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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쌩쌩 달리는 도로가에…위태위태 폐지 끄는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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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211회 작성일 24-03-04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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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전 서울 은평구 불광동 연서시장 앞 교차로에 폐지가 쌓인 손수레가 멈춰서 있다. 김채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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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안 다니는 골목으로 뱅뱅뱅 돌아서 다녀요. 아무래도 걱정이 많이 되죠. 머리에 이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렇게 수레를 끌고 다니니….”



서울 은평구 불광동 연서시장 근처에서 고물상을 운영하는 이필순75씨는 지난 1일부터 다시 폐지를 줍기 시작했다. 근처 야채 가게에서 꼬박꼬박 폐지를 받아 갖다주던 임아무개78씨가 지난달 29일 가게 앞에서 차에 치여 숨져, 그의 빈자리를 메꿔야 하기 때문이다. 3일 오후에 시장 근처에서 만난 이씨는 자기 키보다 높게 종이 상자가 쌓인 손수레를 힘겹게 밀고 있었다. “차도 오토바이도 다 위험하죠. 상자에 가려 앞이 안 보이니까 옆으로 보면서 다녀요.” 왼쪽 눈이 보이지 않는 이씨는 차가 쌩쌩 다니는 도로를 따라 위태롭게 손수레를 밀었다.



지난달 29일 연서시장 앞 도로에서 스포츠실용차SUV 1대가 차량 8대를 잇달아 들이받으며 1명이 숨지고 13명이 다쳤다. 이씨 가게에 폐지를 갖다주던 임씨가 유일한 사망자였다. 3일 다시 찾은 연서시장에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폐지를 주으러 손수레를 끄는 노인들이 여럿 보였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 발표한 ‘2023년 폐지 수집 노인 실태조사’를 살펴보면 우리나라 폐지 수집 노인은 약 4만2000여명에 이른다. 폐지 수집 중 부상을 경험한 노인은 22%, 교통사고 경험률은 6.3%에 이른다. 이는 전체 노인 보행자의 교통사고 경험률 0.7%2020년 기준의 9배에 이르는 수치지만, 폐지 수집 노인의 절반 이상이 생계 목적으로 폐지를 줍고 있어 일을 그만둘 수도 없는 상황이다.



지난달 29일 오후 5시께 서울 은평구 불광동 은서시장 앞 왕복 6차로 도로에서 스포츠실용차SUV 1대가 차량 8대와 70대 보행자를 잇달아 들이받아 70대가 숨지고 13명이 다쳤다. 연합뉴스


연서시장 인근 상인들은 지난달에도, 지난해에도 폐지 줍는 어르신들이 사고를 당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지난해 오토바이가 수레를 치어 할머니 한분이 병원에 6개월 입원했었다”고 말했다. 근처 고물상을 운영하는 옹학몽77씨도 “한달 전쯤 고물상 앞에서 폐지 수집 노인이 접촉사고가 났다. 한 5년 전에는 새벽에 건널목을 건너던 분이 차에 치여서 사망했다”고 말했다.



차가 위험하다면 인도로 다니면 되지 않을까. 그러나 도로교통법상 너비 1m가 넘는 손수레는 ‘차’로 분류돼 인도 통행이 불법이다. 이 때문에 도로보다 안전한 보도로 다닐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개정안이 발의된 적 있다. 하지만 국회 문턱은 넘지 못했다.



폐지 수집 노인들은 법이 개정된다 해도 인도 위에서 손수레를 끄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2~3년째 폐지를 주워 왔다는 우복자76씨는 “인도로 올라가면 울퉁불퉁해서 바퀴가 잘 안 나간다.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니 부딪힐 위험도 있다. 어쩔 수 없이 차도로 나간다”고 말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찻길 바깥쪽에 붙어 위태롭게 손수레를 미는 폐지 수집 노인들을 위해 지자체와 경찰은 각종 안전장비를 지급한다. 서울 중구청은 2019년 경광등, 반사테이프 등이 붙어 있는 ‘안전손수레’를 폐지 수집 노인들에게 지급했다. 마포구청과 방배경찰서 등도 형광조끼 등 안전용품을 지급해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실효성은 그다지 체감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고물상을 운영하는 김현철62씨는 “글씨가 크게 써 있다 보니 어르신들이 부끄러워서 잘 안 입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연서시장 근처에서 만난 폐지 수집 노인 6명 중 안전용품을 활용하고 있는 노인은 1명으로, 손수레 밑에 작게 붙어 있는 반사테이프 하나가 전부였다.



김채운 기자 cwk@hani.co.kr 윤연정 기자 yj2gaz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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