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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나라 망신…체육회 퇴근 전 30분은 정리시간 임금 빼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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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51회 작성일 24-08-30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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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지난 5월 31일 오전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제31차 대한체육회 이사회에 참석해 자리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프랑스 파리 중심가에 위치한 유럽식 건물 ‘메종 드 라시미’. 실내로 들어서면 ‘코리아하우스’ 현수막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최근 열린 파리올림픽 방문객들에게 한국 문화를 알리고 국내 선수들을 응원하는 거점 공간이다. 한복과 도자기, 케이팝, 한국 음식을 홍보하는 전시관이 곳곳에 마련돼 있다. 78명의 하우스 운영위원들이 이 곳에서 3주간 쉼없이 방문객을 맞이했다.



그런데 이 운영위원들이 현지 최저임금에 해당하는 임금만 받으면서 법정수당은 제대로 받지도 못하고 일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대한체육회는 현지 노동법에서 정한 연장수당을 받지 말 것을 운영위원들에게 제안하고, 야간노동에 따른 수당과 교통비도 지급하지 않았다. 운영위원들은 대한체육회와 행사 대행사 코틴기획을 상대로 문제제기에 나섰다.






18일 연속 근무…뽑더니 영어·불어 통역 시키고





“처음엔 간단한 방문객 응대라고 해서 일하러 갔어요. 주최 쪽도 ‘단순노동이니까 최저임금 주는 거’라고 했고요. 그런데 실제로 해 보니 영어 및 불어 통역을 수시로 요구하고 홈페이지에도 없는 내용을 방문객들에게 설명하라더군요. 전시관에 비치한 기계가 고장 나면 직접 고쳤고요. 파리 물가가 얼만데 이런 노동강도에 최저임금을 매기는지 이해가 안 되더군요.” 코리아하우스 운영위원으로 일한 ㄱ씨가 말했다.



운영위원 모집은 시작부터 ‘열정페이’ 논란이 일었다. 급여 수준은 프랑스 현지 기준 최저임금시간당 11.65유로인데 노동조건은 휴일 없는 18일 연속 근무2024년 7월25일 개막~8월11일 폐막에 ‘프랑스어 혹은 영어 가능자’를 요구했다. 한-불 통역 가능자나 유사 행사 경험자, 기간 전체 근무 가능자는 우대한다는 조건도 붙였다. 공고가 올라오자 현지 교민 커뮤니티에선 ‘어떻게 언어 전문성을 요구하면서 최저임금을 제시하느냐’는 비판이 나왔다.



계약조건도 현지 노동법을 지키지 않았다. 프랑스의 1주 표준 노동시간은 35시간이다. 운영위원들은 1주 36시간일요일은 별도 계산 일하는 걸로 계약했다. 표준 노동시간을 1시간 초과했으니 그만큼 연장수당을 줘야 했지만, 체육회가 지급한 계약서엔 그런 내용이 없었다.



연장수당이 어디로 증발한 걸까. 체육회의 인건비 절감 ‘짠테크’에 답이 있다. “운영위원들이 하루에 10분씩 조기퇴근하면 6일이면 60분 아니냐. 그렇게 해서 초과노동 1시간을 안 한 걸로 갈음하기로 운영위원들과 협의했다.” 체육회 관계자의 말이다. 그러나 한겨레21과 서면 인터뷰한 운영위원 3명은 “야근수당 못 주니까 일찍 퇴근하라는 방침은 들은 적이 없다. 오히려 일이 많아서 쉬는 시간도 없이 풀Full로 일하다 퇴근했다”고 입을 모았다.



코리아하우스 운영위원들이 목에 건 비표. 한국어, 프랑스어, 영어 가능 여부가 비표에 적혀있다. 대한체육회는 영·불어 가능자로 한정해 운영위원을 뽑으면서도 최저임금을 적용하고 각종 수당을 제했다. 대한체육회 제공


무엇보다 사업주가 법적 지급 의무가 있는 임금을 포기하도록 노동자와 약정하는 건 원칙적으로 무효다. 근로기준법상 임금 지급 의무는 구속력이 강해 노사의 사적 합의로 갈음할 수 있는 규정이 아니라서다. 대법원도 “노동자의 임금채권은 근로기준법으로 강력한 보호를 받는다”며 노동자에게 불리한 임금 관련 약정은 그 효력을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고 판단했다.대법 96다38995 판결



체육회는 또 다른 ‘인건비 짠테크’로 야간수당도 생략했다. 프랑스 현지 노동법에 따르면 사업주는 밤 9시 이후로 노동자에게 일을 시킬 경우 야간노동수당을 따로 지급해야 한다. 주간노동보다 육체적 피로도가 큰 만큼 사업주에게 금전적 부담을 더 지우는 것이다. 그런데 체육회는 운영위원의 오후반 근무조의 퇴근 전 30분밤 9시~9시30분은 ‘뒷정리 시간’이라는 이유로 야근수당을 주지 않았다.



간혹 야간 응원전이 늦게까지 이어질 때도 있었다. 이럴 땐 자정 가까이 일할 인원을 추가로 선착순 모집했다. 귀가 교통비는 안 줬다. 프랑스 현지 노동법에 따르면 사업주는 노동자의 출퇴근 대중교통 비용 50%를 대야 한다. 노동자 업무 수행에 수반되는 비용이라서다. 그러나 체육회는 “교통비를 못 주니 대중교통 안 타도 되는 사람만 지원하라”고 안내했다. 운영위원 ㄴ씨는 “법을 앞장서서 지켜야 할 공공기관이 도리어 ‘법 적용 안 받을 사람’을 모집했다는 게 정말 부끄러웠다. 생계가 급한 사람들 처지를 이용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음식 날라라, 고장난 사진 기계 고쳐라’





추상적 업무 범위도 갈등의 불씨가 됐다. 체육회와 대행사가 모집공고에 적은 운영위원들의 주된 업무는 ‘코리아하우스 안내 및 응대, 행사 운영 업무 보조’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공고를 올린 체육회 담당자도 “단순 행사 진행을 위한 안내 및 동선 유도 업무”라며 “선수 및 브이아이피VIP 의전은 별도의 통역사가 담당한다”고 안내했다.



현실은 달랐다. 행사 안내와 무관하거나 사전에 통지받지 않은 업무가 불쑥 주어졌다. 예를 들어 올림픽 개막식이 열린 7월25일 체육회 쪽은 운영위원들을 일제히 씨제이CJ 케이터링 업무에 투입했다. 이들은 예정에 없던 설거지와 그릇 정돈, 음식 나르는 일까지 해야 했다. 또 한복 전시관을 방문한 외국인 VIP를 위해 ‘한복 문화를 영어로 설명하라’거나 본인 대화를 즉석 통역해 달라는 지시도 갑자기 내렸다. 방문객 사진을 찍어주는 기계가 고장나면 운영위원들이 직접 오류를 찾고 고치기도 했다. 운영위원 ㄷ씨는 “단순 행사 안내라고 해서 지원했는데 갑자기 이런저런 요구를 현장에서 쏟아내니 당황스러웠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건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2024년 8월1일 오후현지시각 프랑스 파리 중심부에 2024 파리올림픽을 맞이해 마련된 ‘코리아 하우스


반면 체육회는 이런 업무도 모두 운영위원 업무범위에 포함된다는 입장이다. 계약서상 ‘코리아하우스 운영에 관한 현장 업무 수행’이라고 적었으니 하우스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다 시켜도 된다는 주장이다.





세금 신고 준비도 전혀 안 한 체육회





운영위원들의 불만은 대회 기간을 거치며 증폭됐다. 2천명 규모로 예상했던 일일 방문객 수가 실제론 4천명에 달했고, 그만큼 기계 고장 등 운영위원들이 대처해야 하는 변수도 많아졌던 탓이다. 그 과정에서 운영위원들에게 벌레 먹은 젓가락이나 상한 채식 도시락을 지급하는 등 운영 미숙 문제도 불거졌다.



결정적으로 체육회 쪽이 대회 종료 뒤 세금 정산 없이 원금을 그대로 지급하면서 운영위원들 불만이 폭발했다. 일한 사람 대부분이 비자 소지자여서 탈세 등 위법사항이 없어야 하는데, 주최 쪽이 세금 신고 준비를 전혀 해오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이들은 프랑스 노총에 노동법 위반 여부를 문의하는 한편 단체채팅방을 만들어 사건 공론화에 나섰다.



운영위원 ㄹ씨는 “현지 교민들을 채용한다면서 비자에 따른 근로소득세 신고 방법을 준비도 안 해 온다는 게 말이 되나.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향후 체류자격에 문제가 생기진 않을지 너무 걱정되고 화가 난다”고 말했다.



체육회 관계자는 이런 지적에 대해 “체육회가 프랑스 법인이 아니어서 프랑스 당국에 신고할 방법이 없다. 개개인이 알아서 소득신고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또 운영 미숙에 대해서도 “일부 비건 할랄 도시락 냄새가 이상하다는 의견을 듣고 식당 쪽에 전달한 적은 있지만 대부분은 한식 도시락을 좋아했다. 젓가락은 공장 제품이라 일부 불량품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한체육회 “다른 한국 기관도 임금 비슷”





인건비 절감에 골몰한 체육회는 정작 건물 조성엔 예산의 70%를 쏟아부었다. 코리아하우스 사업 총액 45억원 중 25억원이 건물 임차료, 4억5천만원이 공간 조성비, 5억원이 음향시설 대여 등 행사 운영비다. 정작 이 공간을 책임진 사람들에게 쓴 인건비는 1억5천만원으로 전체 예산의 3%에 그쳤다. 체육회는 사람에 대한 투자가 미흡했다는 한겨레21의 지적에 “공감한다. 하지만 프랑스 현지의 다른 한국 기관 행사도 비슷한 임금 수준이라 그렇게 했다”고 해명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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