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하던 양배추가 가락시장서 우거지 된다"…농민들 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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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에 방치된 가락시장 농산물
헐값에 팔려 농민들 울상 수도권에 대설주의보가 내려진 지난 5일 오후 5시 가락농수산물도매시장 경매장 앞 공터. 수십 톤 규모의 양배추 더미엔 비닐이 뜯겨 있었고, 밖으로 드러난 양배추엔 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다. 시간대별로 시작될 경매를 앞두고 지게차 여러 대가 쉴새 없이 시금치, 당근, 파프리카 박스를 경매가 이뤄지는 천막 안으로 옮겼다. 천막은 축구장 크기만 했지만, 언뜻 봐도 양배추가 들어갈 공간은 없었다. 시장 관계자는 “양배추는 밤 9시 넘어 경매가 진행돼 천막 안 공간이 부족하면 경매 전까지 밖에 놓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경매장에 방치된 농산물들...신선도 하락 못 피한다
세계 최대 농수산물 도매시장으로 알려진 가락시장에서 농산물이 야외에 방치되고 있다. 농민이 정성을 들여 재배해 경매장 앞까지 왔지만, 본격 경매가 시작되기 전까지 공터에 보관돼 냉해를 입는 것이다. 손해 대부분을 농민이 져야 하는 구조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6일 가락시장 채소 중도매상들에 따르면 시장 경매장에선 채소·과일류가 추위에 노출돼 상품성을 잃는 일이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전국에서 올라온 농산물을 경매 전까지 신선하게 보관할 시설이 없어서다. 농민들은 대형 도매법인 소속 중도매상에게 농산물 경매를 맡긴다. 소매상이 구매해가는 금액의 일정 부분을 수수료로 지급하는 구조다. 가락시장 대형 도매법인들의 평균 수수료는 2022년 기준 4.85% 수준이다. 농산물은 경매가 이뤄지는 천막 안에 보관하는 게 원칙이다. 그런데 개방형 구조인 천막은 출입구가 뚫려 햇볕만 피할 수 있을 뿐이다. 한 도매상은 “천막 안에서도 한파나 폭염주의보가 땐 농산물이 신선도를 잃어 가격이 반토막 나기 일쑤”라고 했다. 경매가 이뤄지는 천막은 늘 포화상태다. 경매장 설계 용량은 4680t인데 최근 하루 평균 물량은 7500t에 달한다. 상대적으로 부피가 큰 ‘양배추 더미’를 비롯한 농산물 상당량이 공터에 추위에 노출되는 이유다. 이날 공터에 놓인 양배추는 파렛트 위에 놓여있었음에도 찬바람을 맞아 시든 모습이 역력했다.
"하소연할 곳도 없다"...피해는 오롯이 농민에게
양배추 더미를 보며 ‘우거지 만드는 격’이라며 혀를 차던 중도매인 A씨는 “북극한파가 몰아닥친 지난달 24일 냉해를 입은 양배추를 헐값에 팔아넘긴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양배추 6개가 들어있는 한 박스는 최대 2만5000원에 팔 수 있는데, 한파에 노출되며 일부가 얼었고, 박스당 1만원에 팔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그는 혹서기에 야외에 쌓인 농산물의 경우 아스팔트 열기를 받아 상품성이 더 크게 떨어진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가격이 내려가 발생하는 피해 대부분은 농민 몫이다. 가락시장에 양배추, 브로콜리를 출하한다는 강원 횡성군의 농민 B씨는 “중도매인에게 냉해로 제값을 받지 못했다고 종종 연락받고, 그때마다 속상함이 크다”고 말했다. 그동안 재배를 위해 투입한 시간과 돈이 경매장 앞에서 반토막 나는 것이다. 가락시장 관계자들은 상품 선도관리를 위한 제대로 된 매뉴얼이 없어 이러한 문제가 지속된다고 입을 모았다. 가락시장 유통업체 관계자 C씨는 “파리의 헝지스 청과 도매시장은 건물 전체가 연중 영상 15도로 관리되는 단열, 정온 구조로 건축됐다”고 했다. 1985년 문을 연 가락시장은 2022년 거래물량 232만t, 거래액 5조5470억원 규모의 세계 최대 농수산물도매시장이 됐음에도 수십년간 ‘땅바닥 경매’가 이뤄져왔다. 가락시장에 정온 시설이 완비될 때까지 앞으로 6~7년간 ‘농산물 방치’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가락시장 운영을 맡는 서울시 농수산식품공사 관계자는 “2031년까지 9897억원을 투입해 시설현대화 사업을 마칠 예정”이라며 “먼저 1공구 정온 시설이 올 6월 완공되면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고 했다. 정희원 기자 tophee@hankyu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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