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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낳고 키우기 힘든 사회"…아이에 물려주지 않으려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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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21회 작성일 24-10-07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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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8년 서울 마포구 한 기업에서 직장을 다니는 엄마들이 직장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을 하원시키고 있다. 연합뉴스


30대 후반의 신아무개씨는 결혼한 지 10년쯤 됐다. 자녀는 없다. 애를 낳고 기르는 데 경제적 부담이 커서 출산을 포기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잘 한 선택이라는 확신이 더 강해졌다. 세상이 더 좋지 않은 방향으로 가는 듯 보여서다. 기후위기와 환경 문제 등으로 살기 더 어려워지는 세상에 아이를 낳는 건 무책임해 보였다. 한편으론 우리 사회가 출산과 양육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직장에 다니던 친구들은 출산 뒤 우연히도 다 전업 주부가 되었다. 사회의 도움이 컸다면 친구들이 경력 단절을 겪지 않았을 거라고 했다. 애가 없는 그녀만이 10년째 직장에 계속 다닌다.



애 낳고 키우는 데 우리 사회가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생각은 비단 신씨만의 생각은 아니다. 6일 한겨레가 여론조사전문업체 글로벌리서치에 맡겨 전국 19~44살 성인 남녀를 대상으로 한 조사9월10~13일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데 우리 사회가 어느 정도 도움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응답이 전체의 64.7%나 됐다. 도움을 주고 있다는 응답은 35.3%에 그쳤다. 사회의 별 도움 없이 출산과 양육 부담이 거의 전적으로 개인에게 내맡겨져 있다는 인식이 컸다. 이는 정부의 여러 정책적 노력이 사람들의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현실을 방증한다.




선진국 가운데 우리나라는 애를 낳고 키우는 데 부모가 아닌 ’사회의 몫’이 작은 나라에 속한다. 이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 가운데 하나인 ‘국민소득GDP 대비 가구에 대한 공적지출’ 비중을 보면,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2.31%보다 낮은 1.56%다. 38개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은 프랑스3.44%의 절반에 미치지 못하며, 전체에서 6번째로 낮다. 이 수치가 클수록 대체로 출산과 육아 등에 대한 사회적 지원은 커지고 개인의 부담은 준다.



사회의 도움이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한국에서 애를 낳아 키우는 건 고된 여정이다. 실제 ‘한국 사회는 아이를 낳아 키우기 힘든 사회다’라는 조사 항목에 응답자의 87.6%가 그렇다고 답했다. 여성의 경우는 그 비율이 무려 91%가 넘는다.



자녀를 낳고 키우기 힘든 사회는 부모가 살기에도 좋지 않은 사회다. ‘전반적으로 고려했을 때 우리 사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살기 좋다는 응답은 34.4%에 그친 반면 살기 좋지 않다는 응답은 65.6%로 나타났다. 특히 ‘우리 사회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무려 72.7%가 ’비관적’이라고 답했다. 응답자의 절대 다수는 우리 사회의 미래를 어둡게 봤다.



또 우리 사회를 신뢰한다는 답변은 전체 응답자의 27.3%에 불과했다. 나머지 72.7%는 한국 사회를 신뢰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이렇듯 사회에 대한 신뢰와 기대는 자신의 생활에 대한 안정감과 전망보다 더 낮게 나타났다. 자신의 생활이 전반적으로 안정적이라거나 노후생활이 안정적일 것이라는 응답은 각각 60.2%, 53.6%로 조사됐다.



출산과 결혼을 선택할 때,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하면서 경제적이고 문화적인 삶을 누릴 수 있는 정도를 뜻하는 ’사회의 질’은 매우 중요한 고려사항이 된다. 사회의 질이 낮고 신뢰할 수 없는 사회라고 생각할 때 출산 기피는 합리적 선택이 된다.





실제 신뢰 수준을 포함해 사회의 질이 낮다고 생각하는 계층일수록 출산과 결혼 의향도 낮았다. 우리 사회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층의 각각 52.5%와 59.7%가 출산과 결혼을 하는 것이 좋다고 답했지만 ’신뢰할만 하다’는 응답층의 출산과 결혼 의향은 그보다 훨씬 높은 각각 70%와 77%로 나타났다. 사회에 대한 신뢰 여부에 따라 출산과 결혼 의향이 각각 17%포인트 넘게 차이나는 셈이다.



이렇듯 결혼과 출산은 사회에 대한 평가와 반응의 산물이다. 가치관이나 자신이 처한 형편에 따라 선택이 달라지지만, 동시에 개인을 둘러싼 사회적 환경도 선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이재열 서울대 교수사회학는 “계속 악화해온 저출생이란 표면적 증상 이면에 심층적인 어떤 믿음이나 신념, 가치를 뜻하는 멘탈 모델이란 게 있다"며, 그 핵심으로 우리 사회의 치열한 지위재positional goods 경쟁’을 꼽았다. 더 높은 ’지위’에 오르려는 과도한 경쟁이 신뢰를 약화시키고 불안을 키워 결혼과 출산마저 기피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 절대 다수는 한국사회는 ‘경쟁으로 인한 압박이 심하다’88.9%, ‘자신 또는 자신의 아이와 다른 사람과의 비교가 심하다’89.2%, ‘특정한 나이에 특정한 성취를 이뤄야 한다는 압력이 크다’88.1%,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기 어렵다’79.1%, ‘주거 안정을 이루기 힘든 사회다’86.4%라고 답했다. 이러한 수치들은 불안과 경쟁에 포획된 한국 사회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사회의 질이 이렇게 낮은 곳에서 결혼과 출산은 쉽지 않은 선택이다.



아이를 낳을 의향이 없는 응답자를 대상으로 그 이유를 물었을 때 가장 많은 26.5%가 첫손에 ‘아이가 행복하게 살기 힘든 사회여서’를 꼽았다. 자녀를 낳지 않는 신씨가 그렇다. 이들은 자신이 낳을 자녀를 불행한 사회에 살게 하느니 차라리 낳지 않겠다고 생각한다. 자신과 미래 세대에게 사회가 얼마나 살만한 곳인지는 출산 여부를 결정짓는 중요한 변수다.



우리 사회 계층 간 격차에 대해서도 전체 응답자의 87.8%가 심각하다고 답했다. 살고 싶은 사회와 거리가 먼 결과다. 특히 자신이 하층에 속한다고 밝힌 응답자의 70.9%가 ‘자녀 세대 또한 하층에 속할 것’으로 답했다. 자신만이 아니라 자녀도 하층으로 살 가능성이 높은 계층 상승 가능성이 막힌 사회에서 출산 의향은 줄 수밖에 없다.



지난 8월 서울 강동구 강동아트센터에서 열린 진로진학박람회에서 참가자들이 상담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자녀에 대한 ’무한 책임’을 중시하는 문화적 요인도 출산을 기피하는 원인으로 작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과 유럽의 많은 나라에서 부모의 책임은 고등학교 졸업 또는 대학 입학까지 인데 반해, 우리나라 부모의 부담은 훨씬 크다. 이번 조사에서도 고등학교 졸업이나 대학 입학 준비까지 부모가 책임지면 된다는 데 전체의 16.9%만이 동의했다. 대학을 마칠 때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응답이 35.6%, 취업할 때까지 31.2%, 결혼할 때까지가 11.5%였다. 83.7%가 적어도 취업할 때까지는 책임져야 한다고 응답한 셈이다. 심지어 손자녀를 키우는 것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응답도 4.8%나 된다. 자녀를 책임져야 하는 기간이 길수록 양육 부담은 더 커지기 마련이다. 부모는 자녀에 대한 거의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사회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무책임한’ 현실에서 출산은 개인에게 더욱 힘든 선택이다.



류이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한귀영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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