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숙을 "혼자 숙박", 우천시 취소엔 "어느 도시?"…2030 문해력 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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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성규
수년 전 일부 청소년의 문제로 지목됐던 문해력 저하 현상이 2030 성인층 전반에서 나타나면서 일상생활 소통이 어려워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일선 고교 현장에서 한자보다 영어 교육을 우선시하면서 한국어의 어휘력 기반 자체가 무너지고 있다”며 “이대로 수십 년이 지나면 서로 같은 한국어로 소통하는 일이 쉽지 않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래픽=김성규
일선 어린이집 교사들은 “가정통신문을 이해하지 못하는 일은 이미 비일비재하다”고 했다. ‘금일今日까지 지문 등록 동의서를 제출해 달라’고 공지하면 대부분이 금요일에 가져오고, ‘우천 시雨天時 행사가 취소될 수 있다’는 공지엔 “우천시市가 어디냐”고 묻는 식이다.
종교 기관에서도 한자어가 대부분인 경전과 교리를 신도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개신교회에선 고어체로 된 개역 성경 대신 ‘현대인의 성경’ ‘쉬운 성경’ 등을 도입했지만 이마저도 어렵다며 아예 영어 예배로 가는 신도들이 적잖다. 불교도 마찬가지다. 서울의 한 유명 사찰 관계자는 “법회 때마다 한글 풀이 불경을 나눠주고 진행하는데도 이마저도 이해를 못 한다”고 했다.
젊은 층 문해력 저하의 원인으로는 부실한 한자 교육이 꼽힌다. 내년부터 시행될 예정인 고교학점제로 한문한자 교육이 더 부실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한국어 어휘의 70%를 차지하는 한자어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며 문해력 자체의 기반이 무너지고 있다는 지적이 상당하다. 충남의 한 국어 교사는 “일상적인 한자어의 의미를 확인하는 시험 문제의 정답률이 25~35% 정도로 해가 갈수록 떨어진다”고 했다. 울산의 한 교등학교 교감 이모52씨는 “수업 시수도 적고 수능도 치지 않기 때문에 한문 수업의 중요도가 많이 떨어졌다”고 했다.
신종호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는 “이 때문에 현 2030세대는 한자의 뜻을 배우지 않고 한글의 소리로만 낱말을 배운 세대”라며 “유사한 발음을 들으면 의미를 헷갈리고, 생소한 단어를 들으면 익숙한 소리로 의미를 대체하는 형편”이라고 했다. 그래서 대충돌大衝突을 대충 지은 돌[石] 이름으로, 시발점始發點을 욕설로, 족보族譜를 족발 보쌈 세트의 준말로, 두발頭髮을 두 다리로 착각하는 일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한자어에 익숙하지 않은 2030세대가 사회에 진출하면서 기성세대와의 마찰도 잦아지고 있다. 현역병 정모23씨는 “입대 초반엔 ‘점호’ ‘당직사관’ ‘행정반’ 같은 단어 자체를 이해할 수 없어서 몇 달 동안 눈치로 때웠다”고 했다. 일반 회사에서 쓰이는 구두口頭, 반려返戾, 품의稟議, 송부送付, 하기下記 같은 단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해 ‘성인 대상 문해력 과외’를 받는 젊은 직장인들도 있다. 이 과외를 하는 강사 이승화36씨는 “한자어는 대부분 이해하지 못하고 문장을 구성해도 주술 호응이 안 되며, 그나마 서너 문장을 잇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23년 국민 독서 실태 조사 결과, 성인 종합 독서율은 43%였다. 10명 가운데 약 6명이 1년에 책 한 권도 읽지 않은 것으로, 10년 전72.2%보다 대폭 감소한 수치다. 오현석 부산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독서를 하면 정확한 한자어 뜻을 몰라도 단어 간 유추 능력으로 어휘력을 늘릴 수 있는데 현 상황은 우려스럽다”고 했다.
신종호 교수는 “한자 중심 문화에 속한 한국의 특성상 학술 용어 등 대다수 전문 용어는 순수 우리말이 아닌 한자어로 돼 있어 한자를 이해하지 않고는 그 개념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가 없다”고 했다. 김덕호 사단법인 국어문화원 연합회장은 “젊은 세대에게 한자어의 개념과 기원을 익히도록 해 우리말로서 한자어에 익숙해지도록 교육 체계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했다. 오현석 교수는 “청소년의 문해력 문제가 성인까지 연속적으로 이어지는데, 제도권 교육을 떠난 성인들이 어휘력·문해력을 높이기 가장 좋은 방법은 원론적이지만 꾸준한 독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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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은 기자 jieunk@chosun.com 김도연 기자 heresyeon@chosun.com 박정훈 기자 huni28@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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