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꾼들 오면 눌러앉는 섬, 이 마을 이장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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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도에 이어, 남해의 두 번째 오지 섬 여수 평도를 가다
[양진형 기자]
흔히 섬사람들은 육지에 비해 배타성이 강하다고 말한다.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육지에서 살다가 고향 섬으로 귀향한 사람도 텃세 때문에 견디기 힘들다는 것이다. 섬이 많다 보니, 그런 섬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평도처럼 그렇지 않은 섬도 있다.
여수에서 남서쪽으로 62km 떨어진 오지의 섬
평도는 섬 토박이와 외지인, 귀향인들이 화합하여 오순도순 정겹게 사는 섬으로 소문나 있다. 현재 섬 주민 35명 중 10여 명이 외지인이거나 귀향인이다.
전남 여수에서 남서쪽으로 62km 떨어진 평도는 해안선 길이 5.5km, 최고봉은 해발 137m에 이르는 그리 크지 않는 섬이다. 본섬인 대평도와 북쪽에 있는 소평도, 2개의 섬으로 이뤄져 있다. 여수~거문도 항로 중간 기착지인 손죽도에서 남동쪽으로 10km 떨어진 해역에 위치해 있어, 낙도보조 여객선 섬사랑호를 타고 간다.
이곳은 섬에 석란이 많아 처음엔 석란도石蘭島라 불렸다. 그러다가 섬 중앙부가 낮고 평편해 평도라 바꿔 부르게 됐다. 섬의 석란은 5~6월에 연붉은색으로 꽃을 피우는데 그 향이 매우 진하다고 한다. 해무가 짙게 낀 바다에서 길을 잃은 어부가 그 꽃내음을 맡고 방향을 가늠했을 정도였다니, 가히 향 내음을 상상해 볼 수 있겠다.
평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300여 년 전으로 노씨, 허씨, 정씨가 처음 들어와 마을을 이루었다고 한다. 해안 주위로는 암석해안이 발달하고, 섬 주변에 비석바위 낮여, 건등여, 작은여 등이 분포한다. 이런 자연환경에서 돌돔, 쏨팽이, 농어 외에도 많은 어족이 서식하고 있다.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낚시인들이 몰리는 낚시터로 알려져
그러다 보니, 평도는 인근 광도와 함께 예로부터 전국적인 낚시터로 유명하다. 예로부터 서울 수도권은 물론 경남 부산권에서도 내로라하는 낚시인들이 즐겨 찾았다. 그렇게 낚시하러 왔다가 섬이 마음에 들어, 눌러 앉은 사람이 7~8명에 이른다. 지난 8월 중순, 평도를 찾아갔다.
저녁 식사 후, 평도로 이주한 지 10여 년 되었다는 김백만62씨 집에서 몇 분의 주민과 만났다. 김씨는 부산에서 천직으로 여기던 공직을 마감하고, 이 섬에 새로 집을 지어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원래 볼락낚시를 좋아해 평도에 수차례 왔는데 갈수록 섬에 끌렸다고 한다. 집도 손수 짓고, 정원도 아주 예쁘고 정갈하게 꾸며 놓아 오가는 사람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 마당의 징검다리 돌과 벽면의 황토 등도 모두 평도의 자연으로부터 얻어, 건축비가 많이 들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평도에 정착할 때까지 가이드가 되어주고, 땅을 물색해 준 사람은 바로 아랫집에 사는 최봉규72씨다. 강릉 출신의 최씨는 서울에서 대기업에 다녔는데 불면증으로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심할 때는 48시간 잠을 자지 못했다고. 그는 불면증을 치유할 조용한 섬을 찾다가 인터넷을 통해 평도를 알게 됐다. 평도에 정착해 처음엔 민박집을 하며, 마을의 궂은 일을 도맡다시피 했다. 그래서 최 반장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지금은 섬에서 맥가이버로 통한다.
"섬에는 항상 자원이 모자랍니다. 모두 육지에서 싣고 와야 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집 짓고 남은 건자재나 폐자재들은 모두 제 손을 거쳐 귀하게 활용됩니다. 절단하고 용접하고 그러다 보면 하루가 금세 지나갑니다."
그렇다면, 섬의 토박이와 외지인, 귀향인들이 서로 화합하여 잘 사는 비결은 뭘까? 최봉규씨가 그 비결을 털어놓는다.
"섬 주민 모두가 서로 존중하고, 작은 음식이나마 서로 나누려는 배려심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그 중심에 평도 토박이 송철희72 이장님이 있어요. 그분이 마을을 잘 이끌어 주어 모두 화목하게 지내는 것 같아요."
평도 해안가 외딴집 주인과 섬 농사꾼이 다 된 김하영씨 스토리
뒷날 아침, 평도의 또 다른 속살을 보기 위해 시멘트 임도를 따라 섬 동쪽 해안가로 나갔다. 그곳은 광도의 일출을 보는 장소이기도 하다. 마침, 저 수평선 너머 광도 위로 선홍빛 햇무리가 감싸고 있다. 태평양 멀리 밤새 달려온 태양은 한번 크게 심호흡을 하더니, 찬란하게 얼굴을 내민다. 장관이다.
마을로 돌아오는 길에 좌측 산자락 언덕을 따라 비스듬히 난 오솔길을 따라가 본다. 아뿔싸, 섬 오지에 집 한 채가 있다. 아슬아슬한 낭떠러지 위에 덩그러니 앉아 있는 집. 집주인은 서울 출신인데 이분도 낚시하러 왔다, 이 집이 마음에 들어 매입했다고 한다. 그 후 벌써 세월이 30여 년 흘렀는데 태풍이 불 때마다 지붕이 날아가 10여 차례 수리했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 경치 좋은 곳에 사니 좋겠다"는 말에, "집을 사고 나서 딱 3일간은 좋았는데 그 뒤부터는 고생이다"며 시원하게 너털웃음을 지어 보였다.
산자락에서 내려와 길가 밭에서 옥수숫대를 베고 있는 김하영75씨를 만났다. 충남 청양 출신인 그는 창원에서 국내 유수의 중공업 회사에 다녔다. 회사 낚시동호회를 따라 평도에 몇 번 왔는데 평도가 살기에 너무 편안해 보였다.
그는 정년퇴직 후 부인과 이 섬에 정착한 지 15년쯤 되었다고 한다. 김씨는 "올해는 바람태풍이 불지 않아 옥수수 농사가 제대로 됐다"며 때 묻지 않은 섬 농부의 싱그러운 웃음을 지었다.
낚시하고 싶어 고향으로 돌아온 베테랑 여 선장도 이색적
또한 평도 출신이지만 여수에서 살다가 자녀들을 모두 건사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여자 선장도 있다. 박수아씨다. 남편인 길호철80씨는 손죽도 건너 초도가 고향이다. 부부는 날씨와 물때가 보아가며 수시로 평도 바다로 향한다. 박 선장의 말이다.
"어렸을 적부터 갯바위에서 대나무로 낚시하는 걸 좋아했어요. 여수에 살면서도 자식들 장성하면 고향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해기사선장 자격증도 낚시하려고 땄지요. 여자 선장으로는 인천의 어떤 분에 이어, 제가 두 번째인 걸로 알고 있어요. 낚시는 좋아하는 데 잡은 고기는 안 먹어요."
박 선장은 얼마 전, 평도 앞바다에서 15킬로짜리 농어를 낚았다고 한다. 이걸 고흥 나로도 어시장에 가서 팔았는데 보는 사람마다 "어디서 그런 대물을 잡았느냐"며 몹시 궁금해 하더란다.
평도 이장의 호소... "바다가 죽어가고 있어 걱정입니다"
풍요롭기만 하던 평도 해역에 요즘 비상이 걸렸다. 바다가 백화현상연안 암반 지역에서 해조류가 사라지고 흰색의 석회 조류가 달라붙어 암반 지역이 흰색으로 변하는 것이 심해지면서 물고기들이 씨가 마른 것이다. 그 원인을 이상기온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송철희 이장의 견해는 다르다.
"저는 낚시인들이 미끼로 쓰는 떡밥파우더에 문제가 있다고 봐요. 해저로 가라앉은 끈적한 파우더 성분이 해조류의 광합성 작용을 막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백화현상이 발생하는 겁니다. 보시면, 낚시인들의 영향이 미치지 않은 선착장 안에는 해조류가 건강하게 자라고 있어요."
그는 학계를 시작으로 지자체, 정부, 국회가 한자리에 모여 백화현상의 원인을 규명해 보았으면 좋겠다고 제언했다. 원인을 알고 대책을 세워야 바다가 살고, 섬사람도 살고, 후세들도 살아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낚시인들이 갯바위에 수없이 박아 놓은 납덩이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납덩이가 파도에 수없이 휩쓸리면서 바다가 납성분으로 오염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 많던 문어와 돌김, 가사리들이 다 어디로 가버렸는지 모르겠다. 이제 마을 사람들의 생계가 걱정이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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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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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도마을에서 바라본 선착장좌측과 내연발전소. 멀리 소거문도가 보인다 |
ⓒ 양진형 |
흔히 섬사람들은 육지에 비해 배타성이 강하다고 말한다.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육지에서 살다가 고향 섬으로 귀향한 사람도 텃세 때문에 견디기 힘들다는 것이다. 섬이 많다 보니, 그런 섬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평도처럼 그렇지 않은 섬도 있다.
여수에서 남서쪽으로 62km 떨어진 오지의 섬
평도는 섬 토박이와 외지인, 귀향인들이 화합하여 오순도순 정겹게 사는 섬으로 소문나 있다. 현재 섬 주민 35명 중 10여 명이 외지인이거나 귀향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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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겹고 살기 좋은 평도마을 |
ⓒ 양진형 |
전남 여수에서 남서쪽으로 62km 떨어진 평도는 해안선 길이 5.5km, 최고봉은 해발 137m에 이르는 그리 크지 않는 섬이다. 본섬인 대평도와 북쪽에 있는 소평도, 2개의 섬으로 이뤄져 있다. 여수~거문도 항로 중간 기착지인 손죽도에서 남동쪽으로 10km 떨어진 해역에 위치해 있어, 낙도보조 여객선 섬사랑호를 타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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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철희 이장이 집에서 애지중지 키우고 있는 평도 석란 |
ⓒ 양진형 |
이곳은 섬에 석란이 많아 처음엔 석란도石蘭島라 불렸다. 그러다가 섬 중앙부가 낮고 평편해 평도라 바꿔 부르게 됐다. 섬의 석란은 5~6월에 연붉은색으로 꽃을 피우는데 그 향이 매우 진하다고 한다. 해무가 짙게 낀 바다에서 길을 잃은 어부가 그 꽃내음을 맡고 방향을 가늠했을 정도였다니, 가히 향 내음을 상상해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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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도 주민들이 마을 회의를 위해 팔각정 쉼터에 모였다 |
ⓒ 양진형 |
평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300여 년 전으로 노씨, 허씨, 정씨가 처음 들어와 마을을 이루었다고 한다. 해안 주위로는 암석해안이 발달하고, 섬 주변에 비석바위 낮여, 건등여, 작은여 등이 분포한다. 이런 자연환경에서 돌돔, 쏨팽이, 농어 외에도 많은 어족이 서식하고 있다.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낚시인들이 몰리는 낚시터로 알려져
그러다 보니, 평도는 인근 광도와 함께 예로부터 전국적인 낚시터로 유명하다. 예로부터 서울 수도권은 물론 경남 부산권에서도 내로라하는 낚시인들이 즐겨 찾았다. 그렇게 낚시하러 왔다가 섬이 마음에 들어, 눌러 앉은 사람이 7~8명에 이른다. 지난 8월 중순, 평도를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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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출신 김백만씨의 집 앞마당 |
ⓒ 양진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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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백만씨 집에 모인 평도 주민들 |
ⓒ 양진형 |
저녁 식사 후, 평도로 이주한 지 10여 년 되었다는 김백만62씨 집에서 몇 분의 주민과 만났다. 김씨는 부산에서 천직으로 여기던 공직을 마감하고, 이 섬에 새로 집을 지어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원래 볼락낚시를 좋아해 평도에 수차례 왔는데 갈수록 섬에 끌렸다고 한다. 집도 손수 짓고, 정원도 아주 예쁘고 정갈하게 꾸며 놓아 오가는 사람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 마당의 징검다리 돌과 벽면의 황토 등도 모두 평도의 자연으로부터 얻어, 건축비가 많이 들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평도에 정착할 때까지 가이드가 되어주고, 땅을 물색해 준 사람은 바로 아랫집에 사는 최봉규72씨다. 강릉 출신의 최씨는 서울에서 대기업에 다녔는데 불면증으로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심할 때는 48시간 잠을 자지 못했다고. 그는 불면증을 치유할 조용한 섬을 찾다가 인터넷을 통해 평도를 알게 됐다. 평도에 정착해 처음엔 민박집을 하며, 마을의 궂은 일을 도맡다시피 했다. 그래서 최 반장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지금은 섬에서 맥가이버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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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백만좌측씨와 최봉규씨 |
ⓒ 양진형 |
"섬에는 항상 자원이 모자랍니다. 모두 육지에서 싣고 와야 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집 짓고 남은 건자재나 폐자재들은 모두 제 손을 거쳐 귀하게 활용됩니다. 절단하고 용접하고 그러다 보면 하루가 금세 지나갑니다."
그렇다면, 섬의 토박이와 외지인, 귀향인들이 서로 화합하여 잘 사는 비결은 뭘까? 최봉규씨가 그 비결을 털어놓는다.
"섬 주민 모두가 서로 존중하고, 작은 음식이나마 서로 나누려는 배려심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그 중심에 평도 토박이 송철희72 이장님이 있어요. 그분이 마을을 잘 이끌어 주어 모두 화목하게 지내는 것 같아요."
평도 해안가 외딴집 주인과 섬 농사꾼이 다 된 김하영씨 스토리
뒷날 아침, 평도의 또 다른 속살을 보기 위해 시멘트 임도를 따라 섬 동쪽 해안가로 나갔다. 그곳은 광도의 일출을 보는 장소이기도 하다. 마침, 저 수평선 너머 광도 위로 선홍빛 햇무리가 감싸고 있다. 태평양 멀리 밤새 달려온 태양은 한번 크게 심호흡을 하더니, 찬란하게 얼굴을 내민다. 장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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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도에서 바라본 광도 일출 |
ⓒ 양진형 |
마을로 돌아오는 길에 좌측 산자락 언덕을 따라 비스듬히 난 오솔길을 따라가 본다. 아뿔싸, 섬 오지에 집 한 채가 있다. 아슬아슬한 낭떠러지 위에 덩그러니 앉아 있는 집. 집주인은 서울 출신인데 이분도 낚시하러 왔다, 이 집이 마음에 들어 매입했다고 한다. 그 후 벌써 세월이 30여 년 흘렀는데 태풍이 불 때마다 지붕이 날아가 10여 차례 수리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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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도 동남쪽 해안가 절벽 위의 외딴집 |
ⓒ 양진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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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딴집에서 바라본 남해바다. 칼퀴섬가운데 너머로 여수의 아름다운 무인 섬 백도가 있다고 한다 |
ⓒ 양진형 |
그는 "이렇게 경치 좋은 곳에 사니 좋겠다"는 말에, "집을 사고 나서 딱 3일간은 좋았는데 그 뒤부터는 고생이다"며 시원하게 너털웃음을 지어 보였다.
산자락에서 내려와 길가 밭에서 옥수숫대를 베고 있는 김하영75씨를 만났다. 충남 청양 출신인 그는 창원에서 국내 유수의 중공업 회사에 다녔다. 회사 낚시동호회를 따라 평도에 몇 번 왔는데 평도가 살기에 너무 편안해 보였다.
그는 정년퇴직 후 부인과 이 섬에 정착한 지 15년쯤 되었다고 한다. 김씨는 "올해는 바람태풍이 불지 않아 옥수수 농사가 제대로 됐다"며 때 묻지 않은 섬 농부의 싱그러운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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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남 청양 출신으로 기업에서 고위직을 역임한 김하영씨. 지금은 섬 농부로 소박하게 살고 있다 |
ⓒ 양진형 |
낚시하고 싶어 고향으로 돌아온 베테랑 여 선장도 이색적
또한 평도 출신이지만 여수에서 살다가 자녀들을 모두 건사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여자 선장도 있다. 박수아씨다. 남편인 길호철80씨는 손죽도 건너 초도가 고향이다. 부부는 날씨와 물때가 보아가며 수시로 평도 바다로 향한다. 박 선장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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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테랑 박수아 선장이 내놓은 섬 밥상 |
ⓒ 양진형 |
"어렸을 적부터 갯바위에서 대나무로 낚시하는 걸 좋아했어요. 여수에 살면서도 자식들 장성하면 고향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해기사선장 자격증도 낚시하려고 땄지요. 여자 선장으로는 인천의 어떤 분에 이어, 제가 두 번째인 걸로 알고 있어요. 낚시는 좋아하는 데 잡은 고기는 안 먹어요."
박 선장은 얼마 전, 평도 앞바다에서 15킬로짜리 농어를 낚았다고 한다. 이걸 고흥 나로도 어시장에 가서 팔았는데 보는 사람마다 "어디서 그런 대물을 잡았느냐"며 몹시 궁금해 하더란다.
평도 이장의 호소... "바다가 죽어가고 있어 걱정입니다"
풍요롭기만 하던 평도 해역에 요즘 비상이 걸렸다. 바다가 백화현상연안 암반 지역에서 해조류가 사라지고 흰색의 석회 조류가 달라붙어 암반 지역이 흰색으로 변하는 것이 심해지면서 물고기들이 씨가 마른 것이다. 그 원인을 이상기온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송철희 이장의 견해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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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도 바다가 죽어가고 있다고 호소하는 송철희 평도 이장 |
ⓒ 양진형 |
"저는 낚시인들이 미끼로 쓰는 떡밥파우더에 문제가 있다고 봐요. 해저로 가라앉은 끈적한 파우더 성분이 해조류의 광합성 작용을 막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백화현상이 발생하는 겁니다. 보시면, 낚시인들의 영향이 미치지 않은 선착장 안에는 해조류가 건강하게 자라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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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도 선착장의 해조류 |
ⓒ 양진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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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도 갯바위 사이에 박힌 납덩이 |
ⓒ 양진형 |
그는 학계를 시작으로 지자체, 정부, 국회가 한자리에 모여 백화현상의 원인을 규명해 보았으면 좋겠다고 제언했다. 원인을 알고 대책을 세워야 바다가 살고, 섬사람도 살고, 후세들도 살아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낚시인들이 갯바위에 수없이 박아 놓은 납덩이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납덩이가 파도에 수없이 휩쓸리면서 바다가 납성분으로 오염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 많던 문어와 돌김, 가사리들이 다 어디로 가버렸는지 모르겠다. 이제 마을 사람들의 생계가 걱정이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섬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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