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전공의들 "환자 생각은 왜 안하죠?"…현장 의사도 가족도 지쳤다[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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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전공의 “집단사직 동의 안하지만, 정부 정책에도 반대”
[헤럴드경제=김용재·안효정 기자] 정부의 의대정원 확대 정책에 반발한 전공의 이탈이 한 달째 이어지고 있다. 대다수 전공의는 병원을 떠났고 일부는 남았다. 현장을 지키는 전공의들은 사명감 하나로 버텨오고 있지만, 한 달 새 쌓인 피로감으로 일할 의욕을 잃고 있다고 했다. 여기에 그간 병원을 지켜오던 의과대학 교수들마저 집단 사직서 제출을 예고하면서 상황은 악화일로다. 의사 집단행동 피해 신고는 1300건을 넘어섰고, 환자들의 ‘의료 공백’에 대한 불안감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18일 보건복지부가 파악한 전국 주요 수련병원의 이탈 전공의 수는 1만2000명가량으로 전체의 93% 정도가 병원을 떠난 것으로 파악됐다. 이른바 ‘빅5서울대·서울아산·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성모병원’ 병원 전체 의사 중 전공의 비율은 40% 안팎에 달한다. 많은 병원이 심각한 의사 인력 부족을 겪으며 환자들은 의료 공백을 겪고 있는 셈이다. 집단사직에 동참하지 않은채 수련병원에서 일한다는 전공의 A씨는 “집단사직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전공의의 한 사람으로서 이들의 고민과 정부 정책의 허점을 모두 알고 있다”라며 “어느 한쪽도 마음 편하게 지지할 수 없다. ‘필수의료 살리기’에 동의할 부분도 있을 것 같아 정책을 공부했다. 그런데 공공의료 얘기도, 강력한 의사 분배안도, 수가 얘기도 없더라. 2000명의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이 정치적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라고 말했다. A씨는 전공의 내부 분위기에도 실망했다고 전했다. A씨는 “처음에는 행동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의사 커뮤니티를 보면 ‘그냥 다 싫다’라는 분위기였다”라며 “전공의협의회는 ‘어떻게 법적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만 고민하고 있더라. 국민과 환자 입장은 생각하지 않는게 안타까웠다”고 했다.
한 대학병원에서 현장을 지키는 교수 B씨는 “더는 못 견딜 것 같다”라며 “사직이 아니라 도망을 가고 싶다”는 심경을 전했다. B 교수가 속한 진료과만 해도 기존 의료진의 3분의 2가 결원한 상태다. 그럼에도 공백이 더 심한 진료과에 비해서는 그나마 나은 편이라고 B씨는 전했다. B씨는 “공백이 큰 진료과의 경우 비상 진료체계에 따라 야간 당직을 일주일에 3번 하는 경우도 있다”라며 “꼬박 날을 새는 당직을 하고서도 제대로 쉴 틈 없이 다시 다음날의 일과를 시작해야 하는 상황을 고려하면 일주일 내내 집에 돌아가지 못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공보의·군의관을 파견했지만, 의료 공백을 메우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며 “점점 남은 주위 의사들이 지치고 있다. 한계점에 다다르는 순간이 멀지 않은 것 같다”고 토로했다. 현재 전국 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소속 교수들이 오는 25일부터 집단 사직에 나설 것이라고 밝힌 상태다. 의대 교수들은 사직서를 제출하더라도 수리될 때까지 현장에서 환자 곁을 지키겠다고 밝혔지만, 현장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특히 중증 환자들은 언제 이 사태가 끝날지 모르는 불안감 속 무기한 연기되는 수술과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서울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오후 5시 서울대병원과 분당서울대병원, 보라매병원을 온라인으로 연결해 총회를 열고 사직서 제출 시기를 논의할 예정이다. 지난 15일 전국 의대 교수 비대위 회의에는 20개 의대가 참여해 그중 16개가 사직서 제출을 결의한 상태다. 서울의대 교수협 비대위는 예정대로 사직서를 제출할지, 전국 의대 교수 비대위의 일정에 맞출지 등을 이날 회의서 논의할 방침이다.
의료현장에선 수술 지연과 진료 취소 등 환자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현재까지 의사 집단행동으로 인한 환자 피해신고 사례는 1300건을 훌쩍 넘었다. 교수들 마저 병원 이탈 움직임을 보이자 환자들과 가족들의 불안감은 더 커지고 있다. 서울 아산병원에서 녹내장 수술을 받았다는 김모61씨는 다음 달로 예정된 진료를 받을 수 있을지 우려하고 있다. 수술 경과를 주기적으로 살펴봐야 하지만, 교수들이 집단으로 사직서를 낼 경우 진료여부가 불투명해지기 때문이다. 김씨는 “서울에 있는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싶어 겨우 원정을 와 수술을 받았다, 그랬더니 집단 행동 사태가 벌어지더라”라며 “정부건 의사들이건 무슨 얘기를 하는지는 알겠는데, 당장 아픈 사람은 누가 걱정해주고 신경써주는건가. 너무 불편하다”고 말했다. 신촌 세브란스 병원 위암센터에서 만난 C씨는 “의대생·전공의에 이어 이젠 교수까지 너나 할 것 없이 의사라면 다 떠날 준비만 하는 것 같다”라며 “정부가 양보 안 하면 우리도 그냥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나오는 것 같다. 이렇게 떠날 생각만 하는 사람들한테 누가 의지하고, 누가 믿음을 갖고 병원을 찾겠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환자가 물론 몸이 아파서 오는 게 맞지만, 의사랑 환자도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다”라며 “신뢰가 중요하지 않겠나. 이러면 의사들 못 믿는 환자 많아지는 거니 의사들한테 결국 손해 아니겠나”라고 덧붙였다.
아내의 산부인과 진료를 따라왔다는 보호자 D씨는 “교수들까지 병원을 떠난다면, 병원은 사실상 완전히 멈추는 것 아니냐”라며 “의료계에서는 미래를 위한다고 말하지만, 솔직한 심정으로 환자와 보호자 입장에서는 크게 와닿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D씨는 “지인 중에 전공의가 있는데, 지금 어디 놀러 갈 생각만 하고 있다더라”라며 “지금도 병원에 온 입장에서 참 어이가 없다. 응급 환자들은 정말 환장할 것 같다”고 헛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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