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대신 눈으로 카톡 8글자 쓰기…30분 걸렸다[남기자의 체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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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신 근육 말라가는 근이영양증…치료법 아직 없고, 스무 살 전에 죽을 거라 예고
자가 호흡 어려워져 인공호흡기 24시간 달아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눈동자로 게임하고 영상 만드는 크리에이터, 편견 깨고 싶어 시작 "언제 죽을지 몰라도 괴롭다고 울고 있을 수 없어, 그 시간도 아까워, 의미 있는 일 해야지요"
[편집자주]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 시내를 다녀 봤습니다. 세상이 처음 불편해졌지요. 직접 체험해 알리는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체험과 저널리즘을 합친 말입니다. 사서 고생하며 깊숙한 이면을 알리고, 가장자리가 보이도록 힘쓰려합니다.
내 두 팔과 두 다리. 그게 모두 굳었다고 상상해봤다. 곁에서 누워 있던 장익선씨38에겐 그게 일상이었다. 눈동자를 굴렸다. 이를 따라 안구마우스 커서가 움직였다. 제멋대로, 사정없이 화면을 날아다녔다.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달랐다. "원하는 곳으로 마우스 커서가 안 가네요. 힘든데요."기자 "처음엔 힘들어요.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게 AI, 최첨단이어서 편한 줄 알지만요."익선씨
카카오톡을 실행하려 노란색 아이콘을 노려봤다. 닿지 않았다. 아이콘 근처 다른 곳으로 시선을 바꿔봤다. 마우스 커서가 갈 듯 말 듯, 약이 바짝 올랐다. 됐다, 싶을 때 흥분해서 눈동자가 휙 흔들려버렸다. 커서를 노려보며 10분 넘게 끙끙댔다. 짜증이 꽉 찰 무렵에야 겨우 카카오톡 아이콘에 닿았다. 그 순간, 빠르게 눈을 깜빡였다. 그게 마우스 클릭이었다. 카톡이 마침내 실행됐다. 눈알이 아프고 어질어질했다. 그만하고 싶었다. 맘이 묵직해졌다. 몰랐던 세상은 여전히 많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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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살 때부터 온몸이 굳고 말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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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를 불어넣는 인공호흡기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말할 때 틈틈이 숨이 들어가야 한단 걸 새삼 알았다. 10초만 빼도 호흡이 어렵다고 했다. 숨 쉬듯 당연하다는 말을 함부로 쓰면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가 앓는 병은 진행성 근이영양증. 10만명 중 약 4명이 걸리는 희귀병. 시간이 흐르며 빠르게 근육이 굳고 말라가는 무서운 병. 처음 진단받은 건 5살 때였다. 계단 오를 때 난간을 잡는 아들을 보며, 부모님이 데려간 병원에서였다. 병이 익선씨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굳은 몸 안에 꼼짝 없이 갇혔다. 움직일 수 있는 건 눈동자와 엄지손가락, 발가락. 그것도 마디 끝만 살짝 가능했다. 익선씨는 방황하고 좌절했다. 매일 스스로 반복해서 물었다. 이런 내 삶이 희망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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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스타크래프트를 하다니, 대체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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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정말 대단하다.
유튜브 채널 이름은 눈으로 쓰는 근육병 일상. 근이영양증 희귀병 유튜버. 천만번의 눈 깜빡임으로 세상과 소통한다는 사람.
굳은 몸으로 눈동자만 움직여 이렇게 하는 거였다. 어떻게 가능하게 된 걸까 싶었다. 광주광역시에 있는 그를 만나러 온 것도,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해서였다. 누워 있던 익선씨가 날 반기며 말했다. "조작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영상 편집은 누가 하느냐고 묻기도 했고요. 다 제가 하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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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에만 머무를 수 없어…프랑스까지 메일 보내 장비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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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있는 게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거였다. 그저 매일 조금씩 더 근육이 약해지는 걸 바라보는 게. 익선씨는 그럴 수 없었다고 했다. "삶은 계속되잖아요. 어둠 속에서만, 절망 안에서만 머물러 있을 수 없었지요." 3년 전부터 유튜브 채널을 열었다. 근육병에 대한 편견을 줄이고, 제대로 알리기 위해서였다. 카메라, 마이크, 조명, 안구마우스 등 장비 하나하나를 구했다. 기왕 시작한 건데, 제대로 해보잔 생각에 투자했다.
"외국은 장애인의 게임 접근성이 높은데, 우리나라는 관심이 너무 적어서요. 장비를 일일이 다 해외직구로 수입해서 써야 하지요." 이를 구하기 위해 프랑스 업체와 주고받은 메일을 보여줬다. 몇 달에 걸쳐 계속된 게 보였다. 미세한 힘으로 클릭할 수 있는 스위치, 인터페이스, 턱으로 움직일 수 있는 깃털 조이스틱 등. 그걸 하나하나 구하기 위해 이리 애써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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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선님 응원합니다…여덟 글자 카톡 쓰는데 30분
━ 프로토스 종족을 고르고, 자원을 모으고, 유닛을 생산하고, 컴퓨터와 대등하게 싸우는 장면을 넋 놓고 바라봤다. 그동안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한 것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죄송하지만, 제가 한 번 눈으로 게임 해봐도 될까요?" 나름 중학교 때 스타크래프트를 해본 터라 호기롭게 도전해보기로 했다. 익선씨에게 양해를 구하고 침대에 누웠다. 눈동자를 굴릴 때마다 커서가 미친 듯이 움직였다. 이게 아니구나 싶어,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혔다. 호흡을 가다듬고 집중해도 원하는 방향에 가지 않았다. 과학 기술을 너무 맹신했다. 진짜 어려웠다. 누르고 싶은 아이콘을 바라봐도 그리로 가지 않았다. 감으로 근처를 바라보며, 아주 천천히 동공을 움직여야 했다. 카카오톡 창을 띄우는 데에만 10분이 넘게 걸렸다. 옆에 걸 누르고, 그걸 끄는데 또 고생하고, 애간장이 탔다. 익선씨와의 대화창을 띄우고, 숨을 참으며 한 글자씩 썼다. 익선님 응원합니다. 전하고픈 말이었다. 그 짧은 글을 다 쓰고 나니, 30분이 흘러 있었다. 하도 굴렸더니 눈알이 빠질 것처럼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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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돌아다녀", "안락사 시켜"…할 수 있단 걸 보여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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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을 수 없었다. 심할 땐 한 숟갈만 먹고 버티기도 했다. 그런데도 가스가 심하게 찼다. 30킬로가 안 될 정도로 살이 빠져 앙상해졌다. 눈도 뜰 수 없고, 호흡도 약해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에는 정말 힘들었어요. 잠도 잘 수 없고, 헛것이 보이더라고요. 저승사자처럼 생긴 검은 물체가 제 옆에 있는 느낌도 들었고요. 이젠 끝이구나 생각했지요."
모든 걸 잃고 나서야 보여지는 게 있다. 우리가 잠이 들어 내일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우리가 숨 쉬고 있는 자체가 기적이라는 사실이다. 삶을 더 소중히 여기기 시작했다. 남은 인생을 압축적으로 살겠다고. 뭐든 주저 없이 도전했다. 검정고시도 통과하고, 사회복지학은 학사와 석사까지 땄다.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을 땄고, 한국근육장애인생명권연대를 만들어 권리를 외치고, 농성하며 목소릴 높였다.
"이런 사람들이 왜 돌아다니냐고 했지요. 기차를 타도, 식당에 가도, 호텔에 가도, 다 나가라고 하고요. 죽으면 책임질 거냐면서요. 막연하게 생각하는 거예요. 이 사람은 이럴 것이다. 존재를 부정당하기도 해요. 그냥 안락사시키라고. 아예 의미가 없다고 보는 거지요." 그런 이들에게 내가 생각한 게 틀릴 수 있구나란 걸 전하는 것. 누워 있는 이도 똑같은 사람이고,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 어느덧 구독자 3200명을 넘긴 그는 몸소 증명하고 있었다. 그 생각은 틀린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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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기소침해지지 않았다, 포기하면 할 수 있는 게 없기에"
━ 그 이후를 상상한다. 익선씨 삶은 달라질 게 없다. 본질은 그가 대단하다며 존경을 받는 것도, 구독자가 더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그가 앞으로 나아갈 삶이, 또 그처럼 근육병이 있는 이들의 하루가 바뀌는 게 의미인 거다. 익선씨가 힘주어 말했다. "지원이 거의 없다 보니까, 이런 현실에 대해 계속 바꿔달라 요구해요. 그런 게 알려져서 저와 같은 근육 장애인들이 좀 더 안정적으로 살 수 있길 바라는 거지요. 최소한 목숨의 위협을 받지 않고요." 가장 필요한 건 활동지원사 시간. 부모님하고 함께 산다고 시간을 조금밖에 안 준다고. 어떤 장애든, 어떤 힘든 상황에 있든 상관없이. 인공호흡기를 하고 있다고 시간 더 주는 것도 아니란다. 익선씨는 24시간 활동보조를 받고 있지만, 모두가 이를 누릴 수 있는 건 아니다. 윤장현 전 광주시장이 당선됐을 때, 죽기 직전까지 이르렀던 익선씨가 절박하게 생활하는 영상을 보냈다. 그가 직접 만나러 왔고 24시간 보조를 받게 됐다. 그 덕분에 자립해서 살고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부모님도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며, 남동생도 선생님을 못 했을 거라 했다.
"혼자 있다가 활동 보조 시간이 없어서 돌아가신 분도 있어요. 그래서 제가 생명권 연대를 만들었고, 침대를 끌고 국회까지 쳐들어가기도 하고, 목소릴 냈었던 거지요. 왜냐하면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아무리 힘들어도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기 때문에요." 어딜 가든 거절당해도 의기소침해지지 않은 사람. 끝없는 어둠의 터널을 지나는 것 같아도 오늘 하루를 잘 살자며 계속 도전하는 사람. 인권위원회에 진정하고 민원 넣고 싸우며 독종이라 소문났을 사람. 병은 통제할 수 없지만, 통제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기로 맘먹은 사람. 그를 보며 읽었던 책의 한 문장이 생각났다. 사람들은 차별받은 사람과 저항하는 사람을 같은 존재라고 여기거나 차별받았으므로 저항하는 게 당연하다고 쉽게 연결지었다. 하지만 나는 차별 받은 존재가 저항하는 존재가 되는 일은 전혀 자연스럽지 않으며 오히려 순리에 어긋나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러라고 하는 게 차별인 것이다. 나는 부디 그들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홍은전 - 그냥, 사람 中
지난해 5월 21일. 그날은 익선씨 서른일곱 번째 생일이었다. 어머니와 활동지원사 이모님이 왔다. 그가 좋아하는 콩나물과 두부, 고기도 샀다. 닭꼬치가 후라이팬에 구워지는 소리가 지글지글났다. 생일엔 빠질 수 없는 미역국도.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라고, 덕담과 함께 케이크에 촛불이 켜졌다. 초가 언제 이리 많아졌냐며 농담이 오갔다. 익선씨를 대신해 어머니가 촛불을 껐다. 그에게 생일은 어떤 의미였을까.
그러니 생일 소망은 단 하나라고 했다. "지금 이대로라도 잘 유지됐으면 하는 거지요. 저에게 생일은, 그 소망이 잘 이루어지고 있음을 의미하고요." 끝으로 그가 덧붙였다. "오늘도 저는 여전히 숨을 쉬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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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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