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놀아주세요" 사장님 퇴근에 울어버린 아기 손님 [아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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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원의 ‘저출산 극복 카페’ 그 뒷이야기
“진상 고객들로부터 아름다운 이 카페를 지켜내야 합니다.”
지난 10월 17일 국민일보 유튜브 채널 ‘KMIB-작은영웅’에 소개된 경남 창원의 한 베이커리 카페 영상에는 이런 댓글이 달렸습니다.
바리스타 황률씨와 파워블로거 박가연씨 부부가 운영하는 카페 ‘히츠커피’ 얘기입니다. 오픈 1년 만에 동네 사랑방이 된 이 카페는 아기 엄마들이 카페에서 잠시라도 숨을 돌릴 수 있도록 작은 배려를 하는 걸로 유명합니다. 엄마가 따뜻한 커피를 마실 수 있도록 아기를 잠시 돌봐준다든지, 계단이 버거운 엄마를 위해 유모차를 옮겨준다든지 하는 그런 일들이죠.
CCTV를 보면 사장님 품에 안긴 아기가 부모 품에 안긴 것처럼 평온해보입니다. 오후에는 베이커리를 담당하는 가연씨 공방이 떠들썩해집니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공방이 간이 놀이방으로 변신한 거죠.
별 것 아닌 듯한 작은 서비스가 엄마들을 감동시킨 이유는 세상 분위기와 관련이 없지 않습니다. 최근 선풍적인 인기를 끈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도 때아닌 파인다이닝의 ‘노 키즈 존’ 찬반 논쟁으로 번졌잖아요. 그만큼 우리 사회가 육아에 적대적인 환경이라는 뜻일 테죠.
영상이 공개된 당일 사장님 부부도 이런 뜨거운 논란을 실감했다고 전했습니다. 다행히 나쁜 쪽으로는 아니었습니다. 온라인에서도 카페에 대한 칭찬이 많았지만 특히 오프라인에서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영상이 업로드 되고 그날 카페에는 아기 손님들이 쏟아졌거든요. 그중에서도 가장 뭉클한 건 바로 이 꼬마 손님의 반응이었어요.
퇴근길까지 따라나선 귀여운 꼬마 손님
아기는 엄마 품에 안겨 이날 카페에 왔습니다. 단골 손님인 중년 부부도 함께였는데 아기가 엄마한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발을 동동 굴러서 세 사람은 대화를 제대로 이어가지 못하는 듯했습니다. 지켜보던 가연씨는 아기에게 조심스레 다가갔습니다.
“아줌마랑 놀자. 저거 구경해 볼까? 이게 뭐지?”
아기의 환심을 사는데 성공한 가연씨는 아기를 안고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렸습니다. 잠시 후 아기는 카페 안을 아장아장 걷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카페라면 당장 눈총받기 십상인 상황이죠. 하지만 사장님인 가연씨가 아기 뒤를 따라다녔기 때문에 아기 엄마는 마음 편히 대화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가게 안을 한참 돌아다니던 아기는 밖으로 나가고 싶은지 입구로 향했습니다. 계단 앞에 선 아기를 가연씨가 붙잡았습니다.
“밖에 나가면 위험해. 차가 씽씽 달리거든.”
가연씨 말에 아기는 “타, 타”를 반복했습니다. 카페 앞 도로를 오가는 차를 가리킨 거였죠. 사실 가연씨는 얼마 전 다리를 다쳐 석고붕대를 한 상태였어요. 그 다리로 아기 옆에 쪼그린 채 사장님은 그렇게 한참이나 지나가는 차를 구경했습니다. 아기와 함께 말입니다.
잠시 후 두 아들의 하원 시간이 다가와 퇴근을 준비한 가연씨. 뜻밖의 일은 그때 벌어졌습니다. 아기가 퇴근하려는 가연씨를 쫓아가며 울기 시작한 겁니다. 결국 아기 엄마가 나서 아기를 달래며 가연씨 퇴근길을 배웅하는, 말 그대로 주객전도의 장면이 펼쳐졌습니다.
난감하기는 했지만 가연씨에게는 뭉클한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잠깐 본 자신을 믿고 마음을 열어준 아이가 너무 예뻐서 하루의 피로가 눈 녹듯 녹아내렸거든요.
지역 홍보에 진심이었던 부부
사장님 부부가 육아맘들에게 왜 이렇게 진심인지는 부부의 사연을 듣고 이해하게 됐습니다. 아이 키우는 커플이 겪는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었어요.
2018년 임신으로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둬야 했던 가연씨는 상실감이 컸다고 해요. 당시에는 바리스타인 남편이 홀로 커피숍을 운영했는데 남편은 가게에 매달리고 가연씨는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고립감에 우울증이 생겼다고 합니다.
이후 함께하는 시간을 위해 부부는 가연씨 고향인 경남 창녕군 영산면에서 창업을 결심했습니다. 가연씨는 “돈이 없는 신혼부부여서 친정엄마가 하는 고깃집 위에 비어 있던 창고를 싸게 빌렸고 셀프 인테리어로 가게를 꾸몄다”며 “하루에 10만원어치만 팔아도 된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고 말했습니다.
주민들은 ‘시골에 카페라니 곧 망할 것’이라고 수근댔지만 결과는 대박이었습니다. 가연씨의 온라인 홍보 덕이었어요. 그는 “카페 근처에 만년교라는 지역 보물이 있는데 그 절경을 홍보하기 위해 사계절 내내 가게 이름이 새겨진 텀블러를 들고 사진을 찍어 블로그에 올린 게 관심을 끌었다”고 말했습니다.
당시에는 코로나19로 교외 카페를 자가용으로 방문하는 사람이 많아지던 때였습니다. 가연씨 카페가 꼭 가봐야 하는 드라이브 코스로 유명해지면서 인스타그램 명소가 됐습니다. 가연씨는 “창녕이 코로나 청정지역이어서 운 좋게 그 특수를 누리게 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육아맘들을 위한 부부의 서비스가 시작된 것도 이곳에서였습니다. 가연씨는 “평일엔 외출이 어려운 임신부들이 홀로 커피를 마시러 오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멀리서 온 그 손님들이 고마워서 서비스를 조금씩 한 게 지금의 ‘예스 키즈 존’을 만들게 된 계기”라고 설명했습니다.
‘귀촌’을 매각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 부부
작은 카페의 효과는 굉장했습니다. 가연씨가 지역을 홍보해 준 덕분에 동네에는 관광객이 늘어났고 상권도 살아났습니다. 가연씨는 이 공으로 2021년 창녕군수로부터 감사장을 받기도 했을 정도입니다.
기쁜 일이었지만 그즈음 가연씨 부부의 고민도 커졌습니다. 연년생으로 낳은 둘째 아이가 자주 아파 병원에 가야 하는 일이 많아졌는데 면 단위 시골에선 병원을 오가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큰 아이의 유치원 문제도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어요. 어르신이 많이 사는 동네라 노인정은 많아도 유치원은 없었거든요.
가연씨는 “자영업자에다가 혼자 아기 둘을 키우다 보니까 아이가 아프면 저 혼자 아이를 입원시키고 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습니다. 부부는 다시 이사를 결정했지만 이건 더 큰 문제로 이어졌습니다. 출#x2027;퇴근 시간이 길어지면서 부부가 함께 아이와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더욱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부부는 애정을 쏟았던 카페를 매각하고 이사한 집 근처인 경남 창원시에서 새로 카페를 열게 됩니다. 육아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두 번이나 터전을 옮겨야했던 가연씨 부부의 카페가 ‘예스 키즈 존’이 된 건 그래서 너무나 자연스러웠습니다. 아기를 안고 씨름하는 엄마 아빠들과 부른 배로 힘겨워하는 임신부를 보면 도무지 남의 일 같지가 않았으니까요.
“걱정마세요. 사랑방에도 규칙은 있거든요”
“악용될 소지가 너무 많다” “그러다 아기 다치면 어마어마한 소송에 휘말릴 수 있다” “요즘 아기 엄마들 아기 만지는 거 싫어한다”….
사실 부부의 사연이 알려진 뒤 응원만큼이나 쏟아졌던 건 걱정이었습니다. 진상 손님이 억지를 부려 카페를 망가뜨릴지 모른다는 애정 어린 참견인 거죠.
사장님 부부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이미 다 겪어본 일이랍니다. 가연씨는 “힘든 고객들은 당연히 있다. 자기 새끼 소중한 줄만 알고 남의 새끼 소중한 줄 모르고, 엄마들끼리 대화하느라 아기를 방치해 영업에 방해되는 그런 손님들도 있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그런 손님들은 정말 극소수이고, 그런 분들에게도 ‘아기 한 번 챙겨주세요’라고 부탁하면 대부분 들어준다”고 했습니다.
‘예스 키즈 존’이라는 말이 ‘예의 없고 존중 없는’ 손님까지 참아준다는 뜻은 절대 아니라는 겁니다. 그리고 아기를 안을 때도 미리 물어보고 아기 엄마가 안심할 수 있는 거리에서 안전하게 놀아준다고 해요. 그러니 걱정은 접어둬도 될 것 같습니다. 사장님 부부의 행복한 동네 사랑방이 계속되기를 기원해봅니다.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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