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숙 작가의 교인 풍경-1] 하나님을 위해 자기를 사랑하는 성숙한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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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는 ‘헬퍼 증후군’을 앓는 사람이 많다?
심리이론 중에 ‘헬퍼 증후군Helper Syndrome’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건 남을 도와야 한다며 강박적이리만큼 다른 사람의 일에는 최선을 다하는데 정작 자기 일에는 무신경한 사람을 일컫는 용어입니다. 어쩌면 ‘헬퍼 증후군’을 앓는 사람들이 많은 곳 중 하나가 바로 교회라 할 수 있는데,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로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 그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교회에서조차 ‘착하고 사람 좋다’는 말을 듣습니다만 정작 자신의 몸과 마음은 돌보지 않아서 병이 나기도 하고 때론 다른 사람을 돕는 문제로 가족들과 갈등하기도 합니다.
K 권사님은 딸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팔순 기념으로 딸과 단둘이서 여행을 하는 중이었습니다. 저 멀리 사찰이 보이자 권사님은 퍼뜩 뭔가가 떠올랐고 그래서 물었습니다. 딸이 오랜 세월 반주자로 교회를 섬기며 권사까지 되었는데, 대학을 택할 때는 왜 하필 불교재단의 대학을 선택했는지 그 이유가 궁금하다고 했습니다.
그 당시엔 차마 물어볼 수 없었지만, 엄마의 마음 한쪽에서 그 물음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딸은 기다렸다는 듯이 ‘엄마 때문에’라고 했지요. 그러면서 그 선택은 순전히 엄마에 대한 반항이었는데, 인생을 돌이켜보니 그 일은 자신에게도 후회되는 몇 가지 일 중 하나라고 했지요.
어려서부터 딸의 눈에 비친 엄마는 오로지 교회 일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유난히 구역 식구들을 살뜰히 챙겼지요. 매번 밑반찬들과 김치를 만들어 돌렸고 온갖 궂은일은 다 엄마 차지였습니다. 한부모 가정의 아이들에게는 학용품도 사주었고 그 아이들이 학원을 그만둘 때까지 수년 동안 피아노 학원비를 대주기도 하였습니다.
딸이 싫은 건 교회에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것보다 엄마 자신은 하나도 챙기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은 지하상가나 노점에서 싸디싼 옷이나 신발만 골라 사 신으면서 아끼고 아껴서 모은 돈으로 그런 일을 하는 모습이 싫었던 겁니다. 때때로 엄마는 자신이 한 일을 가족들에게 일일이 보고했는데, 그럴 때면 ‘엄마는 누구의 엄마인가’ 하는 의아심까지 들었습니다.
그 당시는 믿음이 깊은 사람일수록 자신은 돌보지 않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만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자기도 엄마처럼 될까 봐 겁이 났는데, 그런저런 반항심으로 불교재단의 대학을 선택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평생 남을 도우며 사신 장로님이 무가치함을 느끼는 이유는
이런 사례도 있습니다. P 장로님은 교회의 보배입니다. 그 교회에서 섬기신 지 벌써 30년째인데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모습이 한결같습니다. 별명이 ‘S 전도사님’일 정도입니다. 매 주일 일찍 나오셔서 교회 곳곳을 살피시며 예배를 준비하시는데, 그것만이 아니죠. P 장로님은 누군가를 도와주는 일이라면 언제든 어디든 만사를 제치고 달려가셨습니다.
한 가지만 말씀드리면 장로님 댁 안팎으로 늘 빈 상자나 빈 병, 그리고 여러 가지 고철들이 널브러져 있습니다. 그것들은 폐지를 주워서 생활하시는 성도님께 가져다주기 위함이었죠. 양복을 입고 모임에 갔다 오시다가도 빈 상자나 고철들을 들고 오기 일쑤였기에 옷은 늘 지저분한 얼룩으로 범벅이 될 때가 많았고 그래서 아내 권사님은 마음이 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장로님은 우연한 계기로 상담을 받게 되었습니다. 상담을 통해 자신이 가족들의 불만을 사면서까지 남을 돕는 일에 그토록 헌신적인 이유를 알게 되었답니다.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큰아버지 댁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그때부터 큰아버지를 따라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신앙생활은 사춘기 시절 삐뚜로 나가지 않도록 자신을 지켜주는 버팀목이었고 죄인인 자신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 은혜가 감사해 ‘~이 벌레 같은 날 위해~’라는 찬송가를 늘 입에 달고 살았답니다.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되어 복음을 전하고 싶었지만, 형편과 상황이 여의치 못해서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교편을 잡은 장로님은 대신에 열심히 교회를 섬기셨습니다.
장로님은 주를 위해 산다는 건 자신은 돌보지 않고 다른 사람만을 위해 사는 삶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어린 시절 부모님의 부재로 받지 못한 사랑을 다른 사람들을 도우면서 받았던 칭찬과 인정해주는 말로 대체하였던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말한 이유는 얼마 전 시무장로에서 은퇴한 후에 파킨슨병 진단까지 받은 요즈음 다른 사람들의 도움 없이는 생활하기조차 힘들어서 그런지 도움을 주지 못하고 받아야만 하는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고 또 무가치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랍니다.
우리는 나를 사랑하고 돌보도록 만들어졌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들을 돕는 행동이 그 자체로 기쁘고 행복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도 귀하게 여기고 돌보아야 합니다. 왜냐면 우리 인간은 원래 그렇게 살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음식을 먹지 않으면 육체를 지탱해갈 수 없는 것처럼 그렇게 우리는 날마다 자기 자신을 귀하게 여기고 돌보아야 그것이 에너지의 원천으로 작용해서 다른 사람도 도울 수 있습니다. 마치 승용차가 잘 굴러가기 위해서는 휘발유가 필요한 것처럼이요.
우리는 성경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뭐냐면 믿음이 깊을수록 자신은 돌보지 않고 하나님만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이 책을 읽고 있는 독자 여러분도 나 자신을 귀하게 여기고 돌보라니까 마음이 좀 불편하신가요.
나를 귀하게 여기고 돌보라는 건 나를 첫 번째로 중요하게 여기고 하나님을 두 번째로 여기라는 말이 아니죠. 당연히 하나님이 첫 번째인데 하나님은 내 안에 거하시고 또 나는 하나님의 형상이니까 나 자신도 하나님처럼 그렇게 귀하게 여기고 돌봐주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을 위한 일?
중세 신비주의 수도사인 버나드St. Bernard는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에 대해 기술한 책에서 ‘사랑의 4단계’를 제시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영성 생활이 4단계인 ‘하나님을 위해 자기를 사랑하는’ 성숙한 사랑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1단계는 ‘자기 자신을 위하여 자기를 사랑하는 단계’로 하나님을 모르는 일반인들의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아실현 즉 자기가 하고 싶을 것들을 이루어가기에 바쁜 단계로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고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단계입니다.
2단계는 ‘자기 자신을 위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단계’입니다. 이건 살아가면서 자신의 힘으로는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그래서 이기적인 마음으로 하나님의 ‘막강한 힘’을 구하는 단계입니다. 이를테면 제사보다는 ‘제삿밥’에 관심이 있고 할아버지·할머니에게 세배드리는 것보다는 ‘세뱃돈’에 더 관심이 있는 아이들처럼 하나님보다는 ‘하나님의 능력’에 더 관심이 있는 단계라고 할 수 있죠.
3단계는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단계’로 많은 이들이 3단계를 최고로 여기지요. 그러나 ‘세상과 나는 간곳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라는 찬송가 가사처럼 가족도 잘 안 보이고 나 자신을 돌보지도 못하게 됩니다. 처음에 소개했던 K 권사님처럼이요. 그래서 버나드는 ‘하나님을 위하여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단계’를 4단계 즉 최고의 단계로 제시한 겁니다.
그에 의하면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에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동시에 ‘내’ 안에 깃들어있기에 ‘나’의 것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자신의 형상을 주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과 하나님의 형상을 담고 있는 ‘나’를 사랑하는 일은 서로 분리될 수 없고 또 분리되어서도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를 귀하게 여기고 돌봐야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나만 챙기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라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귀하게 여기고 돌보는 일과 다른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돌보는 일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를테면 최소한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친구를 대하듯이 그렇게 나를 대해주라는 거죠. K 권사님의 사례에서 딸은 엄마가 늘 노점에서 싸디싼 옷을 사 입는 것이 너무나 싫었다고 했는데, 이런 경우도 내가 가장 아끼는 친구에게 옷 선물을 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옷을 골랐다면 딸도 그토록 마음이 아프지는 않았을 겁니다.
글=강현숙 작가, 치매돌봄 전문가, ‘오십의 마음 사전’유노책주 ‘치매지만 하나님께 사랑받고 있습니다’생명의말씀사 저자
편집=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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