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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간 인간만 출입 금지…그러자 벌어진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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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6회 작성일 24-11-0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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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년간 인간 발길 끊긴 DMZ에 매년 두루미 7000마리씩 찾아
아무도 없어 잠자리 안전하고, 농부들이 볏짚 덮고 알곡 남겨두며 공존
연구한 최명애 교수 "굉장한 우연 겹쳐, 두루미뿐 아니라 습지 생물종 함께 사는 생명의 공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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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없어 안전하게 잘 곳이 있고, 근처 논엔 농부들이 남겨둔 알곡이 충분히 있고. 두루미가 찾지 않았던 철원 DMZ 땅에, 전 세계 절반이 넘는 두루미가 찾아온단 것. 자연에 잘못 집어 넣은 발을 빼는 거다. 우리도 곧 숲이란 걸 깨달을 수 있다면./사진=뉴스1
"예전엔 강원도 철원에 두루미가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두루미 1500마리, 재두루미 5500마리가 옵니다. 전 세계 개체수의 절반이 넘어요. 도대체 뭐가, 철원을 두루미들이 오는 곳으로 만들었을까요?"

최명애 연세대 인류학과 교수의 물음이 흥미로웠다. 지난달 말 이화여대에서 열린 리와일딩 포럼생명다양성재단, 이야기와 동물과 시 주최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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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생명다양성재단과 이야기와 동물과 시가 주최해 열린 아시아 리와일딩 포럼에서 최명애 연세대 인류학과 교수가 발표하는 모습./사진=남형도 기자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인 두루미. 시베리아에서 여름을 보내고, 겨울을 나기 위해 주로 중국 남부와 일본으로 갔었다던 철새. 그 두루미가 철원으로 방향을 틀어, 여기서 겨울을 보내게 된 이유가 뭘지 궁금했다.



한국전쟁 격전지…숨이 다 끊긴듯했던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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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에 참전한 군인들./사진=뉴시스
철원은 땅 특성상 화산 분지. 굉장히 넓고 평평하지만, 물이 다 빠져버려 쌀농사가 어려웠단다. 철원 한탄강 물로는 논 서마지기밖에 못 짓는다는 말이 거기서 나왔다고. 농사론 쓸모가 많지 않아 오래도록 사냥터로 써왔다.


1920년대 일제 조선총독부가 산미증식계획일제가 조선을 식량 공급지로 삼으려던 계획을 세웠다. 이때 철원을 평야 지대로 만들기로 작정했다. 철원으로 간 이민자들이 4~5년간 각고의 노력 끝에 농토로 바꾸어냈다.

1950년 6월 25일. 그 뒤 철원 땅에도 한국전쟁이 벌어졌다. 철원-김화-평강으로 이어지는, 그 치열한 격전지였던 철의 삼각지대. 쉴 새 없이 퍼부어진 강도 높은 폭격에 완전히 폐허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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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 삼각지대에서 숨진 군인들을 추모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살아 있는 모든 게 소멸한 듯했던 땅. 거기에 휴전선이 길게 그어졌다. 남측과 북측이 2km씩 물러난 DMZ비무장지대가 형성됐다. 가로 248km에 걸쳐 이어졌다.



DMZ서 잠자고, 아침엔 논으로 출근하는 두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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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 땅을 찾아 먹이를 먹는 두루미들./사진=뉴스1
수십 년간 사람 발길이 강제로 끊기게 됐다. 자연이 자연답게 다시 숨을 고를 시간이 주어졌다.

잘 회복되었다. 가장 최근 연구 결과를 보면, 현재 DMZ의 80% 정도가 숲이 됐단다. 다시 숨을 잘 쉬게 됐다. 보통 한반도 산악 지역에서, 숲의 비율이 60% 이하인 걸 감안하면. 생물다양성 측면에서 봐도 약 5000종이 살고 있단다. 멸종위기종도 75종에 달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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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무쌍한 날씨에도 두루미들은 먹이활동을 위해 철원 한탄강을 날아 나간다. /사진=김경애 작가, 제6회 사랑·자유·평화의 땅 연천과 철원, 2019 두루미 사진작가 초대전 사진.
숲의 사이사이에 습지도 굉장히 많이 생겼다. 두루미들이 거기서 잠을 잔다고 했다. 최명애 교수가 말했다.

"두루미 입장에서는요. 여기 철원은 굉장히 안전한 잠자리죠. 아무도 찾아오지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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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애 연세대 인류학과 교수 연구팀의 카메라에 포착된 두루미들의 모습. 논에 물을 대면 야트막한 습지가 되고, 두루미들이 가장 좋아하는 자연이 된다./사진=최명애 교수 강의 자료 화면, 남형도 기자
두루미가 평온하게 잘 수 있는 습지. 그리 푹 자고 나오면, CCZ민간인 출입을 통제하는 구역에 있는 논으로 출근한다고 했다. CCZ의 논에, 두루미가 좋아하는 어떤 먹거리가 있을까.

"당시 한국전쟁 후 폐허가 된 CCZ에 대규모 정착 프로그램이 시작됐어요. 농경지를 개간하고, 마을을 만들고요. 지뢰밭에서 주민들이 팔다리를 잃어가며 다시 일군 땅이었지요. 이를 지원하기 위해 일찌감치 농기계가 도입됐는데요. 그러다 보니 사람 손으로 수확하는 것보다 알곡이 많이 남게 된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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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스1
사람이 하나하나 다 줍지 못한 알곡이, 두루미들의 좋은 먹이가 된 거였다. 그러니 두루미들에게 여긴 편안한 잠자리습지와 먹거리알곡가 다 있는, 매년 찾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 됐다.



두루미 먹으라고, 볏짚으로 알곡 덮어준 농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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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들을 위해 먹이를 주는 철원 농부들./사진=뉴스1
1만 헥타르가 넘는 논의 절반 이상이 민통선 안에 있고, 철원만의 독특한 생태계로 한겨울에도 얼지 않는 둠벙인 샘통이 들녘 곳곳에 널려있다. 또 한탄강, 역곡천, 대교천, 토교저수지 등은 다른 월동지에 견줘 더 안전한 먹이터와 잠자리 구실을 하고 있다. 여기에 민통선 주민들의 먹이주기와 볏짚 존치, 무논 조성 등 적극적인 보호 노력도 더해졌다.두루미의 땅, DMZ를 걷다, 2023년, 박경만, 사월의 책

공존. 15년간 DMZ를 취재한 박경만 작가의 책에도 나와 있듯, 철원의 농부들은 자연과 어우러져 사는 법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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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가 이리 많이 오게 된 건, 농부들이 두루미를 부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 덕분이기도 해요. 대표적인 게, 농사가 끝나고 나서 볏짚을 다시 썰어서 논을 덮어주는 거지요. 그럼 그 안에 두루미가 먹을 알곡이 잘 남아 있게 되는 겁니다."

철원에서의 수확은 9월. 두루미가 오는 건 10월. 그 사이 알곡이 잘 보존될 수 있도록, 볏짚으로 논을 이불처럼 덮어주었단 것. 이를 더 독려하기 위해, 강원도 철원군에선, 추수가 끝난 논에 볏짚을 남기면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까지 마련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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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들의 쉼터, 철원 한탄강. /사진=김혜숙 작가, 제6회 사랑·자유·평화의 땅 연천과 철원, 2019 두루미 사진작가 초대전 사진.
두루미가 좋아하는 잠자리 조성에도 농부들은 힘을 보탰다. 농사가 끝난 뒤, 논에다가 물을 다시 담가주면 두루미가 가장 좋아하는 30cm 정도 얕은 습지가 생긴다고. 이 야트막한 습지에서, 두루미가 한 다리를 들고 잠도 자고 먹이도 먹고 쉬기도 한단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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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인용한 박경만 작가의 저서 두루미의 땅, DMZ를 걷다엔 당시 주민들의 의견이 오갔던 과정이 기록돼 있기도 했다. 초기엔 두루미가 오는 걸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주민들도 있었단다. 군사시설보호법에 묶여 불편한 게 많은데, 철새보호구역까지 되면 농사를 못 지을까 우려한 거였다. 새를 내쫓자는 말까지 나오자 이 마을 농부 겸 생태운동가인 백종한씨가 나서며 이리 말했단다.

"반대하더라도 새는 해치지 말자. 철원평야에서 우리가 농사를 지으니까 난곡을 주워 먹겠다고 찾아온 것 아니냐. 새가 무슨 죄가 있냐. 새들이 살 수 없는 땅이면 사람도 살 수가 없다."



우렁이 등 다양한 종 숨 쉬는 귀한 생태계…"DMZ는 이미 인류에게 속한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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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의 농부들이 보여줬다던 우렁이 모습. 두루미 뿐 아니라, 생태 다양성의 보고가 됐다./사진=최명애 교수 자료, 남형도 기자
선이 그어지고 70년간 인간의 출입이 금해진 곳. 그러느라 자연이 자연답게 존재했을 때. 비단 두루미만 철원을 찾아오게 된 게 아니라 했다. 최명애 교수가 말했다.

"농부들의 활동이 새뿐만 아니라 논의 생태계를 어느 정도 활성화하는 효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논에 물을 대면, 논바닥에서 죽은 것처럼 있던 우렁이들이 되살아나 어정거리고요. 볏짚으로 논을 덮으면 그 아래 벌레들이 생기고, 그걸 먹으려고 자그마한 동물이 오고, 이를 먹으러 새들이 오고, 새를 잡으려 다른 동물들이 오게 되지요."

논이 이처럼 다양한 생물종이 숨 쉬는 습지 생태계가 됐단 거였다. 최명애 교수 연구팀이 토양 생태학자와 함께 철원의 토질을 살펴봤더니, 실제 두루미가 오는 논이 오지 않는 논에 비해 미생물의 종류가 훨씬 많은 게 확인됐다. 5개월간 두루미가 땅을 발로 밟고, 변을 보고, 그게 유기농 질소 비료 역할까지 하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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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자연답게, 자연스럽게 두었을 때 복원되는 생태계./사진=최명애 교수 자료, 남형도 기자
그로 인해 여기의 논은 쌀 공장을 넘어서는 귀한 의미를 품게 됐다. 철원의 한 농부가 이리 말했단다.

"철원은 이모작이 안 돼요. 너무 추워서 겨울철 내내 논을 버려두는데요. 3월부터 9월까진 농부들이 이용하고,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진 두루미가 이용하면 되지 않겠어요. 시간차를 두고 나눠서 두루미와 함께 쓰는 거지요. "

우연한 계기로 자연에게 돌려준 땅. 존중하며 함께 존재할 수 있게 된 땅. 최재천 생태학자가 그런 DMZ를 두고 했던 말이 인상 깊었다.

"만약에 탄자니아가 세렝게티 국립공원에 아파트 단지를 만들겠다 하면, 전 세계 사람들이 들고 일어날 겁니다. 세렝게티는 더 이상 탄자니아 땅이 아닙니다. 전 세계 인류가 공유하는 생물다양성의 보고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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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DMZ도 온대지방에서 가장 중요한 생물다양성의 보고가 됐습니다. 언젠가 우리가 통일이 됐을 때, 저 땅을 지켜내지 못하면 세계로부터 지탄받을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 땅은 이미 우리나라 땅이 아닙니다. 인류에 속한 땅이고요. 우린 어떻게든 이 땅을 지켜낼 의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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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무장지대DMZ에서 확인된 멸종위기종들. 왼쪽 상단부터 시계 방향순으로 두루미, 버들치, 분홍장구채, 사향노루./사진=환경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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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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