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 논란 교과서 문명고 학생들 "이해 안 돼" "창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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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산시 문명고등학교 정문에서 1일 학생들이 등교하고 있다. 문명고는 ‘친일 논란’이 일고 있는 한국학력평가원이 펴낸 교과서를 전국 일반계고 중 유일하게 채택했다. 김현수 기자
“이해가 안 되죠. 전국에 있는 모든 학교가 채택하지 않은 교과서를 우리 학교만 선정했다는 거잖아요.”
1일 오전 경북 경산시 문명고등학교 앞에서 만난 이 학교 학생 김모군18이 ‘친일 논란’이 일고 있는 교과서 채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문명고는 전국 일반계고 중 유일하게 한국학력평가원이 펴낸 교과서를 채택했다. 이 교과서는 친일 인사를 두둔하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축소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이승만 정권에 대해 ‘독재’ 대신 ‘집권연장’으로 표현하는 등 독재 정권을 옹호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제주 4·3사건과 여수·순천 10·19사건 희생자에 대해서는 ‘반란군’으로 서술해 문제 제기를 받자 반란군 표현을 삭제하기도 했다.
김군은 “아직 역사를 배우는 학생이다 보니 잘은 모른다”면서도 “당시 상황이 어떻든 간에 독재는 정당화될 수도 없고 위안부도 일본에 의한 성착취 사건이 분명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조국혁신당 의원들과 민족문제연구소 등 시민단체가 지난 9월11일 국회 소통관에서 한국학력평가원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검정 취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준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제공
또 다른 학생 이모군18도 “친구들과 교과서 채택과 관련된 뉴스를 공유하며 대화를 나눴다”며 “뉴스를 통해예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는데 솔직히 좀 창피하다”고 말했다.
문명고는 2017년 박근혜 정부 당시 전국에서 유일하게 국정 역사교과서 연구학교로 지정돼 논란이 됐다. 이후 해당 교과서를 신청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재학생과 학부모 180여명이 학교 운동장에 모여 철회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당시 학교 측은 자율학습을 하겠다며 학생들에게 등교하지 말 것을 통보했으나 학생들은 등교해 여러 번 집회를 이어갔다.
2017년 문명고에서 근무했던 교사 A씨는 “당시 학생들은 ‘학교의 주인은 재단이 아닌 학생’이라고 외쳤다”며 “재단은 7년 만에 같은 일을 되풀이하고 있다. 부끄러운 일이다”고 했다.
문명고 학부모 이모씨50도 “편향적인 역사를 아이들에게 가르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아직 이런 사실을 모르는 학부모들이 많다. 학부모들과 논의해 대책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경북 경산 문명고에서 2017년 2월27일 학생과 학부모가 국정 역사교과서 철회를 요구하며 집회를 열고 있다. 백경열 기자
문명고가 한국학력평가원 교과서를 채택하는 과정에서 절차를 무시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르면 교과서 채택 등을 위한 학교운영위원회 회의 소집은 개최 전 학교 홈페이지 등을 통해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학교 구성원인 학생·학부모·교직원의 회의 참관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권정훈 경북교육연대 대변인은 “문명고 홈페이지와 가정통신문 등 어디에도 학교운영위원회 회의 개최를 공개한 사실이 확인되지 않는다”며 “학교 구성원의 의견 제기 기회를 박탈했다”고 말했다.
공무원노조 경북교육청지부와 전교조 경북지부 등이 포함된 경북교육연대는 이날 성명을 내고 “친일독재 미화 교육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학계 전문가와 교과서 집필 경험이 있는 역사 교사들은 한국학력평가원의 교과서가 친일·독재를 미화하고 사실관계에도 오류가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며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문명고를 제외하고 이 교과서를 채택하지 않았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경북교육청은 민주적 절차를 지키지 않고 교과서를 채택한 문명고에 대한 지도에 나서야 한다”며 “문명고는 정상적인 학교운영위원회를 개최하고 한국사 교과서를 다시 선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까지 한국학력평가원 교과서를 채택한 전국 고등학교는 2곳이다. 나머지 한 곳은 경기 양주시 소재 대안학교다. 이 학교는 학교운영위원회를 열지 않고 한국학력평가원 교과서를 채택해 논란이 되자 교과서 선정 절차를 다시 진행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현수 기자 khs@kyunghyang.com,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
김현수 기자 khs@kyunghyang.com,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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