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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살 사과나무, 막걸리 건넨 뒤 베어내는 심정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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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54회 작성일 24-10-31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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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이연수 작가

함민복 시인의 시 ‘사과를 먹으며’는 사과에 담긴 생명의 에너지와 신비를 읊는다.

사과를 먹는 것은 햇살을, 장맛비를, 소슬바람과 눈송이를, 벌레의 기억과 새소리를, 가꾼 사람의 땀방울과 식물학자의 지식을 먹는 것과 같다고 시인은 말한다. 뿌리를, 씨앗을, 흙을, 사과나무를 붙잡고 있는 지구 중력을 먹고 급기야 “사과가 나를 먹는다.” 그저 사과 한 알일 뿐이지만 그 안엔 사과가 견딘 시간과 시련이, 농부의 보살핌이, 오묘한 자연의 순환이 담겼다. 그러나 사과라는 ‘우주’가 사람의 입으로 들어오기까지 과정은 그리 간단치 않다.

지난 11일 경북 문경시 단산 아래 사과밭에서 만난 임성무씨가 곧 베어내야 할 상황에 놓인 ‘마흔살 사과나무’ 앞에서 기후변화에 따른 사과농사의 어려움을 설명하고 있다.

■ 내 어린 시절 심긴 나무들 역대 최악의 여름, ‘시한부 선고’를 받게 된 어느 마흔살 사과나무들의 이야기가 그렇다. 지난 11일 경북 문경시 단산 기슭 2천여평 사과밭에서 만난 농부 임성무50·전국사과생산자협회 홍보기획위원씨는 “마음이 서글프다”고 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수만개의 사과를 맺었지만 “이제 더는 상품성 있는 사과를 키워내지 못하는 나무들”을 베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와 직접 구덩이에 심기는 걸 봤던 나무들이다.

그가 없애기로 한 사과 대목臺木·사과나무의 뿌리 부분들은 사람 몸통만큼이나 굵고 단단해 보였다. 거칠고 두꺼운 껍질과 비스듬히 받친 지지대에서 40년의 세월이 드러났다. 곧 수확이지만, 이들이 매단 사과는 절반이 푸르렀다. 바닥에 수두룩 열매를 떨군 나무도 있었다.

임성무씨의 밭에서도 나무에 매달린 채 강한 햇볕에 덴 사과가 여럿 보였다.

“40년 세월 수고했잖아요. 막걸리 한잔 부어주고 보내려고요. 어쩔 수 없이 베어내지만, 마음이 참 그렇죠.”

사과나무가 사과를 맺으려면 사과꽃이 봄철 꽃샘추위에 살아남아야 한다. 기습폭우에 뿌리가 버텨야 하고 폭염과 열대야도 견뎌야 한다. 잎이 낮 동안 충분히 광합성을 해도 밤이 충분히 시원하지 않으면 열매가 탐스럽고 붉게 자라지 못한다. 또 적기에 열매를 떨궈야 가으내 생존할 힘을 비축해 겨울잠에 들 수 있다.

하지만 지난여름은 최악의 한 철이었다. 월평균 기온, 열대야 일수, 기습 강수량 모두 역대 최고치였다. 특히 평년보다 3배 늘어난 열대야최저기온 25도 이상인 날는 사과나무가 낮에 비축한 영양분을 밤에 열매로 보내는 작용을 방해했다. 나무는 “살아남으려” 열매를 키우지 않고 호흡만 했다.

■ 사과가 매달린 채 썩었다 아버지가 운영하던 사과밭을 이어받은 지 15년, 임씨도 최근 3년 사이 극심한 기후변화를 체감했다. 나무 아래 제초 작업은 기계가 아닌 사람이 해야 하는데, 과거와 달리 올여름엔 “이러다간 사람도 죽겠다” 싶었다. “작년에 사과 한 알에 만원 하고 그랬잖아요. 그게 봄에 널뛰는 날씨에 일찍 개화한 꽃들이 꽃샘추위로 얼어 죽어서 그래요. 상품성 있는 사과가 너무 없었어요.”

임성무씨는 사과 착색 스트레스를 덜기 위해 지난 3년 전부터 노란 사과 품종인 ‘시나노 골드’를 재배하고 있다.

사과의 상품성은 알의 적당한 크기와 착색 정도에 따라 정해지는데, 폭염·폭우에 시달린 나무가 사과를 제대로 키워내지 못한 것이다. 올해는 긴 여름 탓에 사과가 붉게 착색되지 않는 문제도 벌어졌다. 임씨는 “밤 기온이 15~20도로 떨어져야 사과가 제대로 성장하는데 열대야가 길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임씨는 올봄 사과꽃이 동해추위 피해를 입지 않도록 열풍기를 설치하고 붉은 사과를 잘 맺도록 잎도 솎고 햇볕에 맞춰 돌려가며 정성스레 키웠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색이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사과 옆엔 너무 강한 햇볕에 덴일소증상 사과도 눈에 띄었다. 이런 사과는 매달린 채 썩는다.

임씨는 이렇게 “색 내는 스트레스”를 덜기 위해 3년 전부터 노란 사과 품종인 ‘시나노 골드’를 심었다. 물론 문경 특산품인 ‘감홍’을 주로 재배하지만, 시나노 골드를 점점 더 늘릴 계획이다. “문경 지역 한 선배농부는 내년에 시나노 골드 5천주그루 심는다고 해요. 5천주면 어마어마한 거거든.” 기후변화가 사과의 색도 바꾼다.

■ 인간과 사과는 둘이 아니다 농촌진흥청은 지난 2022년 노란 사과 품종인 ‘골든볼’을 개발해 농가에 보급하기 시작했다. 고온을 견디고, 착색이 필요 없는 일명 ‘기후변화 대응 품종’이다. 이동혁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사과연구센터장은 “기후변화로 점차 착색이 어려워지는 점을 고려해 15년 전부터 개발해온 품종”이라며 “올해는 대구광역시 군위군과 전문생산단지를 조성해 재배면적을 300헥타르까지 늘릴 계획”이라고 했다. 농촌진흥청이 2022년 공개한 ‘사과 재배지 변동 예측지도’를 보면 전통적인 사과 주산지 대구·경북에선 2050년대가 되면 사과 농사가 불가능해진다. 이에 다양한 품종 개발로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노력을 하는 것이다.

농촌진흥청이 2022년 공개한 ‘사과 재배지 변동 예측지도’를 보면 전통적인 사과 주산지 대구·경북에선 2050년대가 되면 사과 농사가 불가능해진다. 농촌진흥청 제공

다시 시 ‘사과를 먹으며’를 되새겨 본다. “흙으로 빚어진 사과를 먹는다/ 흙에서 멀리 도망쳐 보려다/ 흙으로 돌아가고 마는/ 사과를 먹는다/ 사과가 나를 먹는다.” 지구흙와 사과는 도망치려다 돌아가는 하나이고, 사과를 먹는 인간과 사과도 결국 둘이 아니다. 마흔 사과나무의 죽음과 노란 사과의 탄생도 결국 사과만의 일이 아닌, 인간과 지구의 일이다. 사과라는 ‘우주’가 사람의 입으로 들어오기까지 과정은 그리 간단치 않다.

문경/글·사진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전지적 기후변화 시점’은 기후변화를 우선에 두고 우리 일상 속 변화와 피해 사례들을 기록하기 위한 시도입니다. 역대급 열대야, 태풍·홍수 피해, 식품가격 폭등 등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는 크고 작은 기후변화 피해를 겪고 있습니다. 기상, 환경, 에너지, 동식물, 과학 분야 등을 취재하는 기자들이 함께 일상 속 기후변화 사례를 속속들이 파헤치려 합니다. 의식주부터 직업, 취미 생활까지 우리 삶의 모든 범위를 주제로 다루겠습니다. 독자분들이 경험한 숨겨진 기후변화 사례 제보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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