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줘"와 "~해라" 사이 눈치 게임…직장인 1922명 속마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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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매일 개미처럼 일하는
직장인 1922명 속마음
매일 개미처럼 일하는
직장인 1922명 속마음
일러스트=김영석
“퇴근 전까지 보고서 내라.”
오후 5시쯤 상사에게 이런 메시지가 왔다. 개미씨는 고민에 빠졌다. 보고서 준비가 미흡해서 그런 게 아니다. 상사의 메신저 ‘말투’ 때문. 개미씨는 슬그머니 전날 상사에게 온 메시지를 다시 본다.
“내일 퇴근 전까지 보고서 내줘.”
‘내줘’에서 ‘내라’로 변한 말투. 보고서를 빨리 내야 했나, 내 오전 근무 태도가 불량했던 걸까, 아까 커피를 더 공손하게 건넬걸 그랬나? 토씨 하나로 분위기가 이렇게 달라지다니. 개미씨는 세종대왕님이 새삼 존경스럽다. 보고서를 내고 상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런데 “잘 받았다”는 답이 없다. ‘읽씹’읽고 답을 안 함. 역시 내가 뭔가 잘못한 게 틀림없어! 평화로워 보이는 하루였지만, 온갖 상상이 뒤엉켜 마음은 기진맥진.
다음 날 오전. “보고서 좋은데?” 상사가 말했다. 어, 화난 게 아니었나? 어리둥절한 개미씨. 갑자기 근무 의욕이 샘솟는다. 그는 선배들 말마따나 직장 생활이 ‘롤러코스터’ 타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직장인이라면 한번쯤혹은 매일 겪었을 직장 내 ‘눈치 게임’. 메신저 활용이 늘면서 빠른 업무 연락이 가능해졌지만, 대신 메신저 말투만으로 상대의 마음을 읽어내려는 천하 제일 눈치 싸움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아무튼, 주말’은 SM Camp;C ‘틸리언 프로Tillion Pro’에 설문조사를 의뢰해 눈칫밥 먹는 직장인의 속마음을 파헤치기로 했다. 20~50대 직장인 1922명이 답했다.
그래픽=송윤혜
일만 잘하면 만사 오케이~라야 하건만, 쉽지가 않다. 직장에서 의사소통할 때 업무 외적인 문제로 불필요한 감정 낭비가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41.94%나 ‘매우 그렇다’13.3%를 고른 응답이 합치면 과반이었다. ‘매우 그렇지 않다’를 택한 사람은 100명 중 1명1.35%에 불과했다.
직장인 10명 중 약 7명68.47%이 메신저나 문자의 말투를 보고 ‘기분 나쁜가?’ 싶어 상대 눈치를 본 적이 있었다. 업무 지시를 주고받을 때 가장 딱딱하다고 생각하는 말투는 ‘~해’38.76%와 ‘~해라’29.34%. 지나치게 명령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단다. 반면 ‘~해주세요’42.14%와 ‘~해주시면 어떨까요’34.6%는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말투로 꼽혔다.
눈치를 보는 이유는 뭘까. ‘괜히 마찰을 일으키고 싶지 않아서’73.3%와 ‘기분 나쁘면 일을 더 안 할 것 같아서’10.84%가 1·2위를 차지했다. 전문가들은 “상호작용하는 관계에서 눈치를 보게 되는 건 피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눈치를 본다’ 혹은 ‘보지 않는다’고 이분법적으로 생각할 게 아니라 ‘어느 정도 눈치를 볼 것인가’ ‘누구 눈치를 볼 것인가’ 등을 구분하는 것이 좀 더 마음 편하게 일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지나치게 눈치를 살핀다고 자책할 필요는 없다. 직장인 절반 이상이 눈치를 볼 때 ‘일 외적으로 감정 노동을 하는 기분’58.59%이라고 했지만, 이것 못지않게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사회생활 기술’41.41%이라는 선택지를 골랐다. 당신을 보며 누군가는 ‘거, 사회생활 잘하네’ 생각할 수도 있다는 사실.
넵의 바다는 넓다. 넵넵! #xfffd;#xfffd; 넵~ 네.. 넹 넴 넵ㅠ 넵; 네네네넵…. 다양한 감정의 파도가 일렁인다. 기초 해독법은 알아둘 필요가 있다. /그래픽=송윤혜
일 시키기도 힘들다. 개미씨 사례를 보며 사회 초년생인 20·30대를 떠올린 이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40대는 물론 50대 직장인 10명 중 약 7명 역시 눈치를 살피며 말투를 선택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대체로 지시하는 연차일 가능성을 고려하면, ‘후배 눈치를 보며’ 업무를 지시하는 팀장, 차장, 부장도 있는 셈이다.
판교의 한 IT 기업에서 근무하는 40대 장모씨는 ‘후배 눈치를 살피는 이유’에 대해 “꼰대처럼 보이기 싫어서” “스마트한 상사처럼 보이고 싶어서”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경영진 눈치도 봐야 하는데 후배 눈치까지 보자니 아주 죽을 맛”이라고도 했다. 한 50대 직장인은 “기분 나쁘다고 부원이 일을 안 하면 결국 책임은 내가 지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눈치 보기도 서러운데 걱정까지 한다. 상대가 업무 메시지를 읽고 답장하지 않았을 때 기분을 묻자 50대 직장인은 당연히 ‘일하기 싫은가 생각한다’31.6%를 가장 많이 골랐지만, ‘무슨 일이 있나 걱정한다’27.4% 역시 뒤를 이었다. 그럼 20대는? 사회 초년생인 만큼 ‘자신의 지시혹은 부탁에 문제가 있는지 돌아본다’30.6%가 1위.
영화 ‘오피스’에서 회사 화장실은 내밀한 공간이 아니다. 이미례고아성는 화장실에서 자신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듣는다.
동료가 “이것 처리해줘요” 부탁했다. 이때 ‘동료를 가장 열받게 하는 대답’ 1위는? ①”할 수 없는 이유 구구절절.” ②”네? 제가요? 이걸요? 왜요?” ③“….”묵묵부답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빌런악당 대답 사이에서 ②번을 고른 사람이 가장 많았다. 특히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동료에게 화가 난 상태에서 동료가 ‘그걸 왜 내가 해야 하느냐’고 물으면 더욱! 화가 나는 것41.88%으로 나타났다. 불난 집에 부채질.
일명 ‘3요’ “이걸요?” “제가요?” “왜요?”는 MZ세대 사이 ‘밈meme’처럼 사용된다. 속칭 짬을 맞은연차가 낮아 잡일을 도맡는 상황에서 당황스러워하는 대답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한 것. 하지만 최근에는 해야 할 업무마저 회피하는 젊은 직장인을 비꼬는 의미로도 쓰인다. 유통 업계에 근무하는 김모51씨는 “모호한 영역의 업무가 생겼을 때 팀원들이 일을 분담하는 걸 뻔히 알면서 ‘이걸 제가 왜 하느냐’고 물으면 속이 터진다”고 했다.
일로 상한 마음은 일로 풀리는 법이다. ‘결과물에서 애를 쓴 흔적이 보일 때’40.58%와 ‘지시 사항을 꼼꼼하게 다시 확인할 때’25.7% 마음이 풀린다고 답한 이가 많았다. ‘행동에서 눈에 띄게 미안한 모습이 보일 때’18.83%와 ‘대답을 빠르고 명확하게 할 때’14.72%가 뒤를 이었다. 위 네 가지를 모두 한다면 직장인으로서 100점 아닐까.
◇그대여,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결국 ‘말투’와 ‘읽씹’이 문제다. 그러나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직장 내에서 상대가 나의 문자나 메신저 말투를 신경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나 ‘매우 그렇다’를 고른 비율은 51.98%, 절반 이상이었다.
업무 연락에 답하지 않은 이유를 묻자 10명 중 4명이 ‘답할 경황이 없어서’41.1%라고 했다. 물론 ‘내용이 짜증 나서’27.94%라는 비율이 2위였지만, ‘사바사’사람 by 사람·사람 따라 다름는 진리. 3위 역시 ‘별생각 없이’22.37%인 것으로 추정할 때, 기억하시라, 당신이 우려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덤으로 노래 한 곡 추천하겠다. 만화 ‘짱구는 못 말려’ 주제가인 ‘개미송’. “개미는 뚠뚠 오늘도 뚠뚠 열심히~ 일을 하네 뚠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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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미 기자 youandm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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