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무시" 막사에 수류탄 던지고, 도망 나온 동료들 향해 총 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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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미집행 사형수들] ⑬임도빈
강원 고성군 육군 22사단 GOP에서 복무하다 총기 난사 사건을 일으킨 임도빈 병장이 사건 현장에서 K-2 소총을 들고 현장 검증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무장 탈영해 40시간 넘게 도망 다디넌 아들과 전화 통화에서, 아버지가 이렇게 말했다. 아들은 “어차피 엄청난 일을 저질렀는데 돌아가면 사형 아니냐”라고 답했다. 그로부터 30여분 뒤 총성이 울렸다. 휴대하고 있던 K-2소총으로 왼쪽 가슴을 스스로 쐈다. 폐를 아슬아슬하게 비켜갔다. 출혈이 많았지만 의식은 있었다. 회복한 그는 살아서 법정에 섰고 세 번의 재판에서 모두 사형을 선고받았다. 항소심 절반이 지나도록 반성문 제출 기록이 없다. 사형이 선고되는 순간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함께 복무하던 동료와 간부 등 5명을 살해하고 7명을 다치게 한 소위 ‘임 병장 사건’ 장본인 임도빈이다. 감정이 임계점을 넘어 살의殺意에 이른 적이 있다. 중학교 3학년이 되던 해, 학교폭력으로 자살한 학생들 뉴스를 접하고서다. 자살하는 피해 학생들 이야기에 감정을 이입했다. 억압된 분노는 상상 속에서 가해자를 살해하는 방식으로 해소했다고 그는 당시를 기억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그는 살의를 행동으로 옮기려 했다. 수업 중에 집으로 와 주방에 있던 과도를 학교로 가지고 가려다가 아버지에게 발각돼 제지당했다. 자기를 괴롭히는 동급생을 살해하는 상상을 하다가 실행에 옮기려 했다고 그는 회상했다. 이 일이 알려지며 학교에서는 놀림이 더 심해졌다. 그 때부턴 ‘또라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결국 대입 수능시험을 앞두고 자퇴했다. 대인기피증이 심해 학원에 다니지 않았고 혼자 검정고시를 준비했다. 방송통신대에 입학해 한 학기만 다녔고, 2012년 12월 군에 입대했다. 군에서는 관심병사로 분류됐다. 군은 관심병사를 A급특별관리대상, B급중점관리대상, C급기본관리대상으로 분류하고 있다. 임 병장은 2013년 4월 당초 인성검사에서 A급 관심병사로 분류됐지만, 그 뒤 지휘관 판단에 따라 같은해 11월 B급으로 조정됐다. GOP에 투입할 병력이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육군 22사단 병사들이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명파리 명파초등학교 인근 숲에서 전날 총기 사고를 일으키고 탈영한 임도빈 병장을 검거하기 위해 수색 작전을 펴고 있다. /윤동진 기자 “이병, 일병 때는 좀 열심히 했었는데 상병 달고 나서부터 선임들이 없어지니까 열외 의식도 나타나고 함께 잘 안 하려고 했고, 다른 병사들이 훈련 준비를 할 때 뒤로 빠져서 막대기로 바닥에 낙서를 한 적도 있고, 제설작업에 적극 참여하지도 않았다.” “선임병이지만 자기 일도 제대로 하지 않고 누리기만 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등 ‘짬티’를 부려 경례하지 않고 무시해버린 사실이 있다.” “소대 전체 활동에 자주 열외를 하여 소대원들과 사이가 조금씩 멀어졌다. 후임들로부터 ‘잘 못하는’ 선임으로 인식되는 면이 있었던 것 같다.” 임도빈은 2013년 6월 병장으로 진급했다. 8월에는 ‘부분대장’도 달았다. 후임들은 임도빈을 잘 따르는 편이 아니었다. 임도빈이 부분대장을 단 뒤, ‘모포가 삐뚤어졌다’ ‘옷이 각이 안 잡혔다’는 이유로 후임들에게 욕을 하는 등 사소한 것으로 군기를 잡으려고 드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임도빈은 그러나 동료 병사들이 자신을 무시하고 있다고 여겼다. 임도빈은 평소 자기 외양과 행동에 대해 동료들이 붙인 별명에도 불만이 있었다. 근력이 약하다는 이유로 ‘슬라임’, 노안에 탈모가 있다는 이유로 ‘할배’ ‘노인’, 또 라면을 자주 먹는다며 ‘라면전사’ 같은 별명이 붙었다. 다만 동료들이 임도빈에게만 별명을 붙인 건 아니었다. 다른 부대원들도 서로가 닭이나 고양이 같은 동물에 비유해 이름을 바꿔 부르며 장난을 친 것으로 조사됐다. 초소 순찰 일지에 그려진 임도빈 병장 캐릭터. /연합뉴스 이런 그림을 두고 임도빈은 평소 동료들이 자기 행동을 지켜보고, 감시하고 있다는 생각에 큰 충격을 받았다. 칼을 들고 복수를 하려고 했던 고등학교 2학년, 그때처럼 주체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이번에는 제지하는 아버지도 없었다. 이 때 들었던 자기 감정상태에 대해 임도빈은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 전역을 88일 앞둔 날이었다. “이성을 통제할 수 없는 상태가 돼, 온통 머릿속에는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고 ‘내가 이렇게 사회에 나가서 살아봤자 똑같이 살 수밖에 없을 것 같아, 이렇게 살 바에야 다 죽이고 나도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임도빈은 소초원들을 전부 살해하려고 마음먹었다. 그날 오후 8시 15분, GOP 소초 후방 인근 교통통제소에서 휴식하던 동료들이 있는 곳에, 그는 수류탄을 굴려 넣었고 자신은 몸을 숨겼다. 수류탄이 터진 뒤에는 다시 그곳에 나타나 K-2 소총을 난사했다. 재판 기록에는 “놀라울 정도의 침착함을 유지하며 범행을 실행했다”는 문구가 있다. 천막에서 수류탄 파편에 부상한 동료들이 도망 나오자, 그들을 향해 실탄 11발을 쐈다. ‘살려 달라’는 비명소리에 다른 곳에 있다가 구조를 위해 모습을 드러낸 동료 병사들에게도 총을 갈겼다. 막사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총소리에 놀라 우왕좌왕하는 동료들에게도 실탄을 쐈다. 막사를 빠져나오며 자신을 발견한 동료 대원도 그 자리에서 쏴 죽였다. 그 실탄과 수류탄 파편에 5명이 죽었고, 7명이 다쳤다. 살해된 피해자 중에는, 평소 임도빈을 ‘형’이라고 부르는 등 친하게 지내거나 호의적인 태도를 보인 후임병들도 있었다. 임도빈은, 자기 총에 맞아 숨진 동료들의 명단을 확인하다가 특정 장병의 이름을 듣자마자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고 한다. 자신을 도와줬던 고마운 사람인데, 자신이 살해했다는 것을 알고 뒤늦게 괴로워했다는 것이다. “정작 괴롭히고 왕따시킨 사람은 따로 있는데, 저랑 제일 친했고 착하고 책임감 있는 남들과는 다른 용기 있는 그런 애들이 죽었다는 사실에 역시 사회는, 이 세계는 선한 자만 피해를 보는 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너무 안타까웠어요.임도빈 검찰 진술 中” 임도빈은 총기 난사 사건 뒤 자신을 쫓는 수색대와 대치하는 상황에서 독특한 행동을 했다. 대치 중 “부모님과 통화하고 싶다”며 휴대전화를 건네받은 임도빈은 자기와 관련된 기사부터 검색했다. 자기가 벌인 범죄에 대한 형량도 찾아봤다. 그러고선 자기 가슴에 총을 쏜 것이다. “본인이 생각해도 최소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자 투항 권유를 뿌리치고 자살 시도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육군 22사단 GOP경계소초에서 총기를 난사한 뒤 탈영했던 임도빈 병장. /뉴스1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나이가 어리고 전과가 없으며, 불우한 학창시절을 보냈다는 사실을 인정하나 이는 면죄부가 될 수 없다”며 “피고인은 지난 6개월간 단 한 장의 반성문도 제출하지 않는 등 전혀 반성하지 않았고, 자신의 고통과 억울함 만을 호소해 사건의 책임을 동료에게 전가하고 회피했다”고 했다. 임도빈은 항소했다. “소초원들의 따돌림과 괴롭힘이 원인이었고, 순찰일지에 그려진 자신을 비하하는 그림을 보고 결국은 참지 못하고 이 사건 범행에 이르게 된 것”이라며 감형해달라고 했다. 그러나 항소심 역시 “특정인에 대한 원한이나 복수심이 없었음에도 자신에게 아무런 해악을 가하지 않고 오히려 친하게 지내기까지 하였던 동료들을 포함한 소초원 전부를 목표로 삼고, 일부 소초원들이 별명을 부르거나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는 정도의 괴롭히는 행위를 살인 행위와 동일시하며 비난하는 등 극도의 인명경시의 태도를 보였다”며 원심 판단을 유지했다. 대법원은 2016년 2월 “의문의 여지가 없도록 정당화될 수 있을 때만 사형선고가 허용된다”면서도 “원심의 사형이 심히 부당하다고 인정할 사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형을 확정했다. 임도빈은 국군교도소에 수용돼 있다. 가장 최근 사형이 확정된 범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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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닷컴 바로가기] [ 조선일보 구독신청하기] 김명진 기자 cccv@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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