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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먹이까지 해쳐 뺏은 돈 2만6500원…韓 최초 연쇄살인마 최후[뉴스속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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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2회 작성일 23-08-13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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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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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나무위키

"교도소에 갔다 왔더니 누구도 받아주지 않았다. 친척과 친구도 나를 전과자라고 냉대했다. 끗발 나게 살고 싶었는데…"

1975년 8월13일 새벽 0시, 전남 광산군현 광주 광산구의 한 외딴집에 20대 괴한이 숨어들었다. 괴한은 자고 있던 노부를 습격해 낫으로 살해했다. 노부의 부인은 절굿공이로 때려 중상을 입혔으며, 집에서 손전등 하나를 훔쳐 도주했다.

괴한은 이후 두달여 동안 16명을 더 살해하고 경찰에 체포됐다. 유영철 이전 가장 많은 피해자를 남긴 연쇄 살인범 김대두의 이야기다.



빈농의 자식, 연쇄 살인범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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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현정 디자인기자

김대두는 논 4마지기와 밭 1000평을 가진 빈농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부모는 그를 대도시의 이름난 중학교에 진학시키려고 했을 만큼 교육열이 높았지만, 김대두는 학업에 뜻이 없었다.

그는 큰돈을 벌고 싶다며 일찍이 생업 전선에 나섰다. 하지만 농촌 출신 저학력자에 기술도 없고, 키도 160㎝로 왜소한 그에게 사회는 녹록지 않았다.

열등감에 빠진 김대두는 범죄의 길로 빠져들었다. 폭력 등 범죄에 휘말려 전과 2범이 됐다. 출소 이후에는 공장을 전전했으며, 전과자로 낙인이 찍히면서 사회에 대한 증오와 불만을 키웠다.

광산군의 외딴집에서 시작된 살인은 전국으로 옮겨져 9차례나 이어졌다. 같은 달 19일 기차에서 우연히 같은 교도소에 복역했던 재소자를 만난 그는 전남 무안군에 있는 한 구멍가게를 습격해 노부부와 7살 손자를 무참히 살해했다.

이곳에서 빼앗은 것은 단돈 250원과 빵, 음료수, 과자. 둘은 "이왕 죄를 지을 바에 돈이 많은 서울에서 하자"며 다시 기차에 올랐으나, 얼마 못 가 헤어졌다.



2만6500원 때문에 17명이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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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임종철 디자인기자

김대두는 혼자 칼과 망치, 돌 등으로 강도 살인 및 성폭행을 이어나갔다. 그해 9월7일 서울 동대문구 면목동현 중랑구 면목동에서 혼자 사는 60대 남성을 살해했으며, 보름 만인 25일엔 경기 평택군현 평택시에서 70대 노인과 그의 딸40, 손주 셋5살, 7살, 11살을 차례로 살해했다. 11살 손녀는 나무에 묶어 성폭행하기도 했다.

4명의 피해자 모두 망치로 살해당했는데, 얼굴이 심하게 훼손돼 있었다.

이후에도 김대두는 서울과 경기도를 오가며 8명을 더 살해했다. 생후 3개월 된 아기의 생명도 무참히 짓밟았다.

"내 얼굴을 기억하는 사람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젖먹이를 죽인 건 우는 소리가 귀찮았다. 처음 전남 광산서 살인하고 나니 그 후로는 사람 죽이는 일이 두렵지 않았다."

김대두는 범행 두달 만인 10월7일 피묻은 청바지를 세탁소에 맡겼다가, 이를 수상하게 여긴 세탁소 주인의 신고로 경찰에 체포됐다.

김대두가 9차례 강도 살인을 저지르면서 빼앗은 돈은 2만6800원에 불과했다. 1975년 당시 쌀 한 가마니가 1만 8600원쯤 했으니, 지금 돈으로 치면 겨우 몇십만원을 빼앗기 위해 17명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것이다.



내 빛이 없다 하여 남의 빛을 꺼뜨린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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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지혜 디자이너

김대두는 체포 이후에도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외려 현장검증에서 "빨리 끝내자"며 신경질을 부리고 히죽히죽 웃거나, 껌까지 씹어 분노를 안겼다.

김대두는 당시 취재진에 "남산 위에서 내려다보면 불빛은 많은데 내 것은 하나도 없었다"며 범행의 책임을 사회로 떠넘기기도 했다.

김대두의 변호인도 마지막 변론에서 "피고인은 집단에 대한 귀속의식이 충족되지 못했다. 사형제도 폐지론의 조류에 따라 실증적인 하나의 연구로서 피고인에게 무기 징역을 내려달라"고 요청했다.

다만 김대두는 1심과 2심에서 모두 사형을 선고받았으며, 상고를 포기하고 1976년 12월 28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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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주 기자 jhj@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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