했다. 함께 준희양을 돌봐온 이씨의 모친 A씨는 "애가 평소 밖에 자주 혼자 나갔다. 내가 잠시 외출하고 돌아오니 준희가 없었다. 별거 중인 사위고씨가 아이를 데려간 줄 알았다"고 밝혔다.

경찰은 신고 7일 만인 12월15일 이 사건을 공개수사로 전환하고 준희양에 대한 신고보상금 500만원을 걸었다. 아울러 경찰력 3000명을 동원해 수색에 나섰지만 준희양의 행방을 짐작할 만한 단서는 찾지 못했다.

외부에서 집으로 침입하거나 준희양이 밖으로 나간 흔적도 없었다. 심지어 준희양은 그해 5월부터 유치원·어린이집에 가지 않는 등 생활반응이 이상하리만치 없었다. 최근 몇달간 준희양을 본 이웃도 없어 수사는 난항에 빠졌다.

더구나 고씨와 이씨는 수사에 미온적이었다. 둘은 경찰이 제안한 거짓말 탐지기 조사, 최면 수사를 모두 거부했다. 이씨의 모친 A씨 역시 마찬가지다.

경찰은 딸의 실종에도 태연한 부부가 의심됐다. 특히 고씨와 이씨, A씨 모두 한달 전쯤 휴대전화를 교체한 것을 확인하고 준희양이 살해당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고씨와 이씨의 집을 각각 압수수색한 끝에 고씨의 집에서 준희양의 혈흔을 발견했다. 좁혀오는 수사망에 고씨는 실종 신고 20일 만인 12월28일 "지난 4월 준희 시신을 전북 군산의 한 야산에 유기했다"고 자백했다.

준희양 시신은 군산 내초동의 한 야산에서 수건에 쌓인 채 발견됐다. 준희양은 작은 인형을 꼭 끌어안고 있었으며, 갈비뼈 3개가 부러진 상태였다.

학대로 기어다닌 준희양, 싸늘한 주검으로

고준희양 사체 유기장소인 군산시 내초동 한 야산에 인근 주민이 가져온 간식이 놓여 있다. /사진=뉴스1

경찰에 따르면 준희양은 2017년 1월25일 친모와 헤어져 고씨에게 보내지면서 심각한 학대를 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준희양은 선천성갑상선기능저하증을 갖고 있었지만, 고씨는 이를 방치하고 약조차 먹이지 않았다. 5살 준희양은 자연스레 성장 발육도 또래보다 느렸고, 감염과 통증에도 둔감했다.

고씨와 이씨는 훈육을 핑계로 준희양에게 툭하면 발길질을 해댔다. 특히 준희양이 고씨 동거녀인 이씨의 아들과 다투는 날엔 더 가혹한 체벌이 이뤄졌다.

고씨의 지나친 학대로 준희양의 복숭아뼈에 고름이 차고 종아리, 허벅지가 검게 부어 오르기도 했지만 고씨와 이씨는 준희양을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다. 준희양은 이에 숨진 그날까지 혼자 걷거나 서지 못해 바닥을 기어 다녀야 했다.

고씨와 이씨의 학대는 계속됐다. 고씨는 4월24일 준희양이 잠을 자지 않는다는 이유로 폭행했다. 준희양은 결국 이틀 만인 26일 오전 갈비뼈 골절로 인한 호흡 곤란으로 숨을 거뒀다.

두 사람은 이튿날인 27일 A씨와 공모해 군산의 한 야산에 준희양을 암매장했다. A씨가 차에서 망을 보는 동안 고씨가 삽으로 땅을 팠다.

사실혼 관계였던 두 사람은 완전 범죄를 꿈꿨다. 준희양 몫의 양육수당을 신청하고, 준희양의 생일 전날인 7월21일에는 아직 준희양이 살아있는 것처럼 케이크를 사고 미역국을 끓이는 등 허위 실종 신고를 위한 준비를 차곡차곡 진행했다. 하지만 이들의 계획은 실행 한달 만에 실패로 끝났다.

고씨 부부 "때렸지만 살인은 아냐"

전북 전주시 전주지방법원에서 준희양 친부와 계모가 재판을 마치고 구치소로 호송되고 있다./사진=뉴스1

구속상태로 재판에 넘겨진 고씨와 이씨는 아동학대치사와 사체유기,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사회보장급여의 이용·제공 및 수급권자 발굴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1심에서 각각 징역 20년과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암매장을 도운 A씨에게도 징역 4년이 선고됐다.

항소심 결과도 같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해 아동은 초미숙아로 태어나 지속적인 치료를 받아야 했지만, 양육 책임이 있는 고씨는 피해 아동이 밥을 제대로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상습 폭행했다"며 "피해자에게 수포가 발생하고 걷지도 못하는데 심한 폭력을 행사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지적했다.

또 "피고인은 범행을 은폐하려 했고 양육수단까지 받아 생활비로 사용했다"며 "이후 경찰에 실종신고를 한 그 죄책이 무겁다"고 판시했다.

피의자들은 "준희양이 토사물을 흘리다 사망해 그대로 사체를 유기했을 뿐, 살해는 아니"라며 상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2019년 4월 이를 기각, 고씨에게 징역 20년, 이씨에게 징역 10년, A씨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전형주 기자 jhj@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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