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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군에서 죽은 내 아들…엄마는 22년 만에 국가에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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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수집기 작성일 24-03-06 04:31 조회 5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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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기사
2002년 의문사 살해 후 자살 결론
선임 가혹행위·부실수사 추가 확인
법원 "국가가 정신적 손해 배상해야"


[단독] 군에서 죽은 내 아들…엄마는 22년 만에 국가에 이겼다


"탕! 탕!"

2002년 7월 3일. 제2연평해전 발발 나흘 뒤. 이날 낮 강원 강릉시 인적 드문 바닷가의 해안 초소에서 별안간 수 발의 총성이 울렸다. 입대 6개월 차 박모 일병이 선임인 최모 상병과 2인 1조로 경계근무를 서던 곳이었다.

다음 근무조가 초소로 들어서자 참상이 드러났다. 최 상병은 왼쪽 손목, 왼쪽 옆구리, 오른쪽 겨드랑이에 총을 맞았고, 박 일병은 머리에 총상을 입은 채 쓰러져 있었다. 둘 다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조사를 맡은 헌병대는 5개월 뒤 선임병 살해 후 자살이라고 간단히 결론 내렸다. 사고 전날 질책을 당한 박 일병이 근무 중 최 상병과 다투다가 K2소총으로 공포탄 3발, 실탄 3발을 쏘았고, 처벌이 두려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이다. 육군 전공사망심사위원회 판단도 같았다.

부실수사 정황 수두룩

한순간에 자식을 잃은 박 일병 가족은 조사 결과를 납득하지 못했다. 석연치 않은 점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사고 현장의 시신과 총기 위치에 대한 기록은 △소방관 △대대장 △군 수사당국의 것이 제각각이었다. 최소 7발을 쐈다는 조사 결과와 달리 발견된 탄피는 3개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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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과 의자 등에서 채취된 혈흔은 사건 발생 3개월이 지나고서야 감정이 이뤄졌는데, 이미 부패한 상태였다. 사고 발생 한 달 만에 초소가 철거되는 바람에 최 상병의 혈흔은 남아있지 않았다. 여름이라 장갑을 끼지 않은 상태였지만, 총기 어디에서도 지문이 검출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육군본부는 2005년 3월 다시 살해 후 자해사망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3년간 검토한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도 2009년 10월 진정 기각 결정을 하고 3개월 뒤 재차 자료 부족에 따른 진상규명 불능이라고 통보했다. 그동안 가해자로 지목된 박 일병은 국군병원 냉동고에 잠들어 있었다.

16년 만에 순직 인정

유족들은 박 일병이 아무 이유도 없이 이런 사고를 쳤다는 결론을 수긍하지 않았다. 실체가 드러난 건 2018년부터. 국방부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 재심사에서 사고 이면에 △최 상병의 가혹행위 △부대#x2219;신상관리 소홀 등이 있었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박 일병의 사망 원인은 자살에서 순직으로 변경됐다.

유족은 마침 출범한 대통령 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진상위에 군 수사절차의 문제를 지적하는 한편, "아들박 일병은 최 상병을 죽이지 않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 역시 사실이 아니다"라고 진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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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위는 3년을 조사했다. 함께 사망한 최 상병은 이전 부대에서 후임병 8명을 상습 폭행해 2002년 3월 전출된 것으로 드러났다. 영창 15일 징계가 확정됐지만 부대 인원 부족을 이유로 7월 말 해안초소 철수 이후로 집행이 미뤄졌다.

이런 상황에서 최 상병은 박 일병을 포함한 11명의 후임병을 또다시 폭행하고 얼차려를 시키며 "자살하게 해주겠다"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사고 전날엔 박 일병에게 세 차례에 걸쳐 욕설하며 발길질한 것으로 조사됐다. "두고 보자"던 최 상병은 이튿날 오전 사고 발생 초소 근무를 자원하며 야간 근무를 마치고 자던 박 일병을 부사수로 지목했다. 동료 병사들은 "근무에 투입된 박 일병이 안절부절못하며 떨던 모습을 기억한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정부 항소로 싸움은 다시 시작

진상위는 박 일병의 자살 원인으로 선임병의 가혹행위와 병력 관리 소홀을 지목했다. 허위문서 작성 등 군 수사당국의 사망원인 은폐#x2219;조작도 지적했다.

그렇게 이어진 국가배상 소송. 서울중앙지법 민사29단독 김병휘 판사는 지난달 7일 소송을 낸 박일병 모친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헌병대는 병역의무 이행을 위해 자녀를 군대에 보낸 보호자에게 실체적 진실을 규명해야 할 의무가 일반 수사기관보다 더 높음에도, 수사상 필요한 조치를 충분히 다하지 못했다"며 "원고가 입은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질타했다.

살아 있었다면 40대 든든한 가장이 되어있었을 아들. 엄마는 그 아들 전역날이 20년이나 더 지난 시점에서 국가의 책임이 있다는 한마디를 겨우 받아냈다.

그러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정부는 판결에 불복해, 지난달 22일 항소했다.

최다원 기자 da1@hankookilbo.com
박준규 기자 ssangkka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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