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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에 끼여, 심장마비로 떠난 동포…이주민들은 묵묵히 장례비를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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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5회 작성일 25-02-04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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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이주민들이 이슬람 성원에 마련된 발인예식장에서 주검을 관에 담은 뒤 기도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커뮤니티 포럼 페이스북 갈무리

“단 한번에 시험을 통과해 한국에 왔습니다. 저는 이제 경기도에 있는 플라스틱 공장에서 일합니다. 기쁘고 자랑스럽습니다.”

지난해 4월23일 한국에 온 압둘 나스루딘은 다음날 인도네시아 한국어학원 홍보 영상에 등장해 환하게 웃었다. 그는 샛노란 얇은 점퍼를 입고 “모든 일이 잘 풀리고 있다”며 “가족을 위해 일하겠다”고 했다. 비전문취업E-9 비자를 받은 압둘이 한국 취업 과정을 설명하는 이 영상은 틱톡에서 조회수 25만회를 넘겼다. 또 다른 영상에는 “정말 멋진 열정이다”, “저도 당신처럼 되고 싶다” 같은 댓글이 달렸다. 압둘은 ‘코리안 드림’의 상징이었다.

꿈은 산산이 깨졌다. 한국에 온 지 169일 만이었다. 압둘은 지난해 10월9일 남양주시 진건읍에 있는 한 플라스틱 공장에서 사출성형기를 점검하다가 끼임 사고를 당했다. 배와 다리 등이 기계에 끼인 그를 동료가 발견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당국이 압둘을 구조했다. 외관상 출혈은 없었지만 의식은 이미 희미했다. 압둘은 급하게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장기 출혈로 끝내 숨졌다. 그의 나이 29살이었다.

다음날 인도네시아인들이 모이는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 압둘의 부고가 올라왔다. 압둘의 동포들은 익숙한 듯 모금을 시작했다. 공장에서 다섯달 남짓 일한 그가 장례비와 주검 운반비 등을 회사에서 지원받을 가능성은 극히 적었다. 한국에서 사망한 이의 주검을 보전해 고국으로 보내려면 많게는 1천만원까지 든다. 압둘이 모아둔 돈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다. 압둘의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인도네시아 공동체가 운영하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에는 압둘과 같은 죽음 소식과 모금 요청이 매달 수차례 올라온다. 각종 공고보다 부고가 더 많을 때도 있다. 심장마비·열사병 등 돌연사에 가까운 죽음과 끼임 사고 등 산업재해가 대부분이다. 대개 한국에 일하러 왔던 이들 망자의 이름 뒤에는 각자의 출신지, 사인과 함께 25, 29, 31, 40 같은 숫자들이 적혀 있다. 이어지는 죽음의 행렬에 따라붙기에는 어린 나이다.

이주민들은 부고가 올라올 때마다 장례비를 모은다. 경기 안산과 인천 지역에서 주로 활동하는 인도네시아 출신 이주여성 정투르티50씨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장례를 치르기 어렵다”고 했다. 정씨는 약 20년 전 한국인 남편을 만나 한국에 왔다. 남편은 먼저 세상을 떠났지만, 정씨는 두번째 고향이 된 한국에서 인도네시아 동포를 돕는다. 그는 “한국에서 장례를 치르고 시신을 옮기는 비용이 너무 비싸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감당할 수 없다”며 “모두 힘을 모아 장례를 치르는 게 일상이 됐다”고 했다.

무슬림이 많은 인도네시아인들은 대개 사망 뒤 서울과 부산 등 각 지역 이슬람 성원으로 옮겨져 장례 예배 등을 치른다. 이후 방부 절차를 거친 주검은 항공 화물배송을 통해 인도네시아로 돌아간다. 보통 1주일 이상 걸리는 과정이다. 압둘의 주검 역시 이 과정을 거쳐 사망 뒤 9일이 지나서야 인천국제공항에서 출발해 자카르타 인근의 수카르노 하타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인도네시아에 도착한 주검은 다시 차에 실려 약 140㎞ 떨어진 고향 수카부미로 돌아갔다.

인도네시아 출신 압둘 나스루딘이 지난해 4월29일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중소기업중앙회 개발원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 온 압둘은 이곳에서 사업주를 만나 남양주시의 플라스틱 공장으로 갔다. 본인 페이스북 갈무리

가족의 주검을 기다려야 하는 이들을 생각하면 일주일은 긴 시간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마저도 ‘운이 좋아야’ 가능한 일이다. 치료를 받느라 병원비가 많이 쌓인 경우라면 이를 해결하기가 만만치 않다. 미등록 상태였을 때는 일이 더 복잡해진다. 정씨는 “산재보험 등을 통해 보상을 받는다고 해도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혹시라도 모금이 잘 안되면 병원비와 장례비를 내기가 어렵다”며 “대사관이 나서서라도 여러 공동체에 모금 관련 소식을 알리는 것 정도가 전부”라고 했다.

그런데도 정씨는 “인도네시아는 상황이 나은 편”이라고 했다. 인도네시아는 비교적 한국 내 공동체 활동이 활발했고 종교기관과 협력해 장례를 진행하지만, 이마저도 어려운 나라가 많기 때문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공개한 ‘이주노동자 사망에 대한 원인 분석 및 지원 체계 구축을 위한 연구’김승섭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연구팀는 “교민회와 대사관의 역할 분담이 되어 있지 않다면, 이주노동자들의 주검 및 유해 송환은 매우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지적한다.

압둘의 장례가 끝난 뒤에도 인도네시아 공동체는 몇차례 더 모금을 진행했다. 뇌출혈, 식중독, 산업재해…. 사람들은 낯선 땅에서 죽어간 동포를 위해 십시일반 돈을 모았다. 또 다른 망자가 인도네시아로 돌아가 장례를 치렀다. 남은 이들은 애도할 틈도 없이 또다시 이어지는 죽음을 ‘처리’했다. 정씨가 말했다. “인도네시아 사람들 한국에서 대부분 위험하고 힘든 일 하잖아요. 이렇게라도 계속 도울 수밖에요.”

‘암장, 이주노동자의 감춰진 죽음’을 이어가며

12·3 내란 사태로 사람들 눈길이 저 높은 권력의 정점 ‘대통령’에 머문 지난 두 달, 이주노동자인 그들은 그저 여느 때처럼 컨베이어벨트 앞에서, 돼지우리 안에서, 건설 현장에서 일했다.

그러다 더러는 목숨을 잃었다. 지난달 25일 강원도 원주의 한 석재 공장에서 22살 우즈베키스탄 국적 노동자가 돌무더기를 옮기는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졌다. 혼자 작업했다. 사고 당시 목격자는 없었다.

더러는 목숨을 잃은 사실조차 기록되지 못했다. 한겨레는 내란 사태 하루 전 ‘사망 이주노동자 94%가 기록조차 없이 암장’ 기사를 보도했다. 2022년 한국에서 죽은 이주노동자 3340명 중 기초적 사망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죽음은 최대 214명6.4%에 그친다는 내용이었다. ‘미등록 노동자’로 돼지농장에서 일하다가 죽어 야산에 버려진 타이 사람 분추프라바세눙, 건설 현장에서 급성 심장사로 ‘돌연사’한 뒤 생전 노동 기록이 삭제된 베트남 사람 즈엉반응웬은, 그토록 많은 이주노동자 죽음이 감춰진 경로와 배경을 짐작게 했다.

한겨레는 첫 보도 직후 내란 사태로 멈췄던 ‘암장, 이주노동자의 감춰진 죽음’ 기획 보도를 두 달 만에 이어간다. 이주노동자의 감춰진 죽음과 그 이후를 추적하는 작업이다. 내란 사태 뒤 우리가 요구하게 된 ‘모두를 위한 민주주의’에는, 시선을 낮춰 그 존재조차 흐릿한 죽음을 목도하는 일 또한 포함된다. 2022년 통계를 단순 적용하면, 내란 사태 이후 60여일 동안에도 이주노동자 580여명이 숨지고 알려진 죽음은 극히 일부일 것으로 추정된다.

기록되지 않은 이주노동자 죽음의 규모와 원인을 전한 첫 기사에 이어, 두번째 기사는 죽음 이후 ‘장례 과정’을 짚는다. 매장과 화장, 장례식, 사망 신고, 각종 보험·카드·휴대전화 해지, 유품 정리, 유산 상속 등은 어느 문화권에서나 죽은 이를 기리기 위한 기본적인 절차다. 다만 이주노동자의 유족은 ‘죽음을 정리’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 원거리 이동, 번번이 실패하는 소통, 비합리적인 행정절차, 그 틈을 비집은 속임수와 장삿속, 다툼과 불화를 견뎌야 했다.

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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