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액티브] 주차난 부추긴다…장애인구역을 둘러싼 불편한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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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장애인주차구역 사용하게 해줘야"
정부·장애인 단체 "사회적약자 배려해야"
서울=연합뉴스 장종우 인턴기자 = 전국적으로 주차난이 심한 가운데 이용률이 낮은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을 줄이거나 일반인도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정부와 지자체는 장애인 배려 차원에서 장애인주차구역을 줄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연합뉴스는 이런 논란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지난 23일과 27일 수도권의 대표적인 인구 밀집 지역 고양시 일산과 서울 광진구 등을 방문해 관공서와 아파트들을 살펴봤다. 일산서구청과 동구청 청사, 일부 신축 아파트들은 비교적 넓은 주차 공간을 확보해 주차 문제가 보이지 않았지만, 다른 관공서와 오래된 아파트들은 사정이 달랐다.
관공서는 오후 4시 이전, 일반 아파트는 퇴근 시간대인 오후 8시 이후 주차장에서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그런데도 많은 장애인주차구역이 모두 비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직장인들이 퇴근한 후 아파트 주차장이 차들로 가득하다. 그러나 장애인주차구역 두자리는 모두 비어있다. [촬영 장종우]
지난 27일 오후 4시쯤 찾아간 고양세무서는 방문객들이 많아 주차장 빈자리가 없었으며 이중 주차한 차들이 많았다. 그러나 장애인주차구역은 세 칸 중 두 칸이 비어 있었다. 맞은편 고양일산우체국 주차장 역시 만차였지만, 장애인주차구역은 세 칸 모두 비어 있었다.
아파트의 주차 사정은 더욱 좋지 않았다. 오후 8시에 방문한 대화동의 한 아파트는 이중주차도 모자라 지하 주차장 경사면까지 주차된 차량으로 가득했다. 그런데도 장애인주차구역은 반 이상 비어있었다.
같은 날 오후 9시에 방문한 일산의 한 아파트 단지 내 도로는 가장자리에 주차된 차량 때문에 빈틈이 없었고 개구리주차인도에 차량의 한쪽 바퀴를 걸쳐 주차하는 것까지 등장했다. 이 아파트의 경비원은 이렇게 주차된 차량 때문에 주민들이 큰 불편을 겪는다고 전했다. 그는 "차량 사이의 공간이 부족해 차를 뺄 때 접촉 사고가 자주 일어난다"고 말했다.
이 아파트의 장애인주차구역 역시 상당수가 밤새 비어있다. 이곳의 다른 경비원은 "00동엔 장애인이 세 분 살아 장애인주차구역 두 개 중 하나는 매번 차가 있다. XX동은 항상 두 칸 모두 주차한다. 그런데 나머지는 고정적으로 주차하는 차량이 없는 실정이다"라고 전했다.
고양세무서는 민원인들의 방문이 많지만, 주차난이 심해 이중주차가 일상이 됐다. 반면 장애인주차구역은 대부분 텅 비어있다고 한다. [촬영 장종우]
비어있는 장애인주차구역. 그러나 주차장의 주변 도로 가장자리와 인도에는 주차할 곳을 찾지 못한 차들이 주차해 있다. [촬영 장종우]
주차난은 일산만의 문제는 아니다. 수원시 영통구 주민 A씨는 "우리 아파트도 밤마다 주차 전쟁이다. 그런데 장애인주차구역만 비어있다"면서 "우리 회사엔 장애인주차구역은 물론 장애인 보호자 전용 구역도 있다. 배려하는 게 좋긴 하지만, 조금 과하지 않나"고 불만을 토로했다.
부산에 사는 B씨는 "전국적으로 주차난이 심한데 실수요를 고려하지 않고 장애인주차구역을 획일적으로 만들어서 주차난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냐"고 지적했다.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전체 주차 대수의 2~4%를 장애인전용주차구역으로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2005년 7월 이전에 지어진 아파트 등 공동주택은 장애인주차구역 설치 의무가 없다.
그렇다면 주차난을 겪는 아파트는 입주자 대표 회의를 통해 장애인주차구역을 조정할 수도 있을까.
원칙적으로는 가능하나 현실적으로 이미 설치된 장애인주차구역을 없애는 것은 쉽지 않다. 보건복지부 지침은 사회적 약자 배려 차원에서 이미 설치된 장애인주차구역은 없애지 못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4월 성남시는 관련 민원이 들어온 한 건물이 장애인주차구역 설치 의무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일반 주차구역으로 바꾸라고 안내했다가 국민권익위원회로부터 보건복지부 지침에 따라 장애인주차구역을 다시 설치하라고 권고받았다.
그러나 실제 장애인 주차 수요를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인 행정 시스템에 불만을 가지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서울 노원구에 거주하는 조창모26씨는 "아파트도 문제지만 백화점 등 주차 수요가 많은 곳도 장애인주차구역이 모두 사용되는 일은 많지 않다"며 "이런 빈 곳을 유동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정부가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중 주차된 차들 사이로 비어있는 장애인주차구역이 보인다. [촬영 장종우]
이런 불만은 국민신문고에 자주 언급되는 단골 민원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장애인주차구역이 실수요보다 과도하게 많으니 그 수를 줄이거나 비장애인도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취지의 민원이 많다고 밝혔다.
지난 7월엔 장애인이 한 명도 살지 않는 공동주택에 장애인주차구역이 있어 한 세대는 내 집 주차장에 주차할 수 없으니 세대원들 동의하에 일반 차량도 장애인주차구역에 주차할 수 있게 해달라는 민원이 국민신문고 공개 제안에 등록되기도 했다.
주민들의 불만에도 당국은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고양시청 관계자는 "상위법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지자체가 장애인주차구역의 탄력 운영을 결정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이에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장애인 입장을 대변해야 하는 당국이 장애인에 반대되는 정책을 내놓긴 어렵다면서 "탄력적으로 장애인주차구역을 운영하면 변수가 너무 많다. 사회적 배려 차원에서 장애인주차구역을 상시 비워 두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이중 주차된 차들이 빼곡한데 장애인주차구역은 비어있다. [촬영 장종우]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정책에 손대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있다.
매일 자가용으로 시각장애를 가진 딸의 등하교를 책임지고 있는 광진구 주민 C씨의 눈엔 장애인주차구역이 충분치 않으며 그나마도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었다.
C씨는 "우리 동의 장애인주차구역은 한 개뿐인데 딸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오면 여지없이 일반 차량이 주차하고 있다"면서 "장애인주차구역을 늘릴 수 없다면 단속이라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그러나 인력 부족으로 시민이 직접 신고하는 수밖에 없다더라"고 불편을 호소했다.
최용준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정책협력실 팀장은 "어떻게 특정 시간대에 장애인 주차 수요를 예측할 수 있겠나. 장애인주차구역은 사회적 약속이자 배려다. 임의로 계속 조정하게 되면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을 보호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장애인주차구역을 줄이거나 탄력적으로 이용하는 것의 실효성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도 있었다. 광진구 주민 D씨는 "장애인주차구역 몇 개 없앤다고 주차난이 바로 해결되겠나"며 "진짜 문제는 세대 수보다 현저히 적은 주차 공간 문제"라고 꼬집었다.
whddn387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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