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호수에서 붙잡힌 가물치./USFWS Fishery Facebook
여느 물고기의 눈알이 아닙니다. 독기가 가득하고 한이 잔뜩 서려있어요. 분노와 광기로 이글거리다가 눈밖으로 빠져나올 듯 합니다. 놈은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는 듯 합니다. 이 사진을 찍어 올린 곳은 미국 어류야생동물보호국. 이 물고기, 가물치는 미국 야생동물당국이 정한 박멸 1순위 외래종입니다. 그저 타고 난 본능대로 먹고 살며 하루하루를 연명했을텐데 아시아에서 건너와 토착 생태계를 파괴한다는 죄목으로 붙잡혀 살처분될 참입니다. 제 몸을 움켜쥔 인간의 손에 서린 살의殺意를 느꼈을 거예요. 그리하여 놈은 칼날의 이슬로 사라지기 전 눈알을 부릅뜨고 혓바닥을 놀리며 최후의 장광설을 쏟아내려는 참입니다. 인간의 언어로 해독해 이곳에 풀어넣습니다.
포획한 가물치를 정면에서 본 모습./USGS Photo
“음홧홧홧홧...키득키득...크히히...킬킬킬. 죽는 주제에 실성해서 웃느냐고? 아니다. 이 인간들아. 네놈들의 몸부림이 한심하고 가엾어서 웃는다. 다 알고 있다. 네놈들에게 나는 제거 1순위라는 걸. 거대 파충류 버마비단뱀과 함께 아시아에서 유입돼 미국 토종 생물들을 닥치는대로 먹어치우는 외래침입종invasive species로 점찍었다지. 어처구니가 없구나. 이놈들아. 네놈들의 역사를 한번 보거라. 네놈들은 외래침입종이 아니라더냐? 신대륙이니 탐험이니 하며 배 타고 바다건너 와서 원주민 땅을 빼앗고 살육을 일삼은 건 외래침입이 아니고 뭐란 말이냐. 아니 엄밀히 말해 그 원주민들도 3만년전에 아시아에서 건너간게 아니었더냐. 이 지구상에서 숨쉬고 살아가는 것 중에 외래침입종이 아닌게 대체 뭐냔 말이다. 입이 있으면 말을 해보거라.”
포획된 어린 가물치./Buck Albert. USGS Photo
“나는 알고 있다. 곧 네놈들이 나를 어떻게 할 거라는 걸. 가물치는 생태계를 파괴하는 물고기이기 때문에 잡으면 절대로 놓아주지 말라는 얼토당토않은 규정을 세워놓았지. 그리고 잡은 가물치는 이렇게 죽여야 한다는 매뉴얼까지 배포했더구나. 이제 매뉴얼에 따라 네놈들은 펜치로 내 아가미를 벌려서 아가미활아가미 안에 있는 작은 활 모양의 뼈를 마구 휘뒤집어놓을테지. 이래도 내 몸짓이 잦아들지 않는다면 쇠꼬챙이 부분이 최소 5㎝에 이르는 스크루드라이버나 송곳으로 내 정수리를 쿡 찌른 다음에 빙빙 돌려가며 살갗을 파고들겠지. 그럼에도 내가 여전히 움직이고 있다면 날카로운 도구로 내 머리를 통째로 숭덩 숭덩 잘라내겠지. 그럼에도 내 몸부림이 그치지 않는다면 아마도 내 배를 갈라 그 안의 것을 몽땅 꺼내어놓을테지. 네놈들이 구구절절 그림과 사진까지 곁들여 공문서로 파일로 배포하는 것까지 알고 있다.”
미국 메릴랜드 주정부가 배포한 가물치 살처분 매뉴얼.
“그렇게 내 한 몸 산송장 고깃덩이로 만들고 나서 네놈들은 아름다운 자연을 파괴하는 괴물을 처치했다며 희희낙낙하겠지. 이 한심한 놈들아. 그렇다고 우리가 사라질줄 아느냐. 우리가 이 땅을 개척한지도 어언 20년이 넘었다. 우리를 처음보고 네놈들은 기겁하더구나. 미시시피강과 오대호, 이곳에서부터 이어지는 곳곳에 우리족속을 보고 공포와 경악을 금치 못했지. 아시아에서 온 괴물 물고기라고. 식용으로 불법으로 들여와 강에 풀어준 게 화근이라고 분석에 여념이 없었어. 아시아에선 자양강장제와 원기회복의 명약으로 쓰일만큼 힘이 넘쳐나는 우리다. 아메리카 대륙의 물속은 우리에겐 황홀한 푸드코트였다. 독수리나 곰, 수달, 울버린 등이 우리의 피와 살에 맛들일까 걱정도 했지만, 처음 보는 낯선 물고기여서 그런지 얼씬도 않더군. 다 자라면 몸길이는 1m에 이르고, 몸무게는 10㎏에 육박하는 우리가 수중 최고 포식자로 등극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가물치는 알이 부화한 뒤에도 떠나지 않고 새끼들을 상당기간 돌본다./United States Fish and Wildlife Service
“네놈들은 우릴 토착생태계를 파괴하는 외래종으로 규정했지. 잡으면 온전히 돌려보내지 말고 살처분해야 한다는 의무조항까지 만들었단 말이다. 그만큼 우리에 대한 원한이 솟구친 건 알고 있다. 어리석도다. 정녕 우리 족속을 쫓아낼 수 있을 거라 믿는단 말이냐? 우리의 가공할만한 폭발적 번식능력을 알고도 그렇게 의기양양할 수 있단 말이냐? 우리의 평균 수명은 15년이지만, 1살이되면 바로 새끼를 칠 수 있단 말이다. 한 번에 알 1500개씩 한 해에 다섯번 산란할 수 있단 말이다. 암컷 한마리가 7500개의 알을 강과 호수 곳곳에 뿌려넣는단 말이다. 그 알들이 대개 다른 고기들 밥으로 소비될 거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우린 알만 싸지르고 번식했다는 사실조차 까먹고 휙 돌아서는 여느 생선대X리들과 다르다.”
사람 두 손에 붙들린 가물치./United States Fish and Wildlife Service
“우리에겐 모성 본능이 있단 말이다. 알에서 깨어난 1500마리의 꼬물거리는 아가들이 적어도 제 앞가림하는 청소년 물고기로 자라날때까지 근처를 떠나지 않고 맹렬하게 보호한단 말이다. 게다가 우리는 뭍에서 일정부분 호흡할 수 있는 생존 기능까지 장착하고 있어 말라붙은 저수지를 빠져나와 온몸을 꾸불텅대면서 기어가 다른 저수지로 이동하는 신묘막측 능력까지 갖추고 있단 말이다. 우월한 덩치와 넘치는 힘, 왕성한 먹성, 거기에 폭발적인 번식생산력에 어미의 보호본능까지 갖춘 완전체 가물치족을 그깟 하찮은 살처분 매뉴얼 따위로 통제하겠다고? 내 뱃속의 개구리 튀어나와 개굴개굴 박장대소하겠구나.”
가물치와 비슷하게 생겨 포획 수난을 겪고 있는 미국 토종 물고기 아미아./United States Fish and Wildlife Service
“네놈들의 주변을 돌아보거라. 외래침입종이라고 해서 박멸작전을 벌여서 씨를 말린게 있느냔 말이다. 바다 건너 한국 땅에서 배스·블루길·황소개구리가 과연 박멸에 성공했더냐. 이곳을 봐도 그렇도다. 플로리다에서 정착한 버마비단뱀을 없애겠다고 해마다 주지사 주최 사냥대회를 주최해도 씨가 말랐더냐? 뱃속을 갈라보니 악어와 사슴까지 통째로 삼킨걸로 조사됐다지 않느냐? 나는 네놈들이 우리를 퇴치하겠다고 팔을 걷어붙였다 저지른 어처구니없는 실수도 알고 있다. 생김새도 몸집도 꼭 비슷한 물고기 아미아보핀물고기를 나와 혼동하는 바람에, 애먼 아미아들이 몰살당하는 상황이 벌어졌다지. 게다가 아미아는 선사시대 이전부터 이 땅에 살아와 생태학적 가치가 높은 소중한 토착 물고기였다지. 이런 일이 곳곳에서 벌어지자 네놈들은 혼비백산해서 ‘가물치와 아미아를 구분하는 법’까지 알려야 하는 상황이 됐단 말이다. 음홧홧홧!!! 껄껄껄껄!!! 대체 이 무슨 메가톤급 삽질이냔 말이다.”
가물치위와 아미아아래의 생김새를 구분한 미국 뉴욕주 안내문.
“그러니 부질없는 노력은 그만 하거라. 시장에 내다팔려던 물고기가 강에 버려진 것도, 그래서 우리가 이 땅에 자리잡은 것도 모두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란 말이다. 그러니 우리를 받아들이고, ‘외래침입종’이라는 말을 떼어내란 말이다. 네놈들은 나를 ‘뱀대가리 물고기snakeheadfish’라 부를 정도로 경멸해 마지 않았다. 하지만, 떠나기 전에 내 예언을 하나 해주마. 나는 결국 네놈들의 일원으로 자리잡을 것이고, 언젠가 네 이름을 딴 ‘~스네이크헤즈’라는 이름의 프로스포츠팀도 등장해 NBA·MLB·NFL·NHL을 누빌 것이다. 내 비록 오늘은 네놈들 손에 죽지만, 우리 족속은 영생을 누릴지니!!!!!”
“퍽”가물치 머리에 송곳 꽂히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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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섭 기자 xanadu@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