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서한샘 기자 = 고급 한식에 와인 페어링
미쉐린 2스타를 자랑하는 한식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최고급 식당 A에는 이를 위한 와인들이 잔뜩 구비돼 있다. 시가 100만 원을 넘는 와인도 수두룩하다.
그런데 이 레스토랑의 오너 셰프인 B 씨는 어느 순간부터 몇몇 중요한 와인이 보이지 않는 것을 알게 됐다. 이상함을 느낀 B 씨는 직원들과 와인을 전수 조사했고, 와인이 무더기로 사라진 것을 뒤늦게 인지했다.
포스 시스템POS·판매시점정보관리 시스템을 뒤지고 여러 조사를 해보니 이내 내부 소행임이 드러났다. 확인 결과 범인은 B 씨가 와인 실종 사건을 인지하기 몇 달 전 퇴직한 레스토랑의 지배인 겸 와인 소믈리에 C 씨41였다.
C 씨는 퇴직 3달 전인 2021년 7월부터 A 레스토랑의 와인을 빼갔다. 162만원 상당의 고가 프랑스 와인을 포함해 총 106병을 일부 가격만 결제하고 가져갔다. 그렇게 횡령한 와인들의 시가는 총 4097만 원에 달했다.
퇴사 뒤에는 아예 와인을 절도하기도 했다. C 씨는 사전에 레스토랑 직원에게 요청해 레스토랑에서 B 씨가 운영하는 와인숍으로 와인들을 옮겨놨고, 총 133만 원 상당의 와인 3병을 가져갔다. 일부 금액조차 내지 않고 그대로 훔쳤다.
C 씨는 훔친 와인들이 정상 판매된 것처럼 꾸미기 위해 레스토랑 포스 시스템에 접속을 시도했다. 그러나 C 씨가 아무리 비밀번호를 입력해도 시스템은 열리지 않았다. B 씨가 이미 비밀번호를 바꿔놨기 때문이다.
B 씨는 C 씨가 검찰에 송치된 2022년 10월 C 씨의 범행을 인스타그램에 폭로했다. B 씨는 글에서 "훔쳐 간 와인을 반납하면 다 용서하고 사건을 덮어주겠다고 했지만 C 씨는 훔쳐 간 와인 중 30~40%는 본인이 이미 마셔서 반납할 수 없다고 했다"고 주장했다. B 씨는 "C 씨를 진실로 믿었다"고도 적었다.
결국 C 씨는 업무상 횡령, 절도,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1심에서 벌금 700만 원을 선고받았다.
C 씨의 사건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형사3단독 이종민 판사는 직원 할인가로 정당하게 와인을 구매했고 B 씨가 이를 묵시적으로 승낙했다는 C 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절도에 고의가 없었다는 주장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판사는 "와인은 특성상 소량 생산되거나 희소가치가 있는 품목일수록 구매가 어렵고 향후 가치가 상승할 여지가 있는데 C 씨가 그런 와인을 아무런 보고나 승낙 없이 임의로 산정한 가격으로 결제한 후 가져간 이상 업무상 횡령죄가 인정된다"고 지적했다.
또 "횡령·절도한 와인 가액이 상당하고 범행이 발각되자 이를 수습하기 위해 포스 시스템에 접근 권한 없이 침입하려 한 점 등에 비춰 보면 죄질이 가볍지 않다"면서도 "다만 초범이고 횡령한 와인에 대해 일부 금액을 결제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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