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박태훈 선임기자 = 망상장애는 잘못된 믿음이 굳어져 신념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정실질환 하면 떠 오르는 조현병이 환청, 환각 증세를 보여 정상적인 사회생활 유지가 비교적 어려운 것과 달리 망상장애는 특정 믿음 외에는 사고도 정상이어서 사회생활, 직업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이 적다.
망상장애를 심신미약 상태로 볼 수 있느냐를 놓고 검찰과 법원이 판단을 달리한 사건이 있다.
◇ "내가 부모와 형을 죽였다" 119 신고…"난 입양아 구박당하고 살았다"
2022년 2월 10일 오전 6시50분쯤 119에 "내가 부모와 형을 죽였다"라는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119로부터 이같은 사실을 통보받은 서울 양천경찰서는 양천구의 한 아파트로 서둘러 출동했지만 이미 부모와 형 등 일가족 3명 모두 숨져 있었다.
김모씨당시 31세는 현장을 떠나지 않은 채 경찰 체포에 순순히 응했다.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난 입양된 양자"라며 "가족들이 친아들이 아니라며 차별하고 구박했다"고 원한에 얽힌 살인임을 시사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이와 함께 "정신질환으로 오랫동안 치료를 받아 왔다"는 사실까지 털어놓았다.
◇ DNA 검사 결과 충격적인 반전…99.9999% 친아들이었지만 난 양자라는 믿음
김씨 진술에 따라 친자관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DNA 검사친자확인검사를 의뢰한 경찰은 결과를 통보받고 깜짝 놀랐다.
국과수가 99.9999%의 확률로 친자관계가 맞다고 통보해 왔기 때문이다.
경찰은 2월 17일, 김씨를 존속 살해 및 살인 혐의로 검찰로 송치했다.
검찰은 김씨를 여러 차례 불러 DNA 검사 결과를 내밀었지만 난 양자라는 믿음을 깨지는 못했다.
이에 검찰은 김씨를 국립법무병원으로 후송, 1개월 동안 치료와 검사를 진행하면서 정신상태가 정확히 어떤지 파악하기 위해 법원으로부터 정신감정을 위한 감정유치 영장을 발부받아, 3월 13일 치료감호소로 옮겼다.
목동 아파트에서 부모와 형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A씨31가 2022년 2월 12일 서울 양천구 남부지방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2022.2.12/뉴스1 ⓒ News1 DB
◇ 檢 "계획의 치밀성 등을 볼 때 살인 당시 정신 상태 온전, 사형을"
28일 동안 김씨를 치료하면서 정신상태를 살폈던 검찰은 4월 20일 김씨를 구속기소 했다.
검찰은 "김씨가 여러 차례 살인 관련해 인터넷 검색 내역이 있는 점을 확인했고 정신감정, 통합심리 검사 등 철저한 보완 수사를 통해 범행 동기, 사전 계획, 심신장애 여부 등을 명확히 살폈다"며 정신질환에 따른 우발적 범행이 아닌 살인의 고의성과 목적성을 가진 범행이라고 강조했다.
재판 과정에서 검찰은 △ 김씨가 살인을 계획하는 등 치밀하게 준비 한 점 △ 범행 당시 흉기를 아무렇게나 휘두르지 않고 급소를 정확히 찌른 점 △ 가족의 학대 때문에 자신이 실패한 인생을 살고 있다며 2019년부터 살해 의도를 품고 있었던 점 등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신과 치료 기록이 있지만 범행 당시 정신은 온전했다"며 사형을 구형했다.
김씨측 변호인은 "정신감정 유치 결과 조울증과 조현병 등 심신미약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며 이를 양형에 반영해 줄 것으로 청했다.
◇ 法 "정신 온전하다 보기 어려워 100% 책임 묻기가" 35년형 선고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4부부장 김동현는 검찰 주장에 일리가 있다면서도 "피고인이 범행 당시 정신상태가 온전하다고 보기 어려워 결과에 대한 책임 또한 100% 묻기 어렵다"며 심신미약을 일부 인정, 징역 35년형과 출소 후 1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을 명령했다.
재판부는 망상장애의 특징 중 하나인 특정 믿음만 빼면 정상적인 사고를 한다는 점에 주목, 심신미약을 인정한 것이다.
2023년 7월 21일 "아버지는 외계인, 어머니는 뱀처럼 보인다"는 망상에 빠져 부모를 무참하게 살해한 30대 여성 A씨에 1,2심 모두 "망상에 사로잡혀 심신이 미약한 상태에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며 무기징역형을 구형한 검찰 요구를 뿌리치고 징역 15년형을 내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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